소소한 기적

2020년 11월 30일 일기

by 하트온

'독서'라는 주제로 글을 써보려 하다가, 오늘은 제가 좀 피곤한지 마음이 산만하고 도무지 글이 나아가질 않아서 깨끗이 접고, 자유롭게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일기를 써보기로 마음먹습니다.


일기는 날씨부터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어떤 다른 것보다 날씨에 큰 영향을 받는 존재라고 느껴요. 비 오는 날과, 해가 나는 날, 식물의 상태가 확연히 다른 것처럼, 사람도 날씨에 따라 기분도 컨디션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사람 중에서도 저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장대비가 죽죽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지난밤 자정부터 비가 온다는 예보는 알고 있었는데, 아침부터 비를 하염없이 토하고 있는 거무죽죽 비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을 보니 난감한 짜증이 밀려들었습니다. 오늘따라 이런저런 해야만 하는 볼일, 말일이 기한인 일들이 또 얼마나 많은지. 멀리까지 가서 무언가를 사 와야 했고, 어딘가 들러서 짐을 찾아와야 했으며, 은행 업무도 있었습니다. 아직 장시간 아이들만 집에 두고 다닐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 아이들도 다 데리고 나와야 했습니다.


집을 나서기 싫은 마음을 꾹 누르고 집을 나섰습니다. 하이웨이에 들어서니 뭔가 엉망진창입니다. 이런 날씨엔 라이트를 켜야 한다는 걸 잊은 사람, 비상등을 킨 채로 달리며 예고 없이 차선을 바꾸고 들어오는 사람, 너무 천천히 가는 사람, 물을 심하게 튀기며 성질부리듯 질주하는 사람... 비가 오전내내 많이 쏟아져서 사람들이 모두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았어요.


목적지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비가 좀 잦아들었습니다. 일단은 배가 고파, 근처 맥도널드에서 드라이브 쓰루로 '쿼터파운드 치즈버거'를 네 개 주문했어요. 그런데, '쿼터 파운드' 한 개를 사면 또 한 개를 $1달러 (1000원 정도)에 구매할 수 있는 행사를 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쿼터 파운트 햄버거 네 개를 거의 두 개 값에 샀어요.


아무리 이젠 지갑 열고 베풀며 살자고 마음먹어도, 역시 이득 볼 때 기분이 좋아지는 본능은 이 나이가 되어서도 어쩔 수가 없네요.


햄버거를 다 먹고 볼 일을 보려는데, 신기하게 비가 깨끗이 그쳐 있었어요. 다행이다 생각하며 이런저런 볼 일을 다 보고 차에 짐을 싣고, 집으로 가는 하이웨이를 타는데, 그와 동시에 또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저 볼일 보는 동안 비를 잠시 멈춰주신 거예요?


뭔가 특별 대접받는 느낌에 기분이 무척 좋아졌습니다.


집에 도착해 짐 내릴 때도 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다...


이젠 아예 대놓고 기대하는 마음까지 생겨 집에 도착했을 때 비가 많이 내리고 있으면 좀 실망하게 될 것 같은 두려움마저 생깁니다.


집에 도착하니 또 거짓말처럼 비가 딱 그치는 겁니다. 덕분에 비 맞지 않고 편하게 차에서 내려 짐을 빼서 집에 들여놓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차 문을 잠그고 대문을 닫는데 또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진짜 저희 때문에 '비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해주신 거예요?


누구에게 자랑할 수도 없는 이런 소소한 기적들이 제 삶에는 많이 일어나는 편입니다. 아이들을 낳고 난 이후에 이런 일을 많이 경험하게 되는 걸 보면, 하나님은 아이들을 특별히 아끼고 배려하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비 맞는 게 무슨 대수라서, 이런 걸 '기적'이라고까지 이름 붙이나 할 수 있겠지만, 비를 맞고 차갑고 축축해질 것이 피할 도리가 없으리라고 예상하는 폭우 상황에서 마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느낌은, 마치 실수로 옷을 얇게 입고 나온 날 추위에 떨게 될 줄 알았는데, 누군가 건네주는 카디간을 얻어 입은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랄까요.


따뜻하게 보호받는 느낌, 배려받는 느낌이 강하게 느껴졌던 하루였습니다.


그리고 글이 잘 써지지 않는 날에 글을 써 낸 느낌도 상당히 산뜻하고 좋네요. 오늘은 푹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굿 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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