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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트온 Nov 15. 2020

나에게, 글쓰기

조금씩 조금씩 틀을 부순다

그때는 '재미'였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니 그땐 '국민학교'라고 해야 하나요? 요즘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라떼는' 일기를 매일 써야 했고, 선생님이 '일기 검사'를 했어요. 선생님이 제 일기를 읽고 무척 재미있어하셨던 게 기억이 납니다. 저희 엄마에게 전화까지 걸어, 제 일기가 너무 재밌다고 문학적 소질 어쩌고 하는 말까지 하시는 바람에 동네 아줌마들에게까지 소문이 나서, 뒷집 아주머니 - 남편이 경찰-가 아들에게 가져가 보여주려고 제 일기장을 훔쳐가는 사건까지 벌어졌었어요. 


아무튼, 그때 선생님이 별표 마구 달아 주시고 재밌다고 하신 표현은 이런 것들이었어요. 


"오늘은 이런 좋은 일이 있었고, 또 이런 안 좋은 일이 있었는데, 덕분에 내 기분 매우 짬뽕."
"오늘 귀여운 새를 보았다. 통통하고 동그란 새의 몸이 너무 귀여워서 나는 새를 꽉 깨물 뻔했다."


글쓰기가 그렇게 자유롭고 재밌게 계속되었었어야 했는데, 선생님은 저를 문예부에 강제 소속시켰어요. '문예부 활동'이라는 이름으로 방과 후 남아서 해야 하는 일은 교사가 연습시키는 대로 대회 준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학교 대표로 '반공 글짓기' 같은 것을 쓰기 시작하면서, 저의 글에서 점점 재미가 빠져나갔던 것 같아요.


저는 사실 반공 글짓기로 상을 참 많이 받았었어요. 공산당을 대놓고 싫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집안 어른들 사연 이야기를 하며 안타까운 상처를 꺼내 호소하는 방식으로 글을 썼는데,  '반공 글짓기'심사위원들에겐그게 뭔가 은근하게 돌려까지 방식처럼 느껴지며 무척 신선했던 모양이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반공 글짓기'로 수많은 상을 휩쓸었습니다. 생각이 좀 깊고 성숙한 편이었던 우리 반 남학생 한 명이 제 글을 찬찬히 읽어보더니, "매끄럽게 잘 썼지만, 영혼이 안 느껴 짐"이라고 제 글을 평했던 것을 저는 오래도록 마음에 두고 곱씹었었습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그 어린 나이에도 저는 분명히 알았던 것 같아요. 



한 때는 유일한 소통 도구였어요.


청소년이 되면서, 저는 문예부 같은 데는 근처에도 가지 않았습니다만. 그런데도 생각해 보면 저는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환경에 살고 있던 저는 제 마음을 토로하는 글쓰기를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인터넷도, 이메일도, 문자도, 개인 전화기도 없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런 환경이라도 우리들은 우리 자신과, 그리고 세상과 소통할 길이 필요했어요. 더 이상 아무도 검사하는 사람이 없고, 오히려 누군가 일기장을 훔쳐볼까 봐 겁이 나면서도, 저는 끊임없이 일기를 썼습니다. 아니, 일기가 저절로 써졌습니다. 또한, 저는 많은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았어요. 저에게 관심이 생겨 편지를 보내기 시작하는 남학생들에게도, 연애 감정 유무와 상관없이 열심히 답장을 써 주었습니다. 제 마음을 토로할 그릇으로, 아무도 읽지 않을 나만의 글도 필요했지만, 누군가 읽을 나를 표현하기 위한 글, 소통을 위한 글도 절실히 필요했었어요. 제 편지를 읽고 제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지만, 다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느라 타인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볼 여유도 그런 능력도 없었지만, 우리들은 모두 열심히 편지를 주고받았어요. 미국에 와서도 저의 절친과 주고받은 편지는 지금 몇 박스나 돼서 둘 곳이 마땅치 않아 처치 곤란인 상황입니다. 



저의 글쓰기가 어떤 의미여야 하는가에 대해 오래 고민했어요.


물론 한동안은 글쓰기를 직업으로 할 수 있으면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자유롭게 마음껏 글을 쓰고, 그 책은 바로 베스트셀러가 되고, '무라카미 하루키'같은 작가처럼, 마라톤 뛰고 자기 관리하면서 하루에 6시간 정도 조용히 내 서재에서 글을 쓸 수 있다면, '김영하' 작가처럼 외국에 나가 몇 달씩 머물며 글에 집중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 저도 물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무라카미 하루키'나 '김영하'가 아닌 것을요. 


그런 베스트셀러 작가를 꿈꾸다가, 제가 제 글을 싫어하게 되고 지루해하게 되는 이상한 '병'에 덜컥 걸렸습니다. 몇 년을 힘들어 하다가, 거의 글쓰기를 포기하는 심정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는 순간, '인기 글' 이 아닌 '나의 글'을 쓰자고 결심하는 순간, 그 몹쓸 '병'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제가 요즘 아주 푹 빠져있는 소설이 있습니다.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던 유명 소설이니, 분명 한국에도 번역서가 나와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1960년 즈음 미국 남부 미시시피, 잭슨이라는 인종차별이 심했던 도시의 흑인과 백인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아프고, 슬프면서, 동시에 웃기고, 스릴 넘칩니다. 몰입감이 얼마나 엄청난지,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치 1960년 그곳에 그들과 함께 살고 있는 듯한 현장감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중 한 명인 '에이블린'이라는 흑인 가사 도우미는 17명의 백인 아기를 키운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그녀는 작가적 재능도 뛰어나고 공부했으면 참 좋은 선생님이 되었겠다는 생각이 드는 현명하고 따뜻하고 지적인 사람이지만, 당시 흑인들에게는 백인들과 동등한 교육기회나 직업 기회가 주어질 수 없던 상황이라, 남자들은 대부분 막일, 농사일, 여자들은 평생 베이비 시터 겸 가사 도우미로 살아갑니다. 


대부분의 흑인 도우미들이 한 가정에 오래 머물며 일하는 반면, 에이블린은 아이 하나를 키우고, 그 아이가 8살을 넘기기 전에 금방 아기를 낳은 다른 집을 찾아 전전합니다. 에이블린은 아이들이 에이블린을 가족처럼 느끼며 편견 없이 관계를 맺다가 점점 커가면서 제 부모들이 주입하는 생각에 따라 흑인은 열등하고 더럽고 가까이해서는 안될 존재로 생각하기 시작하고 점점 제 부모 같은 눈빛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는 걸 매우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래서 아주 어린 나이인 아이를 돌봐야 하는 집을 전전하며, 그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그 집을 떠나기를 반복합니다.


에이블린에게는 원래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막일보다는 시와 문학이 어울렸던 에이블린을 닮은 아들. 하지만 아들은 어쩔 수 없이 시대가 요구하는 대로 나무를 벌채하는 막일을 하러 나갑니다. 결국 체구가 자그마한 그 아들은 나무를 처리하는 기계에 빨려 들어가 큰 사고를 당해 사망하게 됩니다. 에이블린은 식음전폐하고 죽을 것처럼 아파하다가, 겨우 일어나서 일을 다시 시작한 것이 현재 '매이 모블리'라는 지금 막 세 살 된 아이를 태어났을 때부터 키우기 시작해 지금까지 돌보며 그 집에서 가사 도우미 일을 하는 것입니다. 아들이 죽고 난 후의 에이블린은 무언가 옛날과 다릅니다.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A bitter seed was planted inside a me (마음에 쓴 씨앗이 심어졌다)

'매이 모블리'는 지금 에이블린을 매우 잘 따르고, 심지어 에이블린이 '진짜 엄마'라고까지 말하기도 합니다만, 아이의 엄마 '엘리자베스'가 아이 앞에서 흑인이 더럽고 병균 가득한 존재, 진짜 가족이 아닌 하등한 존재라 표현하는 것을 수시로 보고 느끼면서 에이블린은 가슴이 찢어집니다. 예전 같으면 그녀는 꾹 참고, 견디다가 다른 집으로 옮겨가는 수순을 밟았겠지만, 이미 '쓴 씨앗이 마음에 심겨 자라고 있는' 에이블린은 점점 안 하던 행동을 합니다. 아이와 둘이 있을 때, 자꾸 아이가 들려달라는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자신의 메시지를 슬쩍 넣어 전합니다. 아이에게 전하는 한결같은 그녀의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색이 다르다고 사람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란다. 너와 나는 피부 색이 달라도 똑같이 느끼는 똑같은 사람이란다.



그들과 평등하게 동등하게 살 수 없는 상황, 내가 원하는 만큼 교육받을 수 없고, 내가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도 없고, 평생 그들의 아이들을 키우고, 그들을 수발드는 흑인 도우미로 살아야 하는 삶. 그것은 에이블린 시대에는 변하지 않는 자신을 둘러싼 틀입니다. 그것을 벗어나려 발버둥 쳐봤자, 기다리는 것은 매질이나 죽음 밖에 없는 억울하고 무서운 시대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틀 안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제 목숨 걸고 열정적으로 다가오는 백인 작가에게 조금씩 조금씩... 매일 돌보는 백인 어린아이 한 명에게 조금씩 조금씩,...



한 사람에게 조금씩 조금씩... 



저의 삶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저는 평생 '무라카미 하루키'나 '김영하'는 커녕, 베스트셀러 한 권 출간한 적 없는 작가로 생을 마감할 가능성도 큽니다. 제 삶이라는 틀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에이블린의 '도우미일' 같은 제 삶이 감당해야 하는, 글 아닌 다른 책임들도 여전히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에이블린처럼 '나의 틀' 안에서 최선을 다 할 겁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막연한 것을 꿈꾸기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현실 안에 꿈과 의지를 불어넣고 넓혀가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에이블린이 당장 '평등'을 꿈꾸기 보다, 자신이 돌보는 아이에게 아주 조금씩 '평등' 메시지를 전하는 것처럼요.


매일 조금씩 야금야금 틀을 부수는 일, 내가 바꾸고 싶은 세상을 향하여 나를 가로막는 것들을 조금씩 조금씩 밀어내며 나아가는 일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론 그 속도가 너무 느려서, 좀처럼 세상이 삶이 바뀌는 게 보이지 않아서 실망하고 절망하는 날도 있겠지만, 그런 날도, 내 작은 목소리가 사명을 다하고 있다는 느낌을 잃지 않도록 용기를, 힘을 더 내야 할 뿐입니다. 남아 있는 한 사람의 관객을 위해 콘서트를 그만두지 않는 가수처럼, 남아 있는 한 사람의 구독자를 위해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쓰는 글을 쓰는 작가, 내 자리에서 끊임없이 쏘아 올려야 할 공 쏘아 올리기를 멈추지 않는 작가가 되어야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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