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을 넘나드는 마술사 코바늘

코바늘로 만들어 가는 미니멀 서스테이너블 라이프

by 하트온

코바늘 뜨개질에 관한 최초의 기억


어릴 때 나는 할머니와 삼촌들까지 다 함께 사는 대가족 가정에서 자랐다. 좋았던 추억들이 몇 가지 있는데, 대부분의 좋은 추억들의 근원은 새로 갓 시집오신 작은 어머니가 참 재능 많고, 상냥하고 좋은 분이었다는 데 있었다. 작은 어머니는 엄마를 도와 식구들의 밥을 차리는 가사 틈틈이 뜨개질을 많이 하셨는데, 나는 그녀가 뜨개질하는 모습이 신기해서 곁에서 한없이 들여다보며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작은 어머니는 내 바비인형의 스웨터와 모자까지 뜨개질 해 주실 정도로 실력이 좋으셨고, 또한 그것은 나에게 '신뢰할 수 있는 어른', '그 어른이 전해주는 사랑'의 의미로 다가왔다. 미국에 와 있고, 상황이 여의치 않아 만날 수 없어 안타까운 사람 1호이자, 내 최초의 뜨개질 선생님인 작은 어머니의 건강과 행복을 늘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나는 작은 어머니 옆에서 열심히 배우려고 노력했지만, 당시에는 뜨개질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손가락이 아직 실을 잡고 조율할 힘이 없기도 했고, 작은 어머니가 보는 책에 나온 기호들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외계어였다. 그래도 그 시간들을 통해 얻었던 한 가지는 '코바늘'에 대해 느끼는 친숙함이었다. 언제 어디서 봐도 데려오고 싶은 친구 같은 느낌.



미국에서 다시 만난 코바늘 뜨개질


미국에 와서 코바늘과 실을 발견하자마자 구매했다. 도서관에서 뜨개질 책을 빌려다 놓고 배워보려고도 했었는데, 안타깝게도 뜨개질 책은 여전히 나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저세상 이야기였다. 게다가 뜨개질 기호들과 영어의 조합은 최악이었다.


독서와 글쓰기가 나의 가장 큰 욕구이긴 하지만, 나는 가끔 손가락이 매우 심심할 때가 있다. 가끔 손을 움직여 무엇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를 강하게 느낀다. 그래서 뜨개질을 꼭 배워보고 싶은 욕구를 계속 품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뜨개질은 뭔가 요즘 세상에 찾아보기 힘든 구시대 유물 같은 느낌이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우리 할머니 뜨개질 잘하셨는데...' 정도의 대답이 나올 뿐, 뜨개질을 취미로 한다는 젊은 사람은 미국 생활 20여 년 동안 딱 한 명 - 내가 이미 뜨개질을 배운 이후- 밖에 본 적이 없다.


책으로는 도저히 못 배우겠고,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는 시간이 흘러갔다. 작은 어머니의 뜨개질을 봤던 기억과, 가사 시간에 배웠던 기초 뜨개에 대한 기억을 총동원해서 목도리만 겨우 떠보곤 했던 시간들...



그러다, 세상이 바뀌고 '유튜브'가 생기더니, '뜨개질 유투버'들이 등장하는 게 아닌가!


유투버들은 뜨개질 초보자들을 위해 한 땀 한 땀 정말 자세히 천천히 보여주고 설명을 해 준다. 유투버 선생님들의 비디오와 오디오를 다 동반한 차근차근 설명과, 나의 어릴 때부터 키워진 뜨개질에 대한 욕구, 오랜 기초 연습으로 나름 준비된 손가락이 연합하여, 나는 빠른 속도로 뜨개질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이들 인형, 가방, 지갑, 컵받침, 모자, 각종 목적을 위한 주머니들,... 이런저런 원하고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보기 시작했다.

image2.jpeg 저의 뜨개질 완성품을 보여주는 인스타 페이지 1


image1.jpeg 저의 뜨개질 완성품을 보여주는 인스타 페이지 2

내 뜨개질 완성품이 빨간색이 많은 것은, 주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목적으로 만든 것이 많아서 그렇다. 뜨개질은 만들고 나서 선물하게 되기도 하고, 용도가 불분명한 경우 풀어 다시 다른 것을 만들게 되기도 해서, 일단 만든 것들은 사진을 찍어 '내가 이런 것을 만든 적이 있다'라고 기억하는 차원에서 인스타에 기념사진을 모았습다. 다시 말해, 여기 인스타 사진에 보이는 완성품들은 현재 다른 사람들 소유이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뜨개질', 특히 '코바늘 뜨개질'의 묘미는 최소의 도구로, 자유롭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필요한 대로 '유'에서 '무'로 다시 돌아와 다른 '유'로 변신하기 용이하다는 점에 있다. 창조할 수 있는 모양도 어느 다른 도구를 쓰는 것보다 훨씬 자유분방하고 다양하다.


이 점이 '미니멀리스트'인 나에게 이 '코바늘 뜨개질'이 너무나 매력적인 이유다. 저는 이 코바늘 하나와 충분한 실, 그리고 시간적 여유만 있으면,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2D, 3D 재료는 뭐든지 만들어 낼 자신이 있다. 세련된 느낌이 들 정도의 예쁜 옷이나, 어려운 예술 작품 같은 것을 만들 실력은 없지만, 실용적 목적의 재료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은 충분히 있다.


미니멀리즘과 함께,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재활용 새활용으로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서스테이너블 라이프(Sustainable Life)*를 추구하고 싶은 나에게 이 자신감은 정말 중요하다.


*서스테이너블(Sustainable)이라는 말은 사전적으로 ‘환경 파괴 없이 지속 가능한’ ‘오랫동안 지속 가능한’이라는 의미를 가졌다.



코바늘 뜨개질이 좋은 또다른 이유


겨울에 난로 앞에 앉아, 좋아하는 티브이 프로나 영화를 보면서, 손을 조물조물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은 나의 겨울 로망이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색색의 뜨개실을 많이 사는 편이고, 겨우내내 뜨개질을 즐기는 편이다.


뜨개질이 기분이 좋은 이유는, 배우기 쉽지 않았던 것을 끈질기게 관심을 가지고 배워낸 것이라 성취감이 있고, 매번 내 손이 무엇을 떠 낼지 예상이 되지 않는 그때그때 기분따라 다른 미술 창작품 같은 신비한 구석이 있어서다. 또한 내가 필요한 것을 내가 만들 수 있다는 만족감, 누군가에게 선물할 예쁜 것을 직접 만들 때의 설레는 기쁨이 있다.


이렇게 수많은 좋은 감정을 내게 선물해 주는 코바늘 뜨개질은, 내 시간을 색색의 아름다움으로 채워주는 없어서는 안될 평생 함께할 좋은 친구다. 올 겨울엔 어떤 실로 무엇을 만들게 될까. 무척 기대되고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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