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경계선 세우기

자녀의 감정과 자유의지를 존중하는 양육

by 하트온

사람이란 정신과 육체로 구성된 복잡한 존재입니다. 사람의 육체가 피부라는 껍질로 경계선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사람의 정신도 경계선이 있습니다. 내 몸에 타인이 함부로 손을 대거나 폭력을 가해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각 개인의 정신에 해당하는 ‘감정’과 ‘자유 의지’ 또한 침범당해서는 안 되는 자기 고유의 영역입니다.


여기서 ‘감정’이란 자신이 느끼는 것을 말하고 ‘자유 의지’란 스스로 결정하는 자신의 선택을 의미합니다.


내 배가 고프면 내가 밥을 챙겨 먹고, 내가 아프면 병원에 가기로 내가 결정하는 것처럼 이 모두가 자신의 소유이며 자신의 책임져야 하는 영역들입니다. 이러한 정신적인 경계선이 지속적으로 침범당하거나 다른 사람이 져야 할 책임을 떠맡게 되면 사람은 괴로워집니다. 심리상담을 요청하는 사람들의 흔한 문제들이 이 경계선의 건강 상태와 관련이 있습니다.


한국문화는 이러한 정신적 영역에 대한 소유나 책임문제를 분명히 구분해 주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추석 혹은 새해 명절에 그동안 회사 일로 지친 아들 며느리가 부모님 댁에 가서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기보다, 조용히 여행을 가거나 쉬고 싶은 상황이라고 해요. 이것을 부모님께 이야기했을 때 부모의 마음이 섭섭해지고 자녀와 함께 보내려고 음식이며 여러 가지를 신경 쓴 것에 대해, 가족 모임을 위해 미리 기대하고 계획해 둔 것에 대해 실망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한국 문화 안에서는 이 상황에서 경계선을 드러내는 일이 자식 된 도리를 저버리는 패륜적 행동으로 해석될 수 있고, 자녀가 강하게 자신의 경계선을 주장할 경우, 괘씸해서 밤잠을 못 주무실 부모님들이 많다는 겁니다.


우리가 널 이렇게 키웠느냐? 새해에 부모에게 인사 올 생각을 않고 버르장머리가 없구나! 여행 간다고? 너희는 부모 생각은 손톱만치도 없고, 너희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애들이구나! 엄마는 너희들만 기다리며 음식도 많이 준비해 놓고 얼마나 신경 썼는데. 며느리 시집살이 시킨다 할까 봐 엄마가 다 준비하느라 지금 허리 부서져라 희생했더니... 너희는 우리를 이렇게 실망시키느냐? 앞으로 부모하고 인연 끊을 거 아니면 딴소리 말고 집에 와!

전통적인 사고를 하는 부모의 흔한 대답입니다. 하지만 이 대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인이 된 자녀를 존중은커녕 아이 취급하며 야단치고, 죄의식을 자극하고 경계선을 침범하여 부모의 해결되지 않는 극단적 감정에 대해 그 자녀에게 그 책임을 돌리고 있는 양상입니다.


네가 내 마음에 들게 행동해야 내 기분이 좋아진다, 내 기분을 좋게 유지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너의 책임이라는 식의 감정에 대한 책임전가는 가족 공동체뿐만 아니라 각종 인간관계 안에서 공공연하게 나타납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는 상대의 선택할 권리, 자유의지를 존중하지 않으며 자신의 감정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고 긍정적으로 극복하려는 노력보다 원망과 미움에 사로잡혀 사는 것을 예사로 여기는 문화가 허락하는 사고의 습관에 기인합니다.


이렇게 사고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이나 선택에 대한 책임을 늘 주변 사람에게 떠넘기기 때문에 그 주변에 있는 사람은 피곤하고 부담스럽습니다. 이들은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되면 그 결과로 생기는 부정적인 감정과 손해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기보다 평생을 과거의 사건에 묶인 채 원망하며 한 많은 인생을 탓하는데 시간을 다 소모합니다.


문화 속의 잘못된 사고 습관을 인지하지 못하고, 이러한 정신적 부담을 지속적으로 준다면 그 자녀 또한 자신의 감정이나 선택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버릇을 가진 사람이 되거나, 다른 사람의 감정과 선택의 책임을 자신이 지고 가는 게 습관이 된 착한 - 하지만 속은 병들고 문드러진-사람으로 자라게 될 것입니다. 이들은 보기에 멀쩡해 보여도 성공적인 행복한 삶, 결속된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은 아주 힘이 듭니다. 부모로부터 정신적인 경계선이 끊임없이 침범당하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감정이 부모 자신의 소유이며 책임인 것을 아는 건강한 경계선을 가진 부모라면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네가 올 줄 알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쉽게 되었구나. 좀 섭섭하긴 하지만 그래도 너의 결정을 존중하겠다. 우리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이 되도록 알아서 노력 하마. 너도 즐겁게 잘 다녀오렴. 나중에 잘 다녀왔다고 문자 한 통 주고.

이렇게 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책임지고 자녀의 선택을 존중한다면 그 자녀는 정말 감사와 사랑에서 우러난 자유로운 마음으로 부모님에게 다가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됩니다.


어린 자녀가 배가 고파도 밥을 차려먹을 능력이 없고, 아플 때 운전해서 병원에 갈 능력이 없는 것처럼, 아이들은 아직 자신의 감정과 자유의지에 대한 경계선을 세우고 보호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건강을 돌보고, 호신술을 배우게 하고, 각종 신체폭력에 대해 조심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의 노력으로 아이들의 정신을 보호하고 경계선을 세우는 연습을 시켜주어야 합니다. 어디까지가 내가 자유롭게 소유하고 책임져야 하는 영역인지, 타인의 자유와 책임의 영역인지 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아주 지혜로웠던 한 왕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나기 때문이다.

육체가 침범당하고 폭력에 노출될 때 평생 그 트라우마가 있듯이 정신적인 영역도 손상을 입으면 틀어진 사고 때문에 평생 건강한 정신으로 살기 힘이 듭니다. 부모가 어릴 때부터 건강하게 감정과 의지를 지키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지 않는다면,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을 누가 도울 수 있을까요?


자녀가 솔직한 감정을 자유로이 표현하되 자기 조절 능력을 키워갈 수 있도록 존중하는 태도로 감정 코치를 하세요. 또한 자녀가 자신을 위해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옆에서 조언을 하되 자녀의 자유의지가 꺾이는 일이 없도록 항상 선택의 기회를 주고, 그 선택을 존중하는 태도로 양육하세요. 때론 자녀가 한 겨울에 여름옷을 입겠다고 선택할 수도 있고, 아침을 먹지 않고 학교에 가겠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크게 위험한 일이 아니라면 그러한 선택들을 하고 그 쓴 결과들을 직접 맛보도록 내버려 두세요. 이 과정을 통해 바른 선택을 위해 신중하게 생각하는 태도가 자랍니다. 자신의 감정표현이나 선택에 대한 자유도 중요하지만 그 책임을 모르고 자라면 후에 훨씬 큰 문제들을 겪게 된다는 점을 명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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