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떨리는 걸까요?
구독자 수가 어느새 이렇게 많아진 걸까요!
내 글을 읽어 주는 사람, 함께 글로 소통하는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내 글을 '구독할 글'로 선택을 해 주셨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하기만 합니다.
지금 제 기분은 대문 사진 속 '메시지 병'처럼 마음속엔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간직한 채, 나를 떠밀어 줄 물살에 몸을 맡긴 채, 하염없이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것으로 충분하지' 생각하면서도, '지금 내가 쓰는 글들이 무슨 의미가 될까' 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저의 하루하루는 마치, 아름답고 찬란한 낮과 어둡고 적막한 밤을 거듭 번갈아 맞는 바다 위를 떠다니는 '병'의 밤낮과 같았습니다.
힘들기도 했지만 많이 좋기도 했어요.
갖가지 언어로 말을 걸어오는 온갖 바다 생물들의 소리, 빗방울들이 바다에 방울방울 떨어지며 작은 파문을 일으키는 소리, 바람 따라 물살이 휘몰아치며 파도치는 소리, 밤이 되면 떠오르는 별들의 까르르 웃음소리, 끼익 끼익 작은 배가 성실하게 지나가는 소리, 큰 배들이 엄청난 힘으로 거대한 물살을 가르며 지나가는 소리,... 브런치의 바다에서 난생처음 만난 갖가지 소리들이 너무나 아름답고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구독자 수가 두 자리에서 세 자리로 바뀌려는 이 순간
저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구독자수가 세 자리로 바뀌면, 나는 네 자리로 바뀌기를 욕심내게 될까요. 구독자 수가 많아야 좋은 걸까요. 잘 모르겠어요. 얼마나 많기를 바라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구독자가 없는 것보다는 구독자가 있는 것이 훨씬 좋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오랫동안 혼자 글을 써 오면서 '독자'를 원하고 또 원했던 시간이 있었기에 '구독자'의 힘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낯선 땅에서 이방인이 '소속감'을 갈구하는 것과 같아요. 타국 땅에 살고 있는 저는 이방인이 바라 마지않는 '소속감', '유대감'에 대해서도 가슴 저 깊숙이까지 알고 있습니다.
'작가'에게 '독자'는 '소속감'입니다.
'구독자'는 작가가 '안전하게 설 자리', 작가의 '입지'입니다. 물론 '독자'에 연연하지 않고 독불장군처럼 혼자서 고독과 싸우며 글을 쓰는 작가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독자'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그 당당한 자신감도 자신의 글을 원하는 '독자'의 존재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가질 수 있는 여유입니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글을 계속 써 나간다는 것은, 아무도 먹으려 하지 않는 음식을 계속 만드는 일만큼 며칠도 버티기 힘든 '죽을 맛의 일'일 테니까요.
이제 이 낯선 '브런치의 바다'가 좀 더 익숙하고 따뜻합니다.
이 망망대해에서 제가 거할 '따뜻하고 안전한 자리'가 되어 주신, 제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밀어주는 '물살'이 되어주신 구독자분들께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생각해 보니, 물살이 너무 커도 어지럽고, 물살이 너무 힘이 없어도 나아가는 느낌이 들지 않아 답답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물살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적당하면서도, 건강한 도전이 될 만큼 어느 정도 가속이 붙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글을 쓰면서 '구독자'에 대한 저의 욕심을 매우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되네요.
구독자를 바라기 전에 '좋은 글'을 먼저 써야겠습니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저의 글'이 더 행복해지고 편안해졌습니다. 읽어주시는 분들의 큰 사랑과 격려 덕분입니다. 99명의 구독자수를 보고 떨렸던 것은, 제가 큰 '에너지'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에너지를 얻는 만큼, 그 에너지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고민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마음먹습니다. 마음에 품고 들어온 저만의 '메시지'가 손상되거나 변형되지 않도록 마음을 잘 지키며 나아가야겠다는 다짐도 합니다. 결국 저의 '사명'은, '저만 전할 수 있는 독특한 메시지'를 '안전하게 전하는 일이니까요.
함께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 사랑합니다!(떨리는 마음으로 수줍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