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보드 게임 한 판 할래요?

같이 놀자고 해줘고 고마워 아들

by 하트온

넌 아기였었지


금방 태어난 아이는 정말 손이 많이 간다. 작고 귀여워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다면 먹고 자고 싸는 걸 다 수발해 줘야 하는 하루 종일 요구만 하는 막무가내 존재를 감당하기는 진정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작고 귀여운 내 새끼니까 혼신의 힘으로 모든 걸 다 해낸다. 자다가도 일어나서 맘마를 먹이고, 똥기저귀 갈아주고, 하루에도 몇 번씩 날카롭게 신경 긁는 잠투정 다 받아주며 거둘 수 있는 것이다. 그 조그만 녀석을 돌보느라 인생이 뒤집히고 무릎이 나갈 정도로 힘들었어도 엄마는 아이가 한 번 방긋 웃으며 속삭여 주는 '엄마 사랑해.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한 마디에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무조건 내 새끼가 최고라고 한다. 방긋 웃으며 사랑 속삭이기 이걸 하나 제대로 딱딱 못해서 모든 걸 다 해 주고도 욕만 먹는 남편들도 많다죠.



하나도 기억 못 한다


아이는 자신이 그런 무기력한 존재, 생존 능력 하나 없는 무방비 상태였던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저 혼자 큰 줄 안다'는 진부한 표현은 진부하도록 변치 않는 인간의 뻔뻔한 본성이다. 네다섯 살쯤 되면, 화장실도 혼자 갈 수 있고, 양치도 혼자, 밥도 혼자 잘 먹을 수 있게 되지만, 그때부턴 옆에 끼고 가르쳐야 할 게 많다. 열심히 글과 셈을 가르쳐 주어야 하고, 부지런히 책도 읽어주고, 미술 선생 음악 선생도 되어주고, 때론 놀아달라 심심하다는 요구에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기도 해야 하고, 여전히 같이 해 줄 것, 챙겨줄 것이 많다. 아이는 진드기같이 엄마를 따라다니고 엄마는 때론 귀찮아하며, 커피 한 잔 마실 시간 가져 보겠다고, 숨 쉴 틈 좀 짜내 보겠다고 아이에게 전화기도 쥐어주고 티브이도 틀어준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변한다


많이 컸지만 그래도 은근히 아이가 귀찮은 엄마는 아이가 학교에 혼자 잘 다니기 시작하면, 이제 됐다 싶은 해방감을 느낀다. 이젠 나도 돈도 벌고, 할 일 하며 내 인생, 내 관리에 신경 좀 써야겠다 싶다. 그래도 아직 엄마가 수시로 관리해 줘야 하는 아이를 챙기며, 언제 커서 지가 다 알아서 하나 그런 바람이 드는 나날들이 이어지다가... 어느 날 아이는 문득 어제와 다른 사람이 되어 제 방문을 꼭 닫아 붙인다. 언제 이렇게 컸나 싶은 순간이 온다. 고학년이 되고, 자기 친구들이 생기고, 제 할 일이 생기고, 특히 인터넷의 맛을 알게 되면 아이는 더 이상 엄마와 함께 짬을 보낼 잠시 잠깐의 시간조차 없어진다.



엄마 나하고 게임 한 판 할래요?


작년까지만 해도 같이 보드게임하자고 하면 살짝 귀찮은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최근 엄마와 거리를 두고 멀어지는 노선을 따라가던 아이가 같이 보드 게임 한 판 하자는 데 그 말이 어찌나 고맙고 반가운지! 입장이 바뀌어도 완전히 바뀐 거! 말 그대로 '만사를 제치고' 아이와 게임을 한 판 했다.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아이들 비디오 게임 '포트 나이트'를 따서 만든 신종 모나폴리 게임을 겨우 따라가며 했지만, 아이들의 최신 놀이에 '늙은 엄마' 끼워주는 것에 감지덕지하며 열심히 했다. 예전 같으면 끝없이 열 판이고 스무 판이고 하자고 했을 아이가 딱 한 판만 하고 일어서는 게 섭섭할 정도다.


image1.jpeg
image0.jpeg
인기 비디오 게임 '포트나이트'를 따서 만든 모나폴리 보드 게임


아낌없이 주는 엄마가 될 수 있어서


저들을 거두어 키운 사람은 난데, 저들이 나를 키운 은인인 듯 입장이 바뀌어 가고 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아이들이 나를 더 많이 키우긴 했다. 아이들이 없었으면 나는 절데 자랄 수 없었던 많이 어리고 몰랐던 사람이었다. 회복과 성장이라는 꽃이 내 삶에 피어날 수 있도록 밭을 만들어 준 토대는 '남자아이 둘을 키우는 벅찬 삶'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성장시키는 여러 다른 종류의 아픔과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예쁜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느끼는 기쁨과 보람도 함께 있었던 육아라는 고난 폭풍은 결코 아픔으로 기억되지 않아 좋다. 하고 나면 내가 더 얻은 것이 많았던 시간으로 남는 무엇이다. 진심으로 사랑하면, 아낌없이 주게 되고, 주는 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은 것이 돌아오는 그런 이상한 결론이 나는 시간.


그래서 나는 항상 아이들에게 고맙고, 아이들에게 져 줄 수 있는 것 같다. 진심으로 사랑해서 아낌없이 줄 수 있었던 관계, 알고 보면 받은 게 더 많아서 항상 줄 것이 자꾸 생기는 관계. 내가 끝없이 아낌없이 줄 수 있는 관계. 이런 관계 안에 있는 것이 참 행복하다. 내가 누군가와 진심으로 사랑하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임을 알려줘서 정말 고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뭄바이의 관종 여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