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트온 Oct 19. 2020

상대를 낮추려는 사람의 심리

타인이 덫을 놓은 수치심에서 벗어나는 비결

© Alexas_Fotos, 출처 Pixabay


서열 싸움


닭 무리를 관찰해 보신 적이 있나요? 닭들은 함께 있으면 서로 쪼아대기 바쁩니다. 이러한 거친 몸싸움 행위를 통해 닭 사회의 서열이 정해지는 것이라고 해요. 서열 최하위는 모두에게 쪼임을 당하게 되고, 서열 최고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게 되는, 여느 동물의 세계와 비슷한 닭의 서열이 정리된다고 합니다. 


인간도 비슷합니다. 어딜 가든 눈에 보이지 않는 서열 싸움, 기싸움이 전쟁처럼 일어납니다. 상대가 모든 면에서 나보다 뛰어나게 월등하거나, 확실히 아랫사람으로 철저하게 숙이고 따르는 저자세로 나온다면 서열을 정리할 필요조차 없겠지만, 상대가 불분명한 느낌으로 다가온다면, 심기가 불편해집니다. 심기가 편치 않다는 말은, 그 상대의 행동이나 말에 더 예민해지고 부정적인 감정을 더 쉽게 느끼는 불안정한 심리상태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 불안정한 감정이 갈등을 일으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합니다.


인간의 서열을 정하는 싸움 수단은 매우 다양합니다. 동물들처럼 물리적 공격 같은 힘겨루기가 서열을 정하는 수단으로, 조폭 세계, 혹은 치기 어린 남자들 사이에서 간혹 쓰일 때가 있긴 하지만, 인간의 싸움 수단은 물리적 폭력에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말과 눈빛, 심리, 관계, 사회적 압박, 여러 분야의 여러 가지 능력,… 인간의 능력이 가 닿는 모든 범위로 싸움의 수단이 확장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싸움 수단은 ‘말’입니다. 말소리가 자체에서 전해지는 에너지를 무시할 수 없으며, 말에 담은 내용이 인간의 내면에 미치는 영향도 엄청납니다. 기싸움을 할 때, 말로 상대의 약점을 지적하고 모욕하는 전략을 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상대가 지지 않겠다고 덤벼들지 않는 한, 상대를 비참하게 만들고 짓누르는데 효과가 크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기싸움의 수단으로 말로 모욕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침묵’ 하며 무시하는 것 또한 지적질하며 야단치는 것과 같은 모욕감을 주는 기싸움의 도구입니다. 미국이나 유럽 여행을 할 때, 특별히 백인들이 시비를 건 일도 없는데도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가 바로 이것 '침묵 모욕' 때문입니다. 인종 차별이 불법으로 정해져 있기도 하고, 크게 물의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침묵과 싸한 눈빛으로 무시하며 타인종을 모욕하는 저열한 방법을 몸에 익힌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하지만 싸움의 도구로 ‘침묵’을 쓰는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가족 관계 안에서 습관으로 굳어진 자신의 방어기제를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로 ‘내가 뭘 어쨌는데’라고 항변하며 자신은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사람은 ‘말’, ‘눈빛’, ‘몸짓’,…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서열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그 싸움에 참여하고 있을 수 있어요. 


반면, 나는 전혀 그런 의도가 없는데, 나의 별 뜻 없는 작은 몸짓이나 표정에, 혹은 타고난 모습 자체가 풍기는 에너지나 느낌에 예민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내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고 느껴지는 상황에서도, 내게서 도전을 느끼고 갑자기 모욕적인 말로 시비를 걸며 달려드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상대를 비난하며 달려드는 사람들은 주로 자신에게 서열적으로 불안감을 주는 무언가에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무시당했다는 느낌, 제대로 대접을 못 받았다는 느낌에 화가 나는 것입니다. 그 느낌은 정당한 것일 수도 있고, 상대의 작은 몸짓 하나, 혹은 작은 실수에 과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상대에게 무시당한다는 느낌에 예민하고, 쉽게 상대에게 화를 내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이유는, 우리가 속한 사회 문화 자체가 너무나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예민한 탓이 큽니다. 어릴 때, 가정이나 학교에서부터 계속 모든 면을 외부 기준으로 평가당하며, 지능으로, 성적으로, 외모로, 재산으로, 학벌로, 직업으로, 외국어 실력으로,... 자본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끌어다 서열을 매기는 자본주의 경쟁주의 문화 속에서 성장했던 경험은, 사람들을 보이지 않는 서열에 굉장히 예민해지도록 만들고, 그 불안정함이 끊임없는 비교의식과 신경전, 서열 싸움에 쉽게 말려들도록 부추깁니다.


문제는, 열등감과 우월감 사이를 요동치며 안정을 모르는 심리는 쉽게 인격장애로 발전하고, 루머와 중상모략을 일삼는 파렴치한 이간질 행위나, 분노 조절 장애로 인한 폭력 범죄로까지 이어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가게 아줌마의 눈빛이 자기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가게를 불 질러 버리고, 나보다 더 부유한 친구에게 심한 열등감을 느낀 나머지, 그녀의 명품 옷과 가방을 다 찢어 버리고, 헤어지기 원하는 여자 친구에게 느낀 모욕감을 참지 못해 살인을 하고, 규정을 지켜달라는 편의점 알바의 말이 서열을 모르고 덤비는 느낌이라 무참히 칼로 찔러 복수하고,… 공통점은 무시당하는 느낌에 과민하고 쉽게 분노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사회적 서열에 대해 불안감에 시달리는 인격장애자들이 늘어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안 심리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상대를 쪼아 붙여 서열 정리를 명확히 해 낼 때에만 조금이나마 편안해진다는 것입니다. 상대의 약점들을 계속 상기시켜 내 발아래로 끌어내려야만, 내가 우위에 있다는 느낌을 억지로라도 얻어내야만, 심리적 만족감,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타인이 덫을 놓는 수치심에서 벗어나기


서로가 서로에 대해 좀 편안하게 느끼며 서로를 도우며 지지해주고 정답게 인간미 있게 살 수 없을까 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아주 오랜 좋은 친구 관계에서나 가능한 일일까요? 대부분의 인간 모임은 여차하면 서로 쪼아댈 준비가 된 닭장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상대를 낮추고 쏘는 말, 비난하는 말을 슬쩍슬쩍 흘리며 상대의 안색이 변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 상대를 재단하고 평가하는 사람들, 자기 머릿속의 서열 리스트에서 상대를 끌어내리고 싶은 사람들로 넘치는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서 상대를 심리적으로 낮추는 데 가장 효과적인 말들은, 상대의 집안 배경, 재산, 학벌, 지능, 멘탈, 성격, 능력에 관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입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들, 어릴 때부터 결핍으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큰 것들을  언급하면 상대의 수치심도 함께 끌어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효과적입니다. 


이들의 심리는 상대로 하여금 수치심을 느끼게 만들면 내가 저 사람을 이겼다고 생각합니다. 이 싸움에서 상처 받지 않고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음 네 가지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상대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상대를 깔아뭉개고 싶어 하는 것은, 불안한 심리에서 오는 것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쪼아대야 마음이 편해지는’ 정신적 문제를 앓는 그 사람의 문제이지, 내가 괴로워해야 할 내 문제가 아닙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 문제와 남의 문제를 구분할 줄만 알아도 훨씬 마음이 편해집니다. 남의 문제를 내 문제로 착각해,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를 놓고 붙잡고 씨름하며 고통스러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남의 문제는 남이 해결하도록 내 손에서 완전히 놓아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내 삶은 내 문제만 다루고 해결하며 살아가기도 바쁘고 빠듯하니까요.



2. 내 마음을 정확히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상대의 말에 모욕감을 느끼고 괴로운 이유는, 어린 시절 결핍으로 인한 트라우마, 내 안의 심리적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고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낮은 성적으로 부모와 교사에게 야단을 많이 맞고 어릴 때 수치심과 열등감으로 고통받았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출신학교, 학벌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쉽게 수치심으로 고통스러운 마음이 들 수 있어요. 다시 그 트라우마의 현장으로 가서 나 자신을 끌어안고 치유하고 극복해 내는 일이 필요합니다. 상대가 건드리려는 약점이 내게 부끄러운 감정으로 다가오지 않도록, 그 경험을 통해 내가 발전하고 내 길을 찾아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것에 대해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수 있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고 사랑하는 경험이 꼭 필요합니다. 상처에 취약한 나의 내면을 강화시켜야 합니다. 어떤 경험 어떤 기억에 대해서도 내 마음이 편하고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면, 타인의 말이 내 안에 쉽게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올 수 없게 됩니다.



3. 항상 큰 그림을 보고 서열 싸움에서 지혜롭게 빠져나올 줄 알아야 합니다.


큰 그림을 보면, 이 사회는 외부 기준에 예민한 사회인만큼, 세상에는 뭐든 서열화시키고, 조금만 빈틈이 보이면 ‘쪼아대는 닭’ 병에 걸려 있는 사람들이 널려있을 수밖에 없고, 세상 어딜 가나 나를 끌어내리고 낮추기 위해 모욕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특히, 쏘고 도망가기 쉬운 익명의 인터넷 공간 같은 곳은 상대를 쪼아 대고 싶은 욕구에 휘둘리는 사람들이 활개 치기 완벽한 장소입니다. 상대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모욕을 일삼는 사람들이 문제인 것을 보지 못하면, 늘 타인의 말에 쉽게 수치심을 느끼는 반복적 패턴 속에서,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걸로 의심하고 쉽게 위축되기 쉬워요. 자신을 그러한 혼돈에서 구해내지 못하면, 스스로를 뭔가 잘못되고 무가치한 존재로 여기는 병약한 자아상을 갖고, 기피하지 말하야할 것까지 기피하며, 도망 다니듯 살아가게 됩니다. 당당하게 내 자리에서 내 생각을 말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감을 가지려고 노력하되, 내 생각을 끄집어낼 안전한 장소와 안전하지 않은 장소를 구분하고 조심하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4, 외부적 기준이 아닌 내 기준을 세울 줄 알아야 합니다.


고통으로부터 나를 구할 수 있기 위해, 나 자신이 바로서야만 합니다. 내 속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한, 나는 세상의 ‘쪼아대는 닭’들과 마주칠 때마다, 끝나지 않는 수치심과 모욕감의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당당히 서서 소신을 가지고 강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소신은, 언제 어느 곳에서나 예의와 존경으로 서로를 대하고, 비교의식, 서열 싸움을 부추기지 않는 평등한 인간 사회를 지향하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고통이 되지 않는 평화롭고 안전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지켜내는 것입니다. 상대와 나를 비교하며 남이 가진 것을 탐하기보다, 내가 가진 것들을 소중히 여기며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필요치 않은 심리적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5. 조용히 내면을 성장시키고 강화시킬 시간이 필요합니다.


내 내면에 소신이 바로 서고 단단해질 때까지, 나를 향해 자꾸 좁은 잣대를 들이대고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들을 가까이하지 않을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제대로 설 수 없는데, 자꾸 주변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는 것은, 공부도 안 하고 시험을 보는 것과 비슷한 결과를 부릅니다. 아직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험만 자꾸 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자신감은 자신감대로 없어지고, 제대로 공부를 할 시간도 빼앗기고, 진짜 내 실력을 보이지 못하는 결과가 계속 나를 따라다니게 됩니다. 


모든 목표는 조용히 준비할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내 내면을 세우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장하고 강해지는데 집중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함부로 하는 말들을 차단해야, 내 안의 약한 소리도 크게 들립니다. 내 안의 소리를 더 잘 듣고 키워가는 노력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의 말을 지혜롭게 거르고 흘려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내 안의 목소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충분히 크게 들려올 때, 내 안의 소신이 외부 기준들을 이겨낼 수 있게 됩니다.










이전 02화 부러워하는 마음, 질투, 시기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