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엄마하고 함께 삽니다
엄마 스타벅스가 문을 닫았다
2000년대 초 아빠와 별거한 이후, 엄마는 미국에 와서 혼자 사시기 시작했다. 엄마는 결혼생활이 힘들었던 만큼, 혼자된 생활을 많이 마음 편해하셨다. 물론 처음에 새로운 곳에 적응하느라 고생도 많이 하셨지만, 어느 정도 적응하고 삶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 배우고 싶었던 음악 수업도 듣고, 합창단 활동도 하고, 그림과 종이 공예도 배우고, 친구들도 많이 만나셨다. 친구분들은 대부분 집에 남편분들이 계시니, 혼자 사는 엄마 집이 친구들이 모이는 아지트가 카페가 되어갔다. 영어가 어렵고 젊은 사람 틈에 자리 차지 하기 눈치 보여, 스타벅스 같은데 행차하기 부담스러운 할머니들끼리 모여 내 엄마 집에 각종 차와 커피, 먹을 것을 날라 매일 그들만의 스타벅스를 차렸다. 각자 할 일이 많은 - 각자의 종교활동, 배움 활동, 땅 빌려 농사짓기, 알바를 하는 분도 많아서 다들 정말 바쁘셨다 - 바쁜 삶이지만, 잠시 잠깐 짬을 내서 그렇게 모두가 함께 모여, 뭘 같이 배우기도 하고, 차 한 잔 나누는 그 시간들이 엄마에게는 정말 큰 낙이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그 즐거운 시간들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엄마도 엄마의 친구분들도 각자의 집에 갇혔다. 남편이라도 있으신 분들은 이야기 상대라도 있지만, 엄마는 철저히 고립되어버렸다. 오가는 친구가 있고, 나갈 일이 있을 때는 혼자 방 한 칸짜리 아파트를 카페처럼 꾸며놓고 오롯이 내가 주인인 내 공간에서 조촐하게 사는 일이 뿌듯한 즐거움이 었는데, 코로나가 시작되고 엄마의 작은 공간 안에 갇혀 버리고, 모두가 코로나에 걸릴 까 봐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기도 꺼리는 상황이 되니, 엄마의 일상의 질이 떨어져도 심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자신만의 공간을 내려놓다
혹시나 코로나가 물러갈까 싶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기다려보다가, 이제 완전히 미련을 버리고, 오늘 드디어 마지막으로 엄마가 살던 아파트에 가서, 그곳 관리소 매니저와 함께 walk-through*를 하고 열쇠를 반납하고 왔다.
walk-through*- 보증금을 그대로 돌려줄지, 집이 손상된 부분이 있을 경우 보증금 일부를 아파트가 차지할지 결정하기 위해 아파트 관리소 매니저와 함께 집을 마지막으로 둘러보는 절차
알레시아라는 매니저는 엄마의 아파트를 둘러보고, 지금까지 본 중 가장 깨끗하게 쓰고 나가는 세입자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엄마가 너무나 모범 세입자였다고 헤어지기 아쉽다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서로 일 년에 몇 번 볼까 말까인 사이였지만, 내가 엄마 서류 처리 및 관리소 측과 소통하는 일에 대표 통역사를 담당하여, 나름 7년 동안 알았던 사이라 마지막 인사를 사는데 무척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에 서로 꾸벅 허리를 숙이고 인사했다. 60이 넘은 그녀가 한국식 인사법을 알고 몸을 숙이니 우리도 장단을 맞추지 않을 수 없었다. 오후에 집에 돌아와 BGE (한전 같은 미국의 전기 공급 기관)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전기 공급 중단 신청을 함으로써 정말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 인터넷은 얼마 전에 끊었고, 모뎀도 반납하였다.
코로나에 곁에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친구와 자유롭게 만날 수 있고, 활동이 많다면, 자식하고 사는 것보다 혼자 독립된 생활을 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코로나 상황을 맞으면서, 곁에 있는 사람들의 중요성을 크게 깨닫고 있다. 엄마는 많이 내향적인 사람이고, 혼자 책일 읽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하는 분이라, 우리 가족과 함께 사는 것보다 혼자 따로 지내는 것이 서로를 위해 훨씬 좋다고 믿어오셨는데, 코로나 상황에 생각이 완전히 바뀌셨다. 우리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을 더 감사하고 즐겁게 받아들이신다. 엄마가 워낙 우리 가족에게 사랑과 헌신을 쏟아부은 역사가 있는지라, 남편과 아이들은 그저 할머니, 장모님이 같이 있는 게 든든하고 좋기만 하다. 엄마는 스스로의 젊은 날을 희생하여 자신의 꽃길 노후를 만든 사람이다. 나는 그런 오래 참고 온화한 성품의 엄마 덕분에 여러 가지 상처와 결핍에도 불구하고 빗나가지 않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내가 엄마를 보며 엄마를 닮아 갈 차례다. 엄마가 우리에게 쏟아부어주셨던 헌신적 사랑을 나도 배울 수 있기를, 엄마에게 엄마의 남은 노후 내내 쏟아부어 드릴 수 있는 딸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엄마가 먼저 시작하신 그 사랑이 우리 가족 안에서 돌고도는 것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