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려보니
2021에 그림을 시작하다
아이패드와 애플 펜슬 같은 디지털 장비를 이용해서 그림 그리기를 시도해 보는 것이 2021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모든 것을 장만하고 준비 완료했지만, 그림 그리는 습관이 몸에 배지 않아, 하루에 15분 투자해서 그림 그리겠다는 계획이 그렇게 쉽게 지켜지는 일이 아니었다. 그냥 선 하나라도 긋자라고 마음먹고 그림판을 억지로 펼쳐야 조금이라도 그리게 된다.
그림을 그리기 힘든 이유
세상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너무 많고, 나는 잘 그린 그림을 너무 많이 보았고, 높아진 내 두 눈에 내 그림은 좀처럼 마음에 차지 않는다. 혼자서 배워보겠다고 마음먹고 이런저런 그림을 보지만, 잘 그린 그림들을 보고 나면 오히려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떻게 저런 멋진 캐릭터를 만들어 꾸준히 스토리를 만들어 나가는지, 그림자는 어떻게 넣어 입체감을 표현하는지, 단순하고 쉽게 그린 것 같은 데 어쩜 저렇게 완벽하고 재밌는지, 캐릭터에 다양한 표정을 어떻게 입히는지, 배경 이미지 같은 건 어떻게 그려 넣을지,... 넘어야 할 산만 한 가득 보인다. 정말 엄두가 나지 않는다.
웹툰 작가들이 존경스러운 뿐
나도 한 번, 실력 작가들이 모인 네**웹툰까진 아니라도, 개인 페이지에 아마추어 인스타툰이라도 연재해 볼까 마음을 먹고 시작해 보니,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작년부터 그림 그릴 준비를 하면서, 나름대로 표정 리스트도 만들어 보고, 캐릭터도 구상해 보고, 스토리 보드도 짜 보았지만, 스토리 자체도 재밌을 자신이 없을뿐더러, 그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서 그림으로 그려내고 완성하는 일은 단시간에 쉽게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절감했다. 재미있을지, 어떤 의미가 될지도 모르는 일에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넣겠다는 마음 자체가 결코 먹어지지 않는다.
블랙 핑크 '제니' 사진을 옆에 놓고 겨우 아래 그림을 하나 그려 보는 것도 나에겐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이 드는 일이었다. 그림자 넣기는 여전히 자신 없음. 하나도 안닮아서 죄송.-_-;;
내가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일과 비교해 보자면
사실, 내가 이런저런 글을 쓰고 소설을 쓰는 일도 시간과 에너지가 꽤 드는 일이긴 하다. 글쓰기가 그리기보다 쉽고 재미있게 느껴지는 걸 보면, 내가 그리기보단 글쓰기에 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내가 만들어 가는 글 내용에 스스로 재미를 느끼는 것도 분명하다. 특히 브런치에서는. 읽어주는 독자님들까지 있으니 글을 이어갈 에너지를 크게 받으면서 나아가는 면도 있다.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그렇지 않았다. 특히 보여 줄 사람 없이 혼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늘 막막하고 글이 마음에 들지 않고, 쓰다 말기를 반복하곤 했었다. 예전에 이공계 연구에 몸담고 있을 땐, 연구와 관련된 주제 이외의 목적을 위해 책 읽고 글 쓰는 데 쓰는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게 느껴져 좀처럼 시간을 내지 못하던 시기도 있었다.
나는 어릴 때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했었다. 그래서 그림은 완전히 손을 놓아버리기 아쉬운 무엇이면서, 동시에 시간과 에너지를 더 투자하기엔 뭔가 자신이 없는 애매한 경계선에 있는 무엇이다. 그림을 경계선 너머로 밀어 버릴지, 경계선 안으로 끌고 와 감싸 안고 노력할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 한 동안은 좀 더 그림을 조금씩은 시도해 볼 것 같다. 남의 그림 따라 그리다 사라져 버린 내 본래의 그림체를 찾고 즐겁게 스토리를 펼칠 수 있는 또 하나의 도구, 내 글과 함께 갈 수 있는 친구를 만들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마음 한 구석에 살아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림에 관한 글을 시작한 김에 이 말을 꼭 하고 마치고 싶다.
멋진 스토리 꾸준히 보여주시는 모든 웹툰 작가님들, 감사하고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