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열한 번째 생일
11년 전 오늘
2009년에서 2010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미 동부 지역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었다. 폭설이라 부를 만한, 과장 좀 보태서 허리까지 쌓이는 눈이 여러 번 왔었다. 첫 번째 폭설이 오는 것을 보면서, 둘째 출산을 앞두고 있던 나는 눈이 쌓여 차가 못나갈 때 진통이 갑자기 오면 어떻게 병원에 가나 싶어 걱정이 되었다. 매우 위급한 상황이 되면 헬리콥터라도 오겠지 걱정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출산이 코앞에 닥친 막달 임산부의 마음엔 걱정이 폭설처럼 수북이 쌓이기 마련이다.
첫 번째 폭설이 오고, 눈을 치우고 길이 깨끗하게 청소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런데 얼마 후 또 폭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요요까지 달고 온 걱정이 훨씬 더 커져있었다. 예정일이 2주 남은 상황이라 언제든 진통이 시작될 수 있었다. 눈이 내리기 전에 병원에 가 있고 싶지만, 미국 병원은 그렇게 호락호락 입원시켜 주는 곳이 아니다. 아기 낳은 산모도, 수술 환자도 혼자 일어설 수만 있으면 집에 돌려보내는 게 규정이라, 정말 병실에 눕혀서, 병원 기기를 이용해서 돌봐줘야 하는 환자가 아니면 받아주지 않는다.
첫째를 낳을 때, 새벽에 진통이 와서 병원에 갔더니, 자궁문이 충분히 열리지 않았다고, 다시 집에 가서 마저 자고 나중에 오라고 해서 두 번 왔다 갔다 하기도 했었다. 첫애 출산은 처음이라 모르는 게 많은 데다, 인생 최초의 극심한 아픔인 데다, 긴장되니 진통 시간이 더 길고, 극도로 두렵고 힘들었던 마구잡이 혼돈의 기억이다. 나도 힘들었지만, 30시간 넘게 아무것도 못 먹고 옆에서 함께 모든 것을 지켜보던 남편도 괴롭고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둘째 때는, 다 아는 상황이니 남편에게 집에 가서 쉬고 오라고 하기도 했었지만, 첫째 때는 남편도 나도 잔뜩 긴장해서 쉬는 법을 몰랐다. 게다가 심했던 입덧 끝에 몸이 약해질 대로 약해졌던 나는 갓 태어난 아기를 돌보는 일도 너무나 힘들어했다. 게다가 산후 우울증에 심한 두통에 신경 쇠약까지 겹쳐 나는 하루하루 버티는 것만도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당시 유학을 와 있던 동생이 지쳐 쓰러진 부모 대신 밤에 아기를 재워주곤 했었다. 자기 자신이나 겨우 챙기고 살던 이기적인 자아를 깨고 나와 누군가를 돌보는 역할을 해내느라 생고생을 했던 우리는 첫째 하나만 잘 키우자고 다신 이런 출산의 고통과 마주하지 말자고 약속했었다.
그랬던 우리가 '덜컥' 둘째 임신을 했다. 아이에겐 절대 비밀이지만, 계획에 없던 임신이었다. 그래서 받아들이고 감수하는 게 더 힘들었었던 건지도 모른다. 남편은 더 어깨가 무거워졌고, 나도 둘째 출산 이후의 삶을 감당하는 것이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어깨가 무거워진 남편은 조금이라도 더 일하고 더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내 마음을 필요를 헤아려 줄 여유가 없었다. 그 와중에 많은 문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고, 집에 히터까지 나가버리는 등, 만삭의 몸으로 견디기가 힘든 사면초가의 상황 속에 갇혔다.
둘째를 임신한 채로 울 일이 많았었던 그 시간의 끝, 곧 출산을 앞둔 막달이 되자 내 입에선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뭐 필요한 거 없냐고 연락하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부탁할 건 한 가지밖에 없었다. 제발 기도를 해달라고 했다. 여러 가지로 어려운 현실에 두 번째 폭설주의보까지 내려진 상황에 나는 기적이 필요할 뿐이었다. 심신이 도무지 편치 않은 시기였으므로, 스트레스가 많았던 만큼,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무척 간절했다. 아기만 건강하게 잘 태어나면 나는 아무 바랄 것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2010년 역사적인 폭설 "Snowmageddon"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데 진통이 시작되었다. 순간순간 극심한 통증에 정신이 아득해지면서도, 눈이 쌓이기 전에 병원에 갈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하며 병원으로 향하던 기억이 난다. 둘째는 모든 것이 빨리빨리 진행되었다. 병원에 들어가서 2시간 만에 아기가 태어났다. 아이도 나도 건강하고 무사했다. 기뻤다. 행복했다. 감사 기도를 드렸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인 상황이었지만 다 괜찮았다. 용서하지 못할 것도, 안달복달할 일도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다 괜찮았다.
둘째를 낳아 집에 데려오고 나서, 드디어 모두가 두려워하던 두 번째 폭설이 내렸다. 유투버와 블로거들이 "Snowmageddon"과 "Snowpocalypse"라고 별명까지 지어 부르며 세상이 떠들썩했던 역사적인 폭설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기와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 산후조리 중이었고, 역사적인 폭설은 그저 피해 가서 다행이었다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집에 둘째를 데려온 날, 첫째가 와서 신기한 듯 쳐다보고 만져보던 게 기억이 난다. 나는 힘이 났고, 산후 우울증도 없었고, 아기는 밤에 딱 한 번만 깼고, 나는 아기를 키워 본 경험자였고, 생각보다 둘째를 돌보는 일이 힘들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더 강한 엄마가 되어갔고, 내 인생도 그때부터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1년 후,
그때 불거져 나왔던 모든 문제들은 나름 다 잘 해결되었고, 나는 소복소복 쌓이는 눈을 보며 아름답다고 느낄 뿐이다. 아무 걱정도 불안도 없다. 수많은 걱정거리들과 불안한 상황 속에서 아이를 지키기 위해 온 힘 다해 싸워봤다는 게 나를 단련시켰다. 곧 죽어도 아이를 품고 있는 내 마음만은 평안히 지켜내야 했다. 그 처절한 분투 속에서 마침내 내 마음을 지키는 법을 배워낸 덕분에, 나는 지금도 어떤 상황 속에서도 불안 없이 걱정 없이 산다. 분명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었고, 매 순간 아이들의 눈을 보며 더 바른 선택을 한다. 엄마가 되는 일, 엄마가 되고서 겪었던 모든 경험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감사할 일 밖에 없다. 그러니 아이들은 저를 키우느라 엄마가 고생했다고 많이 힘들었다고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모든 자식들의 죄책감을 사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