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작가의 산문집, <연필로 쓰기>를 음미하다가
김훈의 세상으로 초대받은 나의 자세
작년 초, 미국을 방문했던 친구가 선물해준 책을 가끔 꺼내 들어 읽곤 한다. 처음부터 쭉 읽는 것이 아니라, 그날그날 우연히 펼친 페이지 속 한 구절 한 문단을 가만히 음미하듯 읽는 편이다. 1948년생, 내 부모님 세대 분의 글인 만큼 한 번에 쭉 읽어갈 공감대가 탄탄하게 잡히지 않아서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소화하고 이해하는데, 작가의 경험치를 가늠하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하지만 김훈 작가의 깔끔한 문장으로 이룬 농밀한 표현들은 그렇게 시간 들여 조금씩 음미해 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70대의 시선과 감정을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다.
늙어서 기쁘다는 양반의 말
너무 늦기는 했지만, 나이를 먹으니까 자신을 옥죄던 자의식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나는 흐리멍덩해지고 또 편안해진다. 이것은 늙기의 기쁨이다. 늙기는 동사의 세계라기보다는 형용사의 세계이다. 날이 저물어서 빛이 물러서고 시간의 밀도가 엷어지는 저녁 무렵의 자유는 서늘하다. 이 시간들은 내가 사는 동네, 일산 한강 하구의 썰물과도 같다. 이 흐린 시야 속에서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선연히 드러난다. 자의식이 물러서야 세상이 보이는데, 이때 보이는 것은 처음 보는 새로운 것들이 아니라 늘 보던 것들의 새로움이다. 너무 늦었기 때문에 더욱 선명하다. 이것은 '본다'가 아니라 보인다'의 세계이다.
연필로 쓰기, 김훈 산문 (문학동네), p. 74
자의식의 경계가 무너지고 흐리멍덩해지고 그래서 편안해지는 느낌을, 김훈 작가는 '늙기의 기쁨'이라 표현하고 있다. 자의식의 차단과 억압 속에 갇혀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이 봉인이 풀리고 보이기 시작하는 시간. 젊음이라는 고통의 마법이 풀리는 시간.
젊음이라는 저주와 굴레
나를 비롯해 주변 사람 누구도 '20대로 돌아갈 수 있으면 돌아갈래?'라는 질문에 돌아가겠다고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너무 모르고, 너무 아프고, 너무 궁핍하고, 너무 혼란스럽다고 하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20대에 대한 기억이다. 아무리 희망 찬 젊음이 좋고, 탱탱한 피부와 삼단 같은 머릿결의 아름다움과, 결혼 전이라 맘껏 펼쳐진 자유연애 - 사실은 이것도 결국 미성숙이 불러오는 반복되는 패턴의 고통을 만들 뿐이지만 - 기회가 부러워도, 조금 더 나이 먹고 느끼는 안정감과 여유, 세상을 좀 더 분명히 보고 아는 지혜와 판단력과 바꾸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 언급한 이 모든 것들이 없어지지 않고 함께 가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20대로 돌아가면 좋겠지만 말이다.
젊음은 상처 받고 찢어지고 낡고 하루하루 모래가 떨어지는 걸 느끼면서 젊음이 사라지는 불안감을 맛보라고 있는 고통이며 저주이고 굴레다. 그 과정을 거쳐야만 봉인을 해제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아이 둘을 낳으면서 여러 번 찢어지고, 상하고, 오랫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자고 폭풍 같은 일상의 고난에 치여 삶이 부서지고 머리를 세게 몇 번 부딪힌 듯, 김훈 작가의 말대로 약간은 흐리멍덩해지고 나서야 내 삶은 훨씬 더 편안해졌다.
젊음과 늙음의 경계에 서 있는 나
젊음이 다 빠져나가기 아쉬워 끈질기게 붙들어 보려고 발악을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의 시간은 시끄럽기 짝이 없다. 성인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을 유지하려면, 조금 남은 젊음이라도 끝까지 지키려면 부지런히 운동하고 몸 관리를 해야 한단다. 살아온 만큼 앞으로 더 살아갈 의지를 얻으려면 삶의 의미를 찾고 마음 관리도 해야 한단다. 머리카락이 숭덩숭덩 빠지지 않으려면 두피 마사지를 부지런히 해야 하고, 흰머리 나는 사람은 염색으로 젊음을 하루라도 더 빌려 오려고 애를 쓴다. 이건 먹으면 안 되고, 저건 먹어야 하고, 스트레스받으면 안 되지만, 그렇다고 일도 긴장감도 완전히 놓아 버릴 나이도 아니다. 결혼하고 자녀를 낳았으면 돌보고 챙겨야 하는 가족이라는 짐이 어깨 한 가득이다. 능력이 많은 나이고, 아는 것도 많고, 경험에서 우러난 지혜도 많고, 여유도 있고, 아직은 힘도 있으니, 많은 것을 가진 듯 하지만, 탁 놓아 버릴 수 없어, 무거운 짐을 내 등에 다 올려놓고 숨 차고 벅찬 시간을 보내기 쉬운 나이다.
70대 김훈 작가의 시간
그의 글에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는, 완전히 탁 놓아버린 자, 저주의 봉인이 풀린 자, 그런 자의 인생이 불러오는 자유와 풍부함이 느껴진다. 죽을 날까지 있는 힘을 다해 연필로 자신에게 열린 세상의 새로움을 그리겠다는 일념밖에 없는 작가의 심플하고 목적 분명한 삶이 멋지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늙어 죽을 때 다 된 할아버지라 불쌍하지 않다. 오히려, 그가 누리는 늙기의 기쁨, 내면에 자유와 기쁨을 이룬 이의 삶이 부럽고 멋있다.
나의 노후도 그러하기를 바란다. 붙들지 말아야 할 것들을 미련 없이 떠나보내고, 봉인이 풀리고 자유를 얻고 그때부터 눈에 들어오는 진짜 세상을 열심히 그려낼 수 있는 작가로 여생을 마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때까지 습작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