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비춰보는 거울
지금 저희 집 둘째는 한참 JK 롤링의 '해리포터 (Harry Potter)'에 빠져있습니다.
주인공 '해리'가 존재하는 세계가 아이의 머릿속에 생생히 그려지고, 스토리가 리얼하게 다가오는 만큼 아이는 책 속의 인물들에게 제대로 감정이입하며, 여러 가지 강렬한 감정에 사로잡히는 듯합니다.
어제 문득, 아이가 책을 읽다 말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저에게 터덜터덜 묵직한 걸음으로 다가왔습니다.
엄마, 나 책 읽다가 조금 우울한 것 같은 마음이 들었어요.
저희 집 남자아이들은 말로 전체 그림을 다 그려주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하나 질문을 해 보아야 합니다.
엄마: 책 내용 때문에 그런 거야?
아들: (끄덕끄덕)
엄마: 어떤 장면 읽을 때 그런 기분 들었는데?
아들: 더들리*
*'더들리'는 부모를 잃은 해리 포터가 아기였을 때부터 해리를 키운 페튜니아 이모의 응석받이 아들 이름입니다.
엄마: 더들리가 나오는 장면을 읽을 때 마음이 안 좋았어?
아들: 응. 내가 더들리 같은 응석받이 아이 (Spoiled Kid)일까 봐.
엄마: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아들: 더들리가 생일에 생일 선물을 아주 많이 받는 것을 보고,... 나도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아주 많이 받잖아... 엄마 아빠가 내가 갖고 싶은 건 뭐든 다 사주잖아. 그렇게 하면 더들리같이 응석받이 아이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내가 혹시 내가 해야 하는 옳은 일들을 하지 않고 있는 건 아닌지, 옳지 않은 것들을 하며 시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돼...
아이는 곧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이 되었습니다.
저는 아이의 두 손을 꼭 잡고 흔들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왜 엄마가 기쁜지 이유를 들려주었어요.
엄마: 너 지금 네 머릿속에서 굉장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 알아? 엄만, 지금 네가 너무나 자랑스럽다!
아들: (눈이 둥그레지며 눈물이 쏙 들어가는 표정으로 엄마 말에 초집중)
엄마: 책을 읽으면서 네 마음을 네 모습을 '마음의 거울'에 비춰본 거야. 네가 되고 싶지 않은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생각을 하게 된 거라고. 네가 선택해야 할 옳은 일과 선택하지 말아야 할 옳지 않은 일을 열심히 배우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지금.
아들: (표정이 많이 환해지며) 진짜? 그럼 내 브레인이 조금 더 스마트해진 거야?
엄마: 그럼. 좋은 스토리는 '거울' 이거든. 책을 한 권 한 권 읽을 때마다, 그런 일이 일어나. 책을 읽으면 자신의 마음을 '거울'에 비춰보게 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돼. 점점 더 스마트해지고, 점점 더 훌륭한 사람이 되어가는 거지. 책을 읽지 않으면 ignorant 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기 쉬워. 그런데, 지금 너한테 일어난 일은 책이 너를 그렇게 ignorant 한 사람이 되지 않게 네 모습을 한 번 돌아보게 한 거야.
아들: ignorant 하다는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이야?
엄마: Ignorant 하다는 건, 자신이 모르면서도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모르고 자신이 아는 줄 착각하고 함부로 막말하고 막 행동하며 사는 태도야. 한 마디로 무식한 거지. 배우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ignorant 한 태도로 살아가게 되기 쉬워. 더들리도 ignorant 한 거야. 그 아이는 책을 읽지 않지. 그러니까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일도 없지. 선물을 많이 줘도 감사하지도 않고, 물건을 함부로 다루고, 엄마 심부름도 하지 않지. 먹을 때도 놀 때도 절제가 없지. 조금도 참을 줄 모른단 얘기야. 그리고 무엇보다 약한 아이를 bully (왕따)하지. 너는 아니잖아. 너는 책도 많이 읽고, 항상 엄마를 잘 도와주고, 때론 참고 기다릴 줄도 알고,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건 옳지 않다는 걸 알잖아. 너는 더들리 하곤 전혀 다르지, 안 그래?
아들: 맞아. 다르네.
엄마와 대화를 마치고 돌아서는 아이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습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아이는 모처럼 온라인 수업이 없는 주말 아침이 온 것을 즐기며, 책을 읽고, 레고 놀이를 하고, 그림도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분주히 합니다. 그리고 지나가면서 눈도 마주치지 않고 엄마에게 한 마디를 툭 던집니다.
엄마가 어제 해 준 이야기가 큰 도움이 됐어.
상남자 둘째. 호수에 슬쩍 던져보는 돌멩이 같은 '무뚝뚝한 상남자의 지나가는 한 마디'가 깊은 감사의 표현으로 다가와 마음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