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ucated: A Memoir by Tara Westover 18
룸메이트들과 점점 벌어지는 관계
룸메이트 섀넌과 메리와의 관계는 날이 갈수록 더 힘들어진다. 산골 소녀 타라와, 도시 소녀들은 위생과 청결에 대한 개념 자체가 다르다. 룸메이트들은 타라가 손을 잘 씻지 않는 것, 설거지를 제때 하지 않는 것, 냉장고에 음식이 썩어가게 내버려 두는 것, 비누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것, 일주일에 한두 번만 샤워하는 것들에 기함한다. 그들의 불만스러운 표정을 보면서 타라는 타운에 사는 외할머니를 생각한다. 예쁘고 깨끗하게 집을 관리하는 것에 연연하는 그녀들에 대해 타라는 '천박하다(frivolous)' - 아버지가 외할머니를 그렇게 생각했던 것처럼 - 고 생각할 뿐, 자신의 방식을 바꾸어 그들의 기준에 맞출 마음이 없었다.
The atmosphere in the apartment was tense. Shannon looked at me like I was a rabid dog. and I did nothing to reassure her.
경제적인 문제에 학업적 문제까지
타라의 은행 잔고는 점점 줄어드는데, 그녀는 장학금은커녕, 이번 학기 수업을 패스해서 다음 학기에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을지조차 확신이 서지 않는다.
미국 역사 과목은 차츰 쉽게 느껴지기 시작하고, 음악 이론도 나름 괜찮았지만, 몰몬 성경만을 접하며 읽기와 쓰기를 배운 타라에게 영어 수업은 장애물이었다. 교수의 표현에 의하면, 타라는 작문 능력이 있긴 한데, 뭔가 문체가 좀 딱딱하고 어색하다고 했다.
I struggled in English. My teacher said I had a knack for writing but that my language was oddly formal and stilted. I didn't tell her that I'd learned to read and write by reading only the Bible, the Book of Mormon, and speeches by Joseph Smith and Brigham Young.
여러 수업들 중에 가장 큰 문제는, 서구 문명 수업이었다. 유럽이 뭔지도 정확히 모르는 타라 입장에서, 강의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고, '유태인 대학살 망신' 이후, 그녀는 물어봐야 할 것들을 물어보지 못했다.
애증의 서구 문명 수업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 문명 수업은 타라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기도 했다. 바네사라는 친구가 함께 있기 때문이었다. 바네사는 단정했을 뿐 아니라, 평생 콜라 - 술, 커피와 함께 몰몬교도들이 자제하는 음료 - 를 마신 적도 없고, 안식일에 숙제를 한 적도 없다고 했다. 이 대학에서 만난 사람 중 유일하게 이교도로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2월이 되자, 교수는 중간고사를 한 번의 시험으로 보는 대신, 매달 시험으로 대체하겠다고 했다. 그 첫 시험이 바로 일주일 뒤였다. 타라는 시험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교과서가 따로 없었고, 주어진 자료라곤 미술작품집과 음악 시디 몇 개가 다 였다. 미술작품집을 뒤적거리며, 음악을 들었다. 누가 그림을 그렸는지, 누가 작곡했는지 이름들을 정확히 암기하지 않았다. ACT 시험처럼 사지선다형일 거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첫 주관식 시험
서구 문명 수업, 첫 시험 시간이 되었다. 교수는 프로젝터를 켜서 그림을 하나씩 보여주고, 학생들은 1분 안에 그 작품의 제목과 작가의 이름을 써야 했다. 타라는 너무나 당황했다. 그림이 몇 개나 지나갈 때까지 할 수 있는 게 없어, 가만히 앉아 있었다. Caravaggio의 Judith Beheading Holofernes라는 작품이 스크린에 떴을 때, 그녀는 이 작품이 굉장히 인상 깊다고 느꼈었기 때문에, 정확한 스펠링은 헷갈렸지만, 작가의 이름과, 제목이 대충 기억이 났다.
그녀는 이 작품을 보면서 자신이 아버지와 닭잡던 순간을 떠올렸었다. 죽음의 순간 닭이 일으키는 경련으로 인해, 흩날리는 닭털과, 옷에 흩뿌려지던 피가 떠올랐다. 그녀는 Caravaggio의 그림이 말이 되는 그림일까 싶었다. 누구도 무언가의 머리를 자르면서 저런 고요하고 무관심한 표정을 지을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I'd beheaded chickens with Dad, clutching their scabby legs while he raised the ax and brought it down when the chicken convulsed with death, scattering feathers and spattering my jeans with blood. Remembering the chickens, I wondered at the plausibility of Caravaggio's scene: no one had that look on their face - that tranquil, disinterested expression - when taking off something's head.
정확한 스펠링이 기억이 안 나서 이렇게 저렇게 적어보다가, 옆자리에 앉은 바네사의 시험지를 슬쩍 보니, 바네사는 정확하고 깨끗하게 답을 적었다. 타라는 슬쩍 보고, 자신이 기억을 못 하던 Holofernes라는 제목의 일부인 단어를 채워 넣었다. 하지만 양심상, 작가 이름 Caravaggio는 자신이 잘못 쓴 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것까지 베껴 쓰면 진짜 커닝이 될 것 같아서였다.
나머지 문제들은 바네사의 시험지를 흘끔거려도 소용이 없었다. 그녀의 에세이를 카피할 수도 없었으며, 답을 구성할 기본 문장을 쓰는 작문 기술도 갖추지 못한 그녀였다. 시험을 제대로 치를 기술도 지식도 턱없이 부족할 뿐이었다. 그녀가 수업시간에 배운 것들과 연관 지을 수 있는 그녀의 경험은 닭 목을 베는 경험뿐이었다. 그녀가 아는 것은 닭 잡을 때는 입 벌리고 웃지 말아야 한다는 것, 안 그러면 입 안으로 닭털과, 닭피가 튈 수 있다는 것.
시험이 끝나고, 그녀는 겨울 한파를 맞으며, 멀리 보이는 Wasatch 산 정상을 바라보며 바랬다.
대학을 계속 다니고 싶다고. 모든 게 낯설고 힘들지만 그래도 대학에 남고 싶다고. 그녀가 기록한 당시의 심정은 다음 한 문장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I don't understand why I wasn't allowed to get a decent education as a child.(나는 왜 한 명의 (교육받을 권리가 있는) 어린이로서 (남들처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며칠 뒤 그녀는 시험 결과를 받았고, 결과는 낙제(failed)였다.
야생 부엉이
어느 겨울 타라가 아주 어린 소녀였을 때, 루크 오빠가 어디서 큰 뿔 부엉이를 찾아 집에 들고 왔다. 타라만큼 큰 부엉이는 의식이 없고 반쯤 얼어 있는 상태였다. 루크와 타라는 부엉이 깃털을 만져보며 매우 부드럽다고 느꼈다.
날개가 피에 젖어 있었다. 가시가 박혀 있었다. 어머니는 자신은 수의사가 아니라 사람만 돌본다고 말하면서도, 부엉이의 날개에 박힌 가시를 제거하고 상처 부위를 깨끗이 소독해 주었다. 하지만 완전히 나으려면 몇 주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대로 밖에 나가면 죽게 될 것이고, 의식이 돌아와 인간들이 가까이 있는 걸 알면 도망치려고 죽기를 각오하고 난리를 칠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아버지는 뒷문 앞 부엌 바닥에 부엉이를 내려놓았다.
엄마에게 부엌에 가지 말라고 했지만, 엄마는 부엌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부엉이한테 전세 내 줄 일 없다며, 아침 식사 준비하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엉이는 인간의 침입에 난리가 났다. 도망갈 출구를 찾으려고 필사적으로 부딪치고 긁으며 난리를 쳤다. 아이들은 울고, 엄마는 후퇴하고, 아버지는 합판을 하나 찾아와, 부엌을 반으로 나눠 막았다. 부엉이는 그 공간에서 몇 주를 보냈다. 그러다가 부엉이가, 아무것도 먹으려 들지 않고 너무 못 견뎌한다 싶은 어느 날 뒷문을 열어, 탈출시켜 주었다. 인간의 집에 속하지 않는 존재였으며, 속하기를 배울 수도 없었다.
The owl grew restless. When it began to refuse food, we opened the back door and let it escape. It wasn't fully healed, but Dad said its chances were better with the mountain than with us. It didn't belong. It couldn't be taught to belong.
누군가에게 힘들다고 잘 안된다고 말하고 싶어
타라는 누군가에게 시험을 망쳤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 졌다. 타일러 오빠를 생각했지만 왠지 내키지 않았다. 수치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타일러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는 사실 때문일 수도 있다. 그의 아내는 타일러의 옛 가족에 대해 전혀 몰랐다. 타일러의 옛날 가족 구성원인 입장에서, 그에게 연락하는 일이 망설여졌다.
대신, 타라는 집에 전화를 해 보았다. 아버지가 받았다. 어머니는 아기 태어나는 집에 아기를 받으러 가시고 안 계셨다. 아버지가 학교 생활은 어떠냐고 물었을 때, 다 좋다고 거짓말을 할까 생각도 했지만, 솔직한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힘들어요.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Not great. I had no idea it would be this hard.)
정적이 흘렀다. 타라는 아버지의 표정이 굳어지는 걸 상상하며, 아버지가 한마디 따가운 충고를 하시리라 각오했다. 놀랍게도, 아버지는 조용한 목소리로 다정하게 말했다.
괜찮을 거야, 우리 딸.(It'll be okay, honey.)
타라는 아버지의 부드러운 반응에 힘을 입어, 자신의 문제를 더 드러냈다.
괜찮지 않을 거예요. 장학금 못 받을 거고. 성적도 자신 없어요.(It won't. There will be no scholarship. I'm not even going to pass.)
타라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담담하게 말했다.
장학금 따위 못 받으면 못 받는 거지. 아빠가 좀 보태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분명 방법을 찾을 거야. 지금은 그냥 즐겁게만 지내라, 알았지? 언제든 필요하면 집에 오고.(If there's no scholarship, there's no scholarship. Maybe I can help with the money. We'll figure it out. Just be happy, okay? Comeon home if you need.)
타라는 전혀 기대치 않았던 아버지의 다정한 말에 얼떨떨했다. 다음에 만나면 아버지가 돌변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버지가 타라를 도와주고 싶어 했던 그 순간의 마음만은, 타라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다.
시험 요령을 터득하고 친구를 잃다
3월이 되었고, 서구 문명 수업 시험이 다가왔다. 타라는 지난번 낙제를 교훈 삼아, 작가들의 이름과 제목들을 달달 외우며 열심히 공부했다. 문제는 자신의 강의노트 내용이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바네사에게 노트를 좀 빌려달라고 했더니, 바네사가 거절하면서 대신 함께 시험공부를 하자고 했다. 바네사의 기숙사 방에 가서 함께 공부를 하며 타라가 노트에 필기한 내용을 해석하지 못해 괴로워하니 바네사가 걱정 말라고, 네가 필요한 내용은 교과서에 다 있다고 말해주었다. 타라는 무슨 교과서를 말하는 거냐고, 자신은 교과서 없다고 말했다. 바네사는 타라가 장난치는 줄 알고 웃었지만, 타라의 표정은 심각했다. 바네사는 타라가 미술 작품집이라고 생각했던 책을 펼쳐 보여주었다. 타라는 거기 나오는 그림만 봐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 읽어야 하는 교과서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바네사는 책을 넘겨 읽어야 할 부분들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바네사의 목소리는 더 이상 다정하지 않았다.
타라는 자신이 시험에 낙제한 이유를 찾았고, 열심히 공부해서 다음 시험에서 B를 받고, 그다음 시험에서는 A, 심지어 반액 장학금까지 받는 쾌거를 이루었지만, 바네사는 더 이상 타라의 곁에 앉지 않았으므로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없었다.
대학 합격 통지를 받고, 어느 날, 아버지에게 카드를 한 장 받았다. 그동안 못해준 게 많아서, 못난 모습만 보여서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끝에 -못난 아버지가 -라고 적혀 있었다. 그 카드가 주는 느낌이 생소해서 그 카드의 기억이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그런 기억이 한 번 더 있었다. 어렸을 때, 나는 사이다 병에 달달한 과자 부스러기를 넣고, 개미를 모으고 있었다. 그러다가 병을 떨어뜨려 산산조각이 났다. 아버지가 옆에 있었는데 호통이 떨어질 거라고 예상한 순간에, 아버지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안 다쳤으면 됐다며 묵묵히 병을 치워주셨다.
타라가 자신을 도와주고 싶어 하는 부드럽고 다정한 마음을 보이던 아버지와의 통화에 대한 기억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모습을 보며, 나의 옛 기억들이 떠올랐다. 예상과 달라서 강한 감정을 남긴 기억들이 두고두고 오래가는 같은 종류의 기억인 것이다.
자신과 너무나 다른 기준을 가지고 살며, 경험도 지식수준도 다른 사람들 틈에서, 도시에 나와 사는 것도 처음, 대학에서 받는 교육이 최초의 교육인 입장의 타라가 실패하고 넘어지면서도 끝까지 성실하게 나아가는 모습이 무척 감명 깊었다. 또한 소신 - 아버지가 세뇌시킨 근본주의적 소신이라 해도 - 을 가지고 옳지 않은 사람들과 섞이느니 고독을 선택하는 그녀의 기개와, 모르는 것이 많아 전화해서 물어보고 싶은 간절한 순간이 무척 많았을 텐데도 오빠의 새로운 삶에 대한 배려와, 누구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해내는 독립심이 참 존경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게 자랐지만, 그녀가 가진 좋은 점들이 많다. 나도 힘들게 자란 부분이 있고, 결핍들이 있지만, 나에게도 좋은 점들이 많으리라는 확신이 들고 위안이 된다. 타라가 그들과 다른 것이, 보편성을 갖추지 못한 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 들지 않는다. 사람은 다 다를 수 있다. 달라도 괜찮다. 이해해 보려고 한 발자국 나설 용기도 없으면서 뒤에서 모여 욕하는 사람들이 비겁한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미국 사람들과 언어도 문화도 생김도 많이 다른 것에 대해서도 나는 타라를 생각하며, 나만의 기준과 소신을 가지고 당당하게 대응하며 살아가기로 마음먹는다. 미국 살이 20년 만에 더 뻔뻔해지는 법을 배워보려 한다. 이제 남에게 맞추려는 노력, 닮으려는 노력은 그만할 것이다. 그만 애쓸 것이다. 그동안 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젠 나라는 사람 그 자체, 독보적인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내 마음을 더 배려해 주고 편들어 주며 살아가 볼 것이다. 나는 이제 그래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