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발견 17. 집 떠나 드러나는 내 삶의 구멍들

Educated: A Memoir by Tara Westover 17

by 하트온

2부


챕터 17. 성스러운 삶을 유지하기 위해 (To Keep It Holy)


도시의 소리


이듬해 새해 첫날, 타라의 어머니는 타라를 유타주로 데려다주었다. 타라가 살 곳은 학교에서 1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부엌, 리빙룸, 방 세 개가 딸린 아파트였다. 그녀는 섀넌과 마리아라는 룸메이트와 함께 살아가게 되었다. 고즈넉한 산골 라이프에 익숙한 타라의 귀는 갖가지 도시 소음 때문에 잠을 이루기 힘들어했다.

It wasn't quiet. Nowhere was quiet. I'd never spent more than a few hours in a city and found it impossible to defend myself from the strange noises that constantly invaded. The chirrup of crosswalk signals, the shrieking of sirens, the hissing of air brakes, even the hushed chatter of people strolling on the sidewalk - I heard every sound individually. My ears, accustomed to the silence of the peak, felt battered by them.


상종 못할 룸메들


섀넌을 처음 만난 날, 그녀는 분홍색 파자마 바지에 하얀 끈나시를 입고 어깨를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의 엉덩이에는 juicy (흥미진진한, 수분이 많은)이라고 적혀있었다. 타라의 아버지는 그런 차림새의 여자들을 gentiles (이교도, 이방인)이라고 부르곤 했다. 타라는 조금이라도 그런 여자들의 비도덕성에 오염될까, 항상 피해 다녔었다. 그런데 이런 여자와 한 집에 살게 되는 상황이 되자 그녀는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런데, 더 기함할 노릇은 그녀도 일요일마다 교회에 다니는 같은 몰몬교도라는 사실이었다. 이교도들은 어디에나 있으며 심지어 몰몬교인 대부분도 이교도라고 했던 아버지의 말이 생각났다. 섀넌을 만나고 나서 타라는 문득, 자신이 다닐 대학교 학생들 모두 이교도인 게 아닐까 의심이 되었다.


다음 날 만나게 된, 또 다른 룸메이트 메리는 좀 더 단정하게 옷을 입고 있었다. 하는 행동도 이교도 같지는 않아서 타라는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 메리는 학교 시작하기 전에 냉장고를 채워야 한다며 식료품 쇼핑을 했다. 그 날은 쇼핑을 금하는 안식일인데 말이다.


타라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사는 두 룸메이트를 피해 제 방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새 학기 첫날


대학에서의 첫날, 타라는 캠퍼스를 헤매며, 수업을 찾아다니느라 힘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교실 찾는 일은 점차 적응한다. 진짜 문제는 교수들이 쓰는 말들 중 다른 사람은 다 아는데 타라만 못 알아듣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가령 "에세이 양식(essay form)"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으면 누구나 알 단어를 고등학교를 다닌 적이 없는 타라는 알아듣지 못했다. ACT 시험이 그녀의 첫 시험이 었던 타라는 모든 시험이 4지 선다형일 것이라 짐작할 뿐, 대학 시험이나 퀴즈에 어떻게 준비할지 알지 못했다. 또한 이해되지 않는 개념이 너무 많아 아무리 읽어도 무슨 의미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미국 역사 시간에 본 퀴즈 시험을 완전히 망쳐 버렸다. 그녀는 제대로 교육을 시켜주지 않은 부모를 원망하는 대신, 대학이 잘못된 선택이 아닌가 생각했다. 집에서 살 때는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마음이 생겼는데, 오히려 집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아버지의 가르침이 더욱 소중해졌다. 홈스쿨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다.

I took the quiz and missed every question. That failure sat uneasily in my mind. It was the first indication of whether I would be kay, whether whatever I had in my head by way of education was enough. After the quiz, the answer seemed clear: it was not enough. On realzing this, I might have resented my upbringing but I didn't. My loyalty to my father had increased in proportion to the miles between us. On the mountain, I could rebel. But here, in this cloud, bright palce, surrounded by gentiles disquised as saints, I clung to every truth, every doctrine he had given me. Doctors were Sons of Perdition. Homeschooling was a commandment from the Lord.


유태인 대학살이 뭔가요?


타라는 서양 문명 수업 시간에 바네사라는 친구를 만났다. 목까지 올라오는 헐렁한 블라우스를 단정하게 입은 마음에 드는 친구였다. 그녀는 그 수업 시간에 점점 마음이 편해져, 하루는 손을 번쩍 들어 교수에게 교과서에 나오는 모르는 단어에 대한 질문을 했다.


유태인 대학살이 무슨 뜻인가요? (I don't know this word. what does 'Holocaust' mean?)


타라가 이 질문을 하는 순간, 모두가 얼어붙었다. 교수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Thanks for that"이라고 이상하게 얼버무리곤 타라의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고, 다시 강의를 이어갔다. 다른 학생들이 자꾸 타라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수업이 다 끝나고 바네사가, 그걸 주제로 장난치지 말라고, 농담 거리가 아니라며 따끔하게 충고했다. 타라는 컴퓨터실에 가서 검색해 보고, 유태인 대학살이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스스로의 무지함에, 엄마에게 소리치고 화내고 싶은 자신의 강한 감정에 타라는 크게 충격을 받았다.

I went straight to the computer lab to look up the word "Holocoast." I don't know how long I sat there reading about it, but at some point I'd read enough. I leaned back and stared at the ceiling. I suppose I was in shock, but whether it was the shock of learning about something horrific, or the shock of learning about my own ignorance, I'm not sure. I do remember imagining for a moment, not the camps, not the pits or chambers of gas, but my mother's face. A wave of emotion took me, a feeling so intense, so unfamiliar, I wasn't sure what it was. It made me want to shout at her, at my own mother, and that frightened me.


다음 강의 시간에 타라는 바네사에게 그런 농담해서 미안하다고 다시는 그런 말 하지 않겠다고 사과했을 뿐, 자신이 그 단어를 왜 몰랐는지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리고 학기 내내 모르는 것이 있어도 절대 물어보지 않기로 결심했다.



내가 거해야 할 자리


그녀는 월요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숙제를 앞두고, 토요일에 다 마치려고 했지만, 자정이 지났는데도 숙제가 끝나지 않았다. 타라는 안식일이 시작되었으니 공부를 멈추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자고 일어난 게 아니니 괜찮다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공부를 하다 잠들었다.


다음 날 교회에 갔는데, 룸메들이 다른 친구들과 함께 오후에 뭐하고 놀까 의논을 하며 타라도 초대한다. 하지만 타라는 거절한다. 의아해하는 친구들에게 섀넌이 타라가 "very devout(매우 독실하다)"이라고 설명을 해준다. 타라는 같은 몰몬교회를 같이 다녀도, 다른 사람들과 자기 가족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분명히 알았다. 그들은 단정하고 경건해야 한다는 걸 믿었지만, 타라 가족은 그것을 실천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을 믿었지만, 타라 가족은 모든 상해/부상 상황에서 하나님의 능력에만 의지했다. 그들은 마지막 날에 대비해야 한다는 걸 믿었지만, 타라 가족은 진짜 준비를 했다. 그녀는 이미 그녀의 가족만이 진짜 몰몬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 날 그 대학 교회 모임에서 처음으로 타인과 자신 사이의 커다란 차이를 온몸으로 느꼈다. 그날 그녀는 분명히 깨달았다. 자신의 가족 편에 서든지, 이방인 편에 서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뿐, 그 사이 어디에도 거할 틈이 없다는 것을.

I'd known that the members of my own family were the only true Mormons I had ever known, and yet for some reason, here at this university, in this chapel, for the first time I felt the immensity of the gap. I understood now: I could stand with my family, or with the gentiles, on the one side or th other, but there was no foothold in between.


섀넌이 타라의 자리를 맡아두었으니 오라고 타라에게 손을 흔들자, 그녀의 옷이 내려가며 그녀의 속살이 드러났다. 타라는 룸메들을 무시하고, 최대한 그들과 먼 구석 자리로 가서 앉았다. 모두를 따돌리고 밀려드는 이 익숙한 고독감이 타라는 오히려 반갑고 좋았다.




조용한 산속에 살던 사람이, 도시에 살기 시작하면 얼마나 많은 것이 다를까. 한 번도 학교를 다닌 적이 없고, 집에서도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 공립교육을 다 받은 사람들과 대학을 같이 다니며 수업을 받으면 자신이 얼마나 모자라고 무식하게 느껴질까.


타라가 아버지와 오빠의 학대를 벗어나, 위험한 삶을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혼자 살면 자유를 느끼고 더 편하고 행복해졌으면 했는데, 너무 낯선 환경, 모르는 개념들 천지, 자신의 머릿속에 세뇌된 원칙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좋게 볼 수 없어 좋은 관계를 이룰 수 없는 상황에서 타라가 얼마나 외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지가 그대로 느껴진다. 타라의 거대한 결핍감과 충격이 내 마음에 그대로 다가와 내 마음이 한없이 슬프고 아프다.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을 잠시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아무 말이나 함부로 뱉는 사람들, 세상 무서운 것 없다는 듯 분위기를 주도하며 막말하고 막 행동하는 사람들을 싫어하게 되는 내 인간관계 패턴의 근본 이유를 생각해 본다. 무서운 아버지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너무 조용히, 거절 한 번 못하고 벌벌 기며 순종 라이프를 살았기 때문에 - 대학 입학원서를 내 맘대로 쓰고 뒤로 호박씨를 깔지언정 -, 나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행동을 막 하는 사람들, 마구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감정 자기 기호 서슴없이 다 주장하는 사람들을 참아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데 지쳤다. 나에게도 조금 더 과감하고 당당하게 할 말 다 하라고 허락하고, 그들도 덜 불편해하고 싶다. 그래서 더 자유로워지고 싶다. 나를 묶고 있던 정신적 굴레의 찌꺼기들까지 다 털어 버리고 싶다. 나에게 허락해 줄 수 있는 모든 자유를 다 찾아 허락해 주겠다고 마음먹는다.


한 편으로는 타라가 헤쳐가는 길, 타라가 극복해 가는 길이 너무나 기대가 된다. 뭔가 그 길에 내가 배울 것들이 가득할 것 같은 느낌이다.



부산이 고향인 내가 서울에 살면서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을 나는 꽁꽁 묻어 두었던 것 같다. 사투리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로 놀림당하는 것 같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 많았는데, 은근 지기 싫어하는 성격에 그러한 입장이 된 것에 대해 수치스럽게만 생각했던 나는 그때의 삶을 솔직하게 펼쳐 놓고 그때의 내 마음을 돌봐줄 마음을 먹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타라가 자신이 대학/도시라는 환경에 처음 가서 느꼈던, 모든 당황스럽고 수치스러웠던 순간들, 새로 만난 사람들과 좀처럼 섞이지 못하는 모습을, 자기 내면의 한계들을 다 열어 보여준다. 그때의 자신의 마음을 돌아봐주고 안아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도 이제 다시 언급하기 싫어, 다시 그때의 감정들을 느끼기 싫어, 묻어 두었던 모든 순간들을 열어 그때의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살피고 보듬어 주겠다고 마음먹는다. 빛 가운데로 나아가겠다고 결심한다. 다만 너무 깊이 묻어놔서 끄집어내는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습작을 거듭하다 보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날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배움의 발견 16. 아버지의 뜻을 거역한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