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발견 20. 너희 집 냄새

Educated: A Memoir by Tara Westover 20

by 하트온

챕터 20. 아버지의 가르침 (Recitals of Fathers)


타라의 세상과 찰스의 세상


찰스는 타라의 첫 남자 친구이자 동시에 다른 세상에서 타라의 세상으로 찾아와 우정을 보여 준 첫 친구이기도 하다. 찰스 또한 몰몬이지만, 그는 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 그는 세상 종말보다 스포츠와 팝 밴드에 더 관심이 많다. 공립학교에 다니는 걸 즐기고 있으며, 아프면 병원에 가고 의사를 만난다.


타라는 그의 세상과 자신의 세상을 융합시킬 길을 알지 못했으므로, 그냥 분리해 버렸다. 그녀는 찰스가 자신의 세상을 보지 않기를 바랐다. 식구들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데리러 올 때마다 미리 밖에 나가서 기다리다가 그의 차에 재빨리 올라타곤 했다.


하루는 찰스가 오겠다고 한 시간보다 더 일찍 와서 집에 들어와 부모님까지 만나게 된 적이 있었다. 어머니가 깊이 빠져 있는 대체의학 방식으로 - physical testing, 손가락(몸)이 느끼는 감촉, 느낌에 따라 진단 - 허브와 오일을 섞어 만드는 장면을 보았다. 궁금해하는 찰스에게 타라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것으로 의사도 못하는 치료를 해 낼 수 있다고,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한다.


찰스는 타라와 그녀의 집을 나서면서 물었다.

너희 집엔 항상 이런 냄새나니? 썩은 풀 냄새 같은 것.


As we walked to his jeep, Charles said, "Does your house always smell like this?"
"Like what?"
"Like rotted plants."
I shrugged.
"You must have smelled it, " he said. "It was strong. I've smelled it before. On you. You always smell of it. Hell, I probably do, too, now." He sniffed his shirt. I was quiet. I hadn't smelled anything.


니거(nigger)


아버지와 숀은 타라가 점점 더 교만해져 간다고 생각하였고, 그렇게 생각하는 만큼 타라에게 잔인해져 갔다. 그녀에게 더 힘들고 더러운 일을 시키며 그녀를 아래로 끌어당기려 했다. 그녀가 속한 원래 자리가 어디인지 자꾸 확인시켜 주려했다. 언어 천재인 숀 오빠는 그녀를 “wench (계집종),” “Wilbur(돼지),” “nigger(흑인 비하)” 같은 잔인한 별명으로 부른다. 이 별명들이 타라에게 새로운 단어들은 아니었지만, 타라가 대학에서 흑인 노예의 역사, 짐 크로 법, 인종간 분리, 미국의 인종차별 역사를 배웠기 때문에, 특히 숀이 '니거'라는 단어를 쓰는 것에 대해 예민해지는 자신을 느낀다. 숀은 그 단어에 타라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 느낄수록, 일부러 더 많이 사용한다. 타라는 자신의 가족이 얼마나 무식한지, 그리고 자신을 그 무식의 바닥으로 잡아당기려는 물귀신 같은 잔인한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를 점점 깨닫게 될 뿐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 잔인한 힘을, 흑인들에게 자유와 인권을 주는 것을 막아서려 했던, 1960년대 마틴 루터 킹이 이끄는 평화 시위 행렬을 막으려 했던 힘, 그를 암살했던 힘과 연결시킨다.

"Our Nigger's Back!"
I don't know what Shawn saw on my face - whether it was shock, anger or a vacant expression. Whatever it was, he'd found a vulnerability, a tender spot. It was too late to feign indifference.
"Don't call me that, " I said. "You don't know what it means."
"Sure I do, " he said. "You've got black all over your face, like a nigger!"
For the rest of the afternoon - for the rest of the summer- that is what he called me. I'd answered to the name a thousand times before with indifference. Now, I was alive to it.
I couldn't articulate how the name made me feel. Shawn meant it to humiliate me, to lock me in time, into an old idea of myself. But far from fixing me in place that word transported me. Every time he said it - "Hey Nigger, raise the boom" or "Fetch me a level, Nigger" - I returned to the university, to that auditorium, where I had watched human history unfold and wondered at my place in it. The stories of Emmett Till, Rosa Parks and Martin Luther King were recalled to my mind every time Shawn shouted at me to move to the next row. I saw their faces superimposed on every purlin Shawn welded into place that summer, so that by the end of it, I had finally begun to grasp something that should have been immediately apparent: that someone had opposed the great march toward equality; someone had been the person from whom freedom had to be wrested.






다른 세상을 알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교육을 받으면서 타라는 점점 객관적 견해라는 잣대를 가지게 되고, 자신의 가족에 대한 판단이 점점 생기기 시작한다. 그동안 타라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녀가 자신의 가족을 배신하지 않기 위해,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기 위해, 나쁘게 보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해 왔는지를 이해하는 만큼, 이런 교육의 영향이 그녀에게 얼마나 정신적 혼란과 고통을 주었을지도 짐작이 간다. 대학교육을 받는 타라가 점점 변하고 교만해질까 봐 조종이 불가능해질까 봐 막연한 서열적 두려움을 느끼는 그 가족의 물귀신 같은 태도들이 답답하고 암울할 뿐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악영향이라는 것을 분명히 아는 것, 그렇게 결론짓는 것은 구원이면서 동시에 저주다. 그래서 타라는 그 생각을 그 결정을 미루고 또 미룬다. 나를 그 악영향과 분리하지 못한다. 그 냄새가 내 삶에 너무 깊이 배어있다.


찰스가 느끼고 지적했던 타라 집의 냄새는 타라 자신의 냄새이기도 한 것이다. 찰스는 타라가 그것을 자각하고 깨어나기를 그곳을 떠나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타라에게서 그 냄새가 지독하게 나는데도 끊임없이 밤마다 타라를 불러낸 것은, 타라가 다른 여자아이들과 달리 이상하게 행동하고 말하는 데도 그녀를 계속 찾는 것은, 찰스가 분명 타라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찰스가 타라의 세상의 허점들, 이상한 점들을 지적할 때마다, 타라는 자신이, 자신의 뿌리가 모욕당하는 아픔을 느꼈을 것이다.


누구나, 심지어 스스로 자신의 부모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조차도, 타인의 입에서 제 부모에 대한, 제 집안에 대한 욕이 나오는 것은 들을 수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부모에 대해 나쁘게 생각이 드는 것을 무의식의 저편으로 흘려보내고 애써 눌러 지워버리는 경향이 강하다. 분리하기가 어려운 만큼,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으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결국 나를 보호하기 위해, 부모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오랫동안 보류하는 것이다. 내 속에서 곪아 터질 때까지 끄집어내지 않게 되는 것이다.


누가 함부로 타라에게 집을 떠나라 마라, 부모를 버리라 마라 할 수 있단 말인가. 남이 어떤 결정을 했다고 누가 함부로 잘했니 마니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도 타인이 무엇을 겪는지 어떤 인생의 싸움을 싸우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어느 누구도 내가 아닌 타인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심지어 배우자라도, 심지어 연인 친구라도. 함부로 판단하고 지적질하는 것은 교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내가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아끼고 사랑한다는 명분으로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했던 모든 말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함부로 그들의 세상을 판단하고 비하하고, 그 세상에서 나는 냄새가 안 좋다고 말한 것은 아니었을까. 조용히 들어주는 겸허한 역할을 저버리고, 항상 심판자의 자리에서 휘두르려는 교만한 본능을 이기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 경계를 침범 당하지 않을 만큼 강하게, 남의 경계를 침범해 들어가지 않을 만큼 겸허하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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