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ucated: A Memoir by Tara Westover 23
오빠가 나를 '매춘부'라고 정의했기 때문에
대학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고, 타라는 교회에서 만난 남자들의 데이트 신청을 받기 시작한다. 하지만 타라는 누가 자기 가까이 다가오는 게 싫었으므로 모두 거절했다. 타라가 남자들의 데이트 신청을 거절한다는 이야기가 비숍-몰몬교회 지도자, 감독 - 의 귀에 들어갔다. 타라의 비혼주의적 행동은 몰몬 교회 내에서 용납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비숍이 타라를 따로 불렀다. 그는 타라에게 가족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지만, 타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족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만도 큰 죄인데, 가족이 한 일을 폭로하는 죄까지 지을 수는 없어서였다. "결혼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이다"라는 비숍의 말을 마지막으로 비숍과의 미팅은 끝났다. 그녀는 교회에 나가지 않을 마음을 먹었다.
He asked about my family. I didn't answer. I had already betrayed them by failing to love them as I should; the least I could do was stay silent.
"Marriage is God's plan, " the bishop said, then he stood. The meeting was over. He asked me to return the following Sunday. I said I would, but knew I wouldn't.
결혼은 하나님의 뜻이며 결혼을 거부하는 것은 죄라는 것을 타라는 평생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녀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었지만, 정말 거역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타라는 아이들을 원했고, 자신의 가족을 만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동시에 그녀는 자신이 가족을 만들 수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스스로를 경멸하지 않고 남자에게 다가갈 도리가 없었다.
My body felt heavy as I walked to my apartment. All my life I had been taught that marriage was God's will, that to refuse it was a kind of sin. I was in defiance of God. And yet, I didn't want to be. I wanted children, my own family, but even as I longed for it I knew I would never have it. I was not capable. I could not be near any man without despising myself.
타라는 숀이 '매춘부'라는 단어를 쓸 때, 뭔가 옛날 말 같고 무시할 단어라고 느꼈음에도, 그 단어는 타라의 마음 깊숙이 들어가 버렸다. 그 단어에 자아가 단단히 연결되어 버렸다. 그 단어는 숀이 오직 타라를 대상으로만 썼기 때문이었다. 타라가 15세쯤 되어 살짝 화장하고 다니기 시작했을 때, 그 꼴이 거슬렸던 숀이 아버지에게 마을에 타라에 대한 소문이 나쁘게 났다고 말한 적이 있었고, 아버지는 그 순간 의심도 않고 타라가 임신한 게 틀림없다고 믿고 어머니에게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딸이 얼마나 진실하고 단정한 아이인지 항변했지만, 숀이 나서서 사춘기 여자애들은 믿을만한 존재가 아니라고, 얌전한 고양이들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는 법이라고 역설했다.
타라는 그들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어떻게 하면 임신이 되는 건지, 자신이 임신을 한 건지 아닌 건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남자아이와 말을 섞거나, 눈을 마주칠 때, 옷깃이라도 스치면 임신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타라에게 성교육을 제대로 시켜주지 않았고, 그런 대화를 나눌 친구도 없는 타라는, 자신이 확신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누가 뭐라 소리를 지르고 다그쳐도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이 뭔가 '매춘부'같은 부정한 존재라는 느낌이 내면을 가득 채웠다. 뭘 잘못 행동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자신의 존재 자체가 뭔가 부정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인생에 숀 오빠의 파워가 너무 강했던 것이다. 그가 가스 라이팅 하는 대로 타라는 스스로를 부정하다고 믿게 되었던 것이다.
I had witnessed birth, but I 'd been given none of the facts of conception. While my father and brother shouted, ignorance kept me silent: I couldn't defend myself, because I didn't understand the accusation.
Days later, when it was confirmed that I was not pregnant, I evolved a new understanding of the word "whore, " one that was less about actions and more about essence. It was not that I had done something wrong so much as that I existed in the wrong way. There was something impure in the fact of my being.
'It's strange how you give the people you love so much power over you, ' I had written in my journal. But Shawn had more power over me than I could possibly have imagined. He had defined me to myself, and there's no greater power than that.
처음으로 상담을 받다
타라는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 비숍을 찾아갔고, 그때부터 매주 일요일 비숍과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타라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들, 남자에 대한 거부감이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비숍은 묵묵히 타라의 모든 말을 들어주었고, 타라는 제 속의 수치심을 다 꺼내 보일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한 학기가 다 끝나 여름 방학이 되었고, 타라는 여름 동안 집에 가 있어야 한다고, 방학 동안 월세를 낼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숍이 말렸다.
타라야, 집에 가지 마라. 월세는 교회에서 내 줄게.(Don't go home, Tara. The church will pay your rent.)
타라는 교회 돈을 받고 싶지 않았다. 받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비숍이 한 가지만 약속하라고 당부했다. 아버지를 돕는 일은 절대 하지 말라고 했다.
타라는 비숍과의 약속을 지켰다. 아이다호 집에서 여름을 지내는 동안, 그녀는 식료품점에서 일했다. 거기 일해서 대학에 돌아갈 돈을 벌지 못할 거라고 아버지가 비웃었지만, 그녀는 하나님이 도우실 거라는 비숍의 말을 믿고 묵묵히 일했다.
타라는 숀 오빠를 피할 수 있는 한 피했다. 숀에게 에밀리라는 새 여자 친구가 생긴 덕분에 그를 피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숀의 나이 28세, 에밀리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는 나이였다. 에밀리의 성정은 온순했고, 숀은 그녀를 완전히 조종하고 있었다. 숀의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높아지면, 에밀리는 벌벌 떨며 순종했다.
타라는 여름 동안 $2000 불 (2백만 원 정도)을 벌어 학교로 돌아갔다. 돈 들어갈 일이 너무 많은데, 골치 아프게도 심한 치통이 시작되었다. 치과 의사가 이가 심하게 썩었다며, 치료비가 $1400 정도 들 거라고 말했다. 타라가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집에 전화해서 돈을 빌리려고 했지만, 아버지가 그 대가로 내년 여름에 아버지를 도와 일해야 한다고 하자, 타라는 됐다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타라는 예전에 찰스가 줬던 것 같은 진통제를 먹으며 통증을 견뎌 보려 했지만, 치통은 너무 심했고, 잠도 못 자고 음식도 못 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로빈이 보다 못해 비숍에게 알렸고, 비숍이 타라를 불렀다. 치통 어쩔 거냐고, 이렇게 어떻게 학교를 계속 다니겠냐고 걱정을 했다. 쉬운 방법이 있다며 장학금 신청을 하자고 했다. 쓰고 갚지 않아도 되는 정부 장학금이라고 했다.
타라는 정부가 주는 돈에 대해 아버지가 했던 말들을 기억했다. 사탄 숭배 집단, 일루미나티가 사람을 유인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타라는 정부 장학금 따위 믿지 않는다고 안 받겠다고 비숍에게 말했다. 비숍이 왜 그러냐고 물었고 타라가 아버지가 했던 말들을 그대로 말해주었다. 비숍이 한숨을 쉬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비숍이 그러면 교회에서 내주겠다며, 이 돈은 신성한 거라며 수표를 끊어주려 했다. 치과 치료 비용이 $1400불이라고 하자 $1500불 체크를 써 주었다. 타라는 수표를 받아 들고, 너무나 유혹이 되었지만 - 치통이 너무 심했던 만큼 - 결국 도로 반납했다. 교회 돈이 아니라, 비숍의 개인 수표인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치통과 싸우면서, 캠퍼스 안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했다. 충분한 돈을 벌지 못했으므로, 일단 급한 불만 끄면서 지냈다. 로빈이 돈을 빌려주기도 했지만, 돈 들어갈 데가 너무 많아 돈을 구하는 족족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치과 치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행히 치통이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신경이 아주 죽어 버렸거나, 뇌가 치통에 익숙해져 버렸거나 뭔 일이 진행된 모양이었다.
그래도 돈이 너무 필요해서, 그녀는 그녀의 말 '버드'를 팔자고 마음먹었다. 숀 오빠에게 전화를 해서 말 파는 것 좀 도와달라 했다. 몇 주 뒤에 숀이 몇 백 불 체크를 보내주었다. 타라가 전화해서 누구한테 팔았냐고 물어보았지만, 숀은 그냥 대충 얼버무렸다. 타라는 그런 걸 따지고 앉아 있을 여유가 없었다. 일도 해야 했고, 다음 학기 장학금을 확보하려면 미친 듯이 공부에도 매진해야 했다. 크리스마스에 집에 다니러 갔을 때, 또 한 번 숀이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빳빳한 백 불 (10만 원 정도) 지폐 한 장을 주었다.
하나님의 도우심
타라는 그렇게 생긴 몇 백 불이 하나님의 도우심이라고, 학교에 머물러도 된다는 하나님의 허락하심이라고 믿었다. 학교로 돌아와서 월세를 냈다. 그리고 다음 달 월세를 마련하기 위해 알바를 구했다. 어느 부자동네 가정집에 일주일에 세 번 가서 청소해 주는 청소 도우미 일을 찾았다.
타라는 일요일마다 계속 비숍을 만나고 있었는데, 비숍이 로빈을 통해 타라가 아직 대학교재들을 구매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비숍이 다시 한번 제발 정부 장학금 신청하라고 강권했다. 정부 장학금이 어차피 국민들 세금이라는 걸 생각하라고, 비숍 자신이 돈을 많이 벌고 세금을 많이 내고 있으니, 비숍의 돈을 받는 거라고 생각하라고 설득했다. 정부 돈이든 무슨 돈이든, 사람이 도움을 받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끈질기게 설득했다.
타라는 결국 정부 장학금 신청서를 받아 들었다. 로빈이 나서서 대신 작성해 주었다. 타라가 제출 안 할 거라고 고집을 부리자, 일단 서류를 다 갖추고 나서 마지막에 결정하자고 설득했다. 서류를 완성하려면, 부모님의 형편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세금 보고 서류가 필요했다. 타라는 어느 새벽, 부모님의 세금 서류를 훔치려고 살금살금 집에 들어갔다가, 거실에서 총 들고 지키고 있던 숀 오빠에게 딱 걸렸다. 다행히 오빠는 타라가 왜 새벽에 몰래 집에 왔는지 묻지 않았고, 타라도 오빠가 왜 그 시간에 총 들고 지키고 서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다음날 타라는 엄마에게 학교에서 그 서류를 필요로 한다고 거짓말을 했고, 엄마는 속아 넘어가 주었다.
타라는 서류를 다 준비했고, 로빈과 함께 서류를 다 갖추어 장학금 신청을 했다. 2주쯤 후에 신청 결과가 나왔다. 봉투를 열었는데 $4000불(4백만 원 정도) 수표가 들어있었다. 타라는 자신이 너무 욕심쟁이처럼 느껴져 장학금을 준 기관에 전화해서 자긴 $1400불만 필요하니 나머지는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이 곤란해하며,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어 쓰든지 말든지 둘 중 하나 하라고 했다.
타라는 돈이 필요했으므로, 현금으로 바꾸어 쓰는 쪽을 택했다. 치과 신경 치료를 하고 $1400불을 쓰고, 필요했던 대학 교재들을 사고, 월세를 내고도 돈이 남았다. 비숍이 스스로에게 맛있는 것도 먹여주고 자신을 좀 챙기라고 했지만, 타라는 그럴 수 없다고 돈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비숍은 돈 좀 써도 된다고, 내년에도 그만큼 더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타라는 일요일에 교회에 입고 갈 새 옷 한 벌을 샀다.
정부 장학금을 받고, 그 돈이 자신을 어떻게 조종하려 하는지를 지켜보았지만, 자신의 삶을 조종하기는커녕, 자신에게 힘을 줄 뿐이었다. 아버지를 위해 다시는 일하지 않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처음으로 지킬 수 있었다.
이제 완전히 집을, 학대를 떠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을 떠나면 고향이 생긴다. 이제 타라는 아이다호를 떠났기 때문에, 아이다호가 고향이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다.
학대당하는 아동이나 여성들이 학대를 신고하지 않고, 묵묵히 견디는 이유는 생계와 안전권 때문이다. 다른 종류의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안전한 집에서 먹고살기 위해 가해자가 제공하는 자본에 의존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새로 맞은 배우자가 자식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을 보아도, 부모가 타인에게 몹쓸 죄를 짓는 것을 보아도 아무 말 못 하는 방관자가 되기 쉬운 이유이기도 하다.
진실을 말하고, 학대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생계와 안전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사람의 생계와 안전을 보장하는 데는 돈이 든다. 가해자 없이도, 따뜻한 집에서 먹고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타라가 제 한 몸 누일 공간을 구하고, 먹고살고 공부할 수 있는 돈을 결국 타라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정부가 제공하였다. 정부 장학금의 혜택을 받으면서 타라는 아버지가 틀렸다는 것을 확신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틀렸음을 확신한 것과, 손에 쥐어진 안전과 생계를 보장하는 돈은 그녀로 하여금 가족을 드디어 떠날 수 있게 해 주었을 것이다. 다시 집에 돌아가지 않아도 되게, 가해자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아도 되게...!
아마 그래서 나도 미국에 와서 취직을 한 후에, 한국에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20년간 한 번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에서 나의 생계와 안전권을 완벽하게 확보했기 때문에. 안전을 찾은 피해자는 결코 가해자에게 돌아가지 않는 법이다.
엄마가 미국에 오고 아버지에게 보내던 돈과 함께 연락도 끊은 후, 고모에게서 한 번 전화가 왔었다. 그래도 아버지인데, 그런 아버지 만난 걸 네 팔자라 생각하고 모셔야 하지 않겠냐고. 아버지와 왕래하며 지내야 하지 않겠냐고. 고모에게 말했었다. 우리가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그 상처를 치유할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지금은 아버지에게 연락할 마음이 없다고 말했었다.
고모는 결국 속에 품고 있던 한 마디 칼을 던졌다.
네 아버지가 사업하고 돈 잘 벌다가, 이제 돈 없고 별 볼 일 없으니 마누라 자식에게 버림받는구나.
'아버지 돈 없어진지 오래됐거든요. 그동안 엄마와 내가 밑빠진 독에 돈을 계속 부어 왔거든요. 이젠 지긋지긋하거든요.'라고 쏘아 붙이고 싶었지만 속으로만 생각했다.
고모도 아마 많은 학대 속에서 컸을 것이다. 고모 자신이 끝까지 자신을 학대한 사람들조차 피붙이라는 이유로 감싸고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도 그래야 한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게 가족의 도리, 자식의 도리라고 믿었을 것이다.
나는 고모 같은 성인군자가 아니고,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게까지 사람을 품을 능력도 없었다. 내게 '도리'라는 건 갑질(학대)을 참고 견디라는 을(피해자)에게 씌워진 억지 프레임일 뿐이었다. 나는 '도리'를 지키려 노력하기보다, '도리'를 강요하는 사람들을 피하는 쪽을 택했다.
미국에 와서 처음 얻었던 원 베드룸 아파트엔 부엌도 있고, 따뜻한 물도 항상 쓸 수 있고, 오븐, 전자레인지, 식기세척기,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미국 공대 대학원에서 먹고살기에 충분한 월급까지 나왔다. 한국에서 하숙할 때 아침에 딱 한 시간만 쓸 수 있는 따뜻한 물을 쓰기 위해 다른 하숙생들과 눈치 보며 경쟁하던 시간들, 교수들이 대학원생 지원해야 할 연구비를 다 빼돌려 교수 자신의 보너스로 쓰는 걸 묵과했던 시간들, 정부 그랜트를 자기들끼리 나눠먹기 하는 집단이기주의를 목격했던 시간들,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기 위해 과외를 다섯 개씩 뛰어야 했던 시간들, 입주 과외 선생 노릇을 하기 위해 경기도에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했던 시간들, 버스와 지하철에서 칼을 든 성추행범이 등에 붙을까 봐 벌벌 떨었던 시간들,... 을 보냈던 나에게 24시간 따뜻한 물이 나오는 미국 아파트와 공부만 해도 먹고살 수 있는 월급은 안전한 천국처럼 느껴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