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ucated: A Memoir by Tara Westover 24
The knight-errant: 세상을 바로잡고 자신의 기사도를 세우기 위해 자신이 속한 세상에서 떨어져 나와 모험을 찾아다니는 무사, a character that has broken away from the world of his origin, in order to go off on his own to right wrongs or to test and assert his own chivalric ideals.
여윳돈 백만 원이 주는 힘
필요한 곳에 돈을 충분히 다 쓰고도, $1000불이 남았다. 타라가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는 여윳돈이었다. 꿈만 같았다. 타라는 인생 처음으로 돈에 쫓기지 않을 때 가질 수 있는 생각의 여유라는 것을 경험했다. 돈 말고 다른 걸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이었다.
I had a thousand dollars in my bank account. It felt strange just to think that, let alone say it. A thousand dollars. Extra. That I did not immediately need. It took weeks for me to come to terms with this fact, but as I did, I began to experience the most powerful advantage of money: the ability to think of things besides money.
모든 게 아버지의 망상이었음을 깨닫다
타라는 대학에서 심리학 수업을 듣기 시작한다. 어느 날 교수가 양극성 장애(조울증) 증상들 — "우울증, 조증, 편집증, 자아도취, 과대망상, 피해망상 - 을 열거했을 때, 타라는 이 증상들이 아버지의 행동 패턴을 완벽하게 묘사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I listened with a desperate interest. This is my father, I wrote in my notes. He's describing Dad.
교수는 또한 양극성 장애와 같은 정신 장애가 Waco 및 Ruby Ridge와 같은 일부 "유명한 대치 사건"과 어느 정도 상관이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타라는 들어 본 적 없는 그 '유명한' 사건들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고, 그녀는 곧 Ruby Ridge 사건이 아버지가 늘 말씀하시던 - 타라의 어린 시절 말이 안 되는 조각난 기억에 등장하는 - 위버 가족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는다. 검색 결과 그녀는 실제 일어난 위버 일가 사건이 아버지가 말해준 것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버지는 정부가 그 집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아 습격한 것이며, 가족을 몰살시켰다고 했었다. 인터넷 자료에 그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 세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가족 모두가 사살당한 게 아니라는 것, 특히 그 집의 가장인 랜디 위버가 살아있다는 것, 심지어 가족 모두가 정부로부터 큰 보상까지 받았다는 것을 알고 타라는 큰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는 이 사실을 알고 계실까, 가족에게 거짓말을 한 것일까 의심하는 마음이 잠시 스쳤다. 아버지가 이 일을 이야기할 때 보였던 표정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타라는 극도로 겁에 질려있던 아버지의 얼굴빛이 기억났다. 망상이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망상 때문에 지금까지 13년 동안, 언젠가 정부의 공격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살아왔음을 마침내 깨닫고 말았다. 정부는 사람들을 함부로 죽이지 않으며, 특히 아이들을 공립학교에 넣지 않는다고 죽이는 일은 전혀 없음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런 말을 믿었던 적이 있었다는 자체가 이젠 믿기 힘들어졌다.
타라는 양극성 장애에 '꽂혀' 그녀의 연구 과제의 주제로 선택했을 정도로 파고들었다. 연구 과제는 그녀가 대학 캠퍼스 안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신경 과학자들과 인지 전문가들을 만나 조사하고 다닐 명분을 주었다. 그녀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 양극성 장애를 가진 부모의 자녀들이 유전적으로, 그리고 환경적 - 스트레스가 많은 환경 조성과, 양육 능력 부족 -으로 이중적 피해에 노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타라는 또한 정신 질환이 선택이 아님을, 자신이 조종할 수 없는 뇌에 일어난 병증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하지만 타라는 자신과 형제들, 그리고 어머니가 너무 오래 많은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에 화가 치미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아버지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가족이 그렇게 많이 다치고 상하도록 만든 것이 용서하기 힘들었다. 가슴에서 화가 솟구쳤다.
In class I had been taught about neurotransmitters and their effect on brain chemistry; I understood that disease is not a choice. This knowledge might have made me sympathetic to my father, but it didn't. I felt only anger. We were the ones who'd paid for it, I thought. Mother. Luke. Shawn. We had been bruised and gashed and concussed, had our legs set on fire and our heads cut open. We had lived in a state of alert, a kind of constant terror, our brains flooding with cortisol because we knew that any of those things might happen at any moment. Because Dad always put faith before safety. Because he believed himself right, and he kept on believing himself right - after the first car crash, after the second, after the bin, the fire, the pallet. And it was us who paid.
타라는 주말에 집에 갔다가 1시간도 머무르지 못하고 집을 떠났다. 아버지와 말싸움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타라가 가져간 차는 아버지한테 빚진 거라고 말을 했고, 타라는 필요 이상으로 격분했다. 난생처음 아버지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차가 아닌, 위버 일가에 대해, 아버지의 망상에 대해 소리 질렀다. 왜 당신은 그 모양이냐? 왜 우리를 그렇게 공포 속에 살아가게 했냐? 왜 그렇게 상상 속의 괴물을 만들고 살아간 거냐? 왜 당신 집안에 있는 괴물들한텐 아무것도 안 하냐?
아버지의 놀라 얼빠진 무기력한 모습을 뒤로하고, 타라는 분노와 수치심을 동시에 느끼며 집을 뛰쳐나왔다. 학교로 곧장 운전해 왔다. 나중에 아버지가 전화했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
그렇게 또 한 학기가 끝났다. 여름 방학이 되었지만 타라는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가족을 안 보고 살기로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다. 그냥 아버지 얼굴이 보기 싫어고, 아버지의 목소리도 듣기 싫었다. 그래서 보지도 듣지도 않을 방법을 택한 것뿐이었다.
다르게 살아보려고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온 19년 인생을 뒤로하고, 그녀는 다르게 살아보고자 했다. 그녀는 교회에서 닉이라는 남학생을 만나 사귀기 시작했다. 남자와 처음으로 스킨십도 했다. 남자가 만져도 피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녀는 자신의 과거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가능한 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이듬해 5월 말쯤 타라는 많이 아팠다. 피곤과 통증이 몰려왔다. 목에 불이 붙은 듯한 인후통이 계속 느껴졌다. 그녀는 일도 나가지 못하고 밤낮으로 잠만 잤다. 하루는 닉이 찾아와 제발 병원에 좀 가라고 사정을 했다. 타라는 어떻게 병원에 가야 하는 건지도 몰라, 친구에게 물어 한 클리닉을 찾아갔다. 패혈성 인두염과 단핵구증, 두 가지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라고 했다. 의사가 페니실린을 주었다. 엄마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몸을 더럽히는 절대 먹어선 안 되는 독약이라고 했던 항생제였지만, 그녀는 몸이 너무 힘들고 간절해서 의사가 준 약을 삼켰다. 그렇게 나쁘다는 약을 먹으면 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실험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눈에서 피가 나든, 혀가 떨어져 나오든 나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각오했다.
엄마에게 전화해서 항생제를 먹었다고 말했다.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 보려는 행동이었다. 자신이 어디가 아픈지, 어떤 바이러스에 걸려있는지도 말했다. 이틀 후 엄마가 허브 약을 보내주었다. 몸에서 페니실린을 씻어 내는 약이었다. 타라는 웃음이 났다. 엄마가 자신의 몸을 아프게 하는 바이러스가 아닌 페니실린 빼는 약만 보낸 게 너무 웃겼다.
다음날, 오드리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에 사고가 났다고 했다. 이번엔 아버지라고 했다. 지금 빨리 오면 아버지에게 작별 인사는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치유의 시작, 고름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다
대학교육은, 그녀에게 미래를 준비하는데 필요한 지식뿐 아니라, 자신의 과거 경험들을 설명할 언어를 제공하였다.
어릴 때, 힘든 환경에서 자라며 그때그때 표현할 길이 없어 쌓아 온 감정들에 언어가 주어지는 순간이 바로 치유의 시작이다. 바로 그것이 교육이 해야 할 역할이지 않을까. 감정에 언어를 주는 일. 생각의 도구를 주는 일. 타라가 선택한 대학 교육이 그녀에게 그 역할을 했다. 그녀는 심리학 수업 시간에 그 언어들을 얻었고, 타라의 마음에 치유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아버지의 행동 패턴을 설명하는 정신 병증의 이름을 알았고,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해온 건지 이해했다. 그리고 아버지와 맞서 싸울 수 있었다. 모두가 언어의 힘, 언어가 불러일으킨 치유와 이해의 힘이었다. 그 모든 쌓여있는 감정을 언어로 발산하기 시작하였다.
타라는 자신의 감정을 감당하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와 아버지 얼굴을 보지 않는 쪽을 택했다. 부모라는 존재는 보지 않기를 선택한다고 편하게 잊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지금 마음이 죄책감과 분노와 수치심으로 뒤죽박죽인데, 아버지가 죽기 직전이라는 소식까지 들려온다. 아버지가 이렇게 돌아가신다면, 타라는 앞으로 죄책감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타라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 마음에 아직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이 살아 숨 쉬는 것을 본다. 할머니의 장례식에 가지 않은 것. 아버지가 혼자 병들어 죽어 가게 두었던 것, 돈요구 하는 아버지의 전화를 바로바로 받지 않고 귀찮은 빚쟁이 취급을 했던 죄책감, 어린아이들을 키우고 있다는 핑계로, 한국에 한 번도 나가지 않았던 것에 대한 죄책감. 아버지를 너무 오래 두려워하고 얼굴 보기를 피했던 죄책감. 피붙이를 피해 도망 다녔던 죄책감.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3일 전에 나에게 전화를 했었는데 그때 돈을 부치기 싫은 마음에 전화를 피했던 죄책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용서받고 편한 마음으로 내 삶을 살아가고 싶다. 내 죄를 사해준다는 신의 목소리가 내 마음에 더 크게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 어쩌면 타라처럼 아직도 내 마음속 원망이나 분노가 죄책감과 씨름하는 상태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 감정들이 모두 깨끗이 씻어지는 날이 올까.
내 안에 나 스스로를 용서하고 편들어 주고 싶은 의지를 본다.
괜찮아.
타라야, 힘 내. 이제 건강하게 네 인생 만들어 나가면 돼.
나도 내 인생 만들어 가는 일 멈추지 않을 거야. 포기하지 않을 거야.
우리, 과거에, 죄책감에, 분노에 지지 말자.
나날이 자유로워지고 행복해 지자.
더욱 가벼워지자. 편안해지자.
글을 쓰자. 치유를 이루자.
영혼을 어루만지자.
힘을 내자.
괜찮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