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성장, 그리고 존재 가치
집 앞 나무
우리 집 앞 당단풍 나무는 동네 사람들이 탐을 내, 모종을 얻으려고 줄을 서는 나무다. 분홍빛 연둣빛 꽃을 피우며, 누구보다 앞서 봄을 알리는 봄나무들이, 잔치에 초대받은 아가씨들처럼 화려하게 치장하고 한창 멋 부리는 시간에도, 집 앞 단풍나무는 조용히 내면의 에너지를 모을 뿐, 자신이 언제 무엇을 할 것인지 좀처럼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까맣게 잊고 있다 문득 창밖을 내다보니, 화사한 봄볕 아래 어느새 붉은 잎들이 흐드러지게 돋아나, 앙상하고 외롭던 나뭇가지 위로, 고혹적인 붉은 치마를 두른 것이 보인다. 시간과 기상에 따른 빛의 변화에 따라 채도와 명도가 시시각각 달라지는 붉은색의 향연이 너무나 매혹적이고 신비롭다.
쉴 새 없이 감정이 부는 일상을 견디고,
감정은 바람처럼 불며 지나간다. 때론 잔잔히 평화롭게, 때론 내 영혼에 힘을 불어넣는 상쾌한 자극으로, 때론 나를 정신없이 뒤흔드는 거센 폭풍처럼, 겨우내 매서운 고추바람처럼 할퀸 자리 또 할퀴며 지나가기도 한다.
오늘도 하루를 살며 여러 가지 감정들이 내 안을 관통하여 지나가는 것을 생생히 느낀다. 감정이라는 다양한 자극에 내 마음은 줄곧 삐죽삐죽 돋아난 여린 나뭇잎처럼 떨었다. 때론 가볍게 살살 털며 흘려보내고, 때론 부르르 끓어오르는 듯한 진동 패턴에서 오래 빠져나오지 못하기도 하고, 때론 나무 전체가 뽑힐 듯 나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다.
그래도 나무는 자란다
나무는 강하다. 불어 닥치는 모든 종류의 자극을 나뭇잎 사이사이 공간으로 떨쳐내고, 이겨내고, 끝내 극복한다. 끊임없이 성장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불어 닥치는 감정들을 나는 글로 쓰기도 하고, 쓸 수조차 없는 감정들은 글의 공간 사이사이에 떨쳐낸다. 결국 이겨내고 극복한다. 끊임없이 성장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을 안다. 그것이 나의 의지고 내 생의 사명이다.
때로 가만히 서 있는 나무의 존재 가치가 의심을 받기도 한다. 저까짓 나무 한그루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의 존재도 그렇다. 스스로 의심이 들 때도 있다. 나 같은 인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나 같은 글을 쓰는 사람 이 세상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집 앞의 나무가 매년 살아나 거친 풍파를 헤치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모습에, 햇살 아래 아름답게 반짝이는 모습에, 내가 위로받고, 영감을 얻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기운에 큰 에너지를 받는 것처럼, 내가 매일 일어나 일상을 헤쳐가는 모습이 나의 가족에게 나의 이웃들에게 나의 주변에 에너지를 주고 있을 것이다. 내가 매일 같이 나타나 글을 올리는 모습에 위로받고 영감을 얻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상상하지도 못하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기고 성장하는 것으로 충분히 훌륭하다. 생명을 가진 존재 그 자체로 귀하고 사랑스럽고 보살필 가치가 있다. 누가 도움을 받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우리는 다 알 수도 느낄 수도 없다. 그러니 어떤 생명체도 그 가치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생명이 있음을 축하하고 축복해야 한다. 주눅 들기 쉬운 작고 힘이 없는 사람, 어울리지 못하고 고립되기 쉬운 사람에게 더 다가가 그가 충분히 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알려야 한다. 더 적극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