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예쁜 나이에 이르러
사춘기 외모 비관
내 몸의 '못생김'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만큼 나는 그 아름다운 시간을, 수치심, 모욕감, 비참함, 비관,... 같은 감정의 먹구름에 갇혀 눈 뜬 장님처럼 지냈다. 길을 걸으며 다른 사람 눈에 비칠 내 모습을 생각하며 속이 상했다. 반팔을 입으면 드러나는 팔의 흉터, 종아리 가운데가 서로 붙지 않는 살짝 휜 다리. 나는 왜 연예인처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벽할 수 없었을까를 생각했다. 부모를 원망하다가 하나님 조물주까지 싫어졌다. 내 기준에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원치 않게 타고난 점 하나 티 하나에도 미칠 것 같았다. 교체하고 환불받을 수도 없는 내 몸을 어쩌지 못해 매일 속이 타 전전긍긍했다.
내가 예뻐지기 시작한 건
의심하면서였다. 예쁜 걸 누가 정하는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왜 더 예쁜 사람이 있고 덜 예쁜 사람이 있다고 하는 걸까를 의심해 보았다. 뭐가 진짜 예쁜 건지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내 눈이 어디에 익숙해져 있고, 무엇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지를 다시 검토해 보았다.
의심하고 검토하면 지반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굳건하리라 믿었던 보편적 기준들이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무너져 내린 미의 기준 아래엔, 현대사회 외모 평가의 의미가 이미지 마케팅을 통한 판매 수익과 직결되어 있다는 하나의 명제만이 흉물스럽게 덜렁거리고 있었다.
결론을 얻었다; 나의 외모는 시장에 내다 팔 물건이 아니다. 그러니 미모 순위를 매길 대상이 아니다. 그러니 주관적으로 소신 있게 내가 내 가치를 결정하면 된다.
소중한 것은 예쁘고도 강하다.
나의 가치를 내가 결정하고, 내 정체성을 내가 쓰면서부터, 내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지고 보니, 반백년 가까이 열심히 나를 위해 일해준 나의 소중한 팔다리를 어떻게 함부로 잘났다 못났다 품평한단 말인가. 감히 내가! 감히 누가! 그동안의 비관과 혹평, 그 뒤의 교만함이 기가 차고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소중한 건 무조건 아름답다. 소중한 내 새끼 어떤 모습이어도 예뻐 죽는 고슴도치 엄마처럼, 내 몸도 소중해지면 예뻐 죽는다.
예쁜 것은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드러난 나의 모습을 함부로 평가하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남의 소중하고 예쁜 것을 함부로 평가하는 그 인간이 부정적이고 무례한 사람이 될 뿐이다. 타인의 외모를 상품처럼 함부로 품평하고 재단하는 마음이 틀려 먹은 것이다. 내게 소중하고 예쁜 것들은 더 이상 남의 말 남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는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예쁜 시간
살짝살짝 수줍게 올라오는 지혜의 왕관 흰머리도 예쁘고, 아들 둘 키운 근엄한 훈장 미간의 주름도 멋지다. 드디어 가장 아름다운 나이에 이르렀고, 가장 예쁜 모습이 되었다. 이제 남은 시간, 나는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예쁠 것이다. 누가 감히 말도 못 하게 예쁠 것이다. 잘 살아왔다고, 그동안 많이 수고했다고 상훈이 몸 곳곳에 새겨질 일만 남았다. 그러니 누가 뭐라 해도 내 모습은 남은 시간 내내 소중하고 자랑스럽고 예쁠 것이다.
대문 사진 출처: Pixabay (by ef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