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감을 견디면 그때부터가 제대로 익는 과정이다
떫은 감이 홍시가 된다
단감은 신선할 때 바로 먹는다. 신선할 때 가장 맛있고, 맛있는 것을 괜히 미루었다 먹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홍시가 되라고 묵히는 감은 떫은 땡감이다. , 홍시가 되기 전까진 떫은맛이 사라지지 않기에, 숙성하는 과정을 기다리지 못해 감을 먹어 버리는 일이 일어날 수 없다. 꼼짝없이, 홍시 맛이 제대로 드는 날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땡감 인생
인생이 처음부터 달콤하게 술술 풀리는 단감 인생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나와 상관없는 그들만의 리그다. 내가 아는 인생은 땡감이다. 내가 아는 한 인생길은 개척이고 모험이고 끝없는 삽질이다. 모르는 길이니, 처음엔 우르르 사람들을 따라 달려가 본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면 된다하니 일단 손에 잡히는 대로 감을 따 본다. 문제는, 거기에 있을 것이라 믿고 열심히 달려간 길 끝엔 내가 찾던 달달한 열매란 없다는 것이다. 죄다 실패다. 내가 딴 모든 것이 떫어도 너무 떫은 땡감이다. 실컷 고생한 것에 비해 고작 보상이 이건가 배신감에 진저리를 칠 떫은 실망감. 꿈과 희망을 걸었던 내 인생이 나를 속인 분노. 내 인생 망했구나 내면 깊이 똬리 트는 실패감. 이 깊은 떫은맛이 영원히 깔려 있을 인생길을 또 일어나 다시 달릴 용기가 나지 않아, 다 잊고 죽어버리는 쪽이 낫지 않을까 시커먼 절망감.
툭툭 털고 일어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일이 힘들다. 열심히 달려온 나의 헛수고에 미련을 두거나 세상을 원망하고 낙담하는 감정에 머물러 오래 진을 뺄수록 더 그렇다. 그렇다고 빨리 단맛을 보자고 자꾸 조바심을 내고 서두르는 것도 상황을 나아지게 만들지 않는다. 급한 마음은 오히려 더 깊은 실패의 수렁으로 끌고 간다.
가능한 한 빨리 마음을 비우고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되, 오래 걸려도 한걸음 한걸음 차근차근 밟아가겠다고 마음먹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 단계까지 가면, 그다음으로 가는 문들은 저절로 열리기 시작한다. 실패의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서 나아가는 일은 더 이상 잘 알지 못하는 일에 인생을 거는 도박이나 멋모르는 무모한 모험이 아니다. 지금부터는 탄탄한 바닥을 딛고 선 진짜 과정이다. 실패의 과정을 통해, 인생 밑바닥을 쳐 본 사람은, 이제는 내가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 적어도 그 전보다는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 이는 마치, 시험을 한 번 쳐봐서 대충 어떤 유형의 문제가 나오는지 파악하게 된 경우와 같다. 삶이라는 것이 내가 정신 차리고 잘 이끌어 가지 않으면 쉽게 발을 헛디디고 나가떨어질 수 있는 것임을 아는 조심성이 생겼다. 지혜와 성숙함이 무르익어간다. 필요한 인격을 갖추어 가는 만큼, 내가 원하는 것을 성취하고 성공에 다가갈 확률이 훨씬 더 높아진다. 이젠 본 게임에서 제대로 한 판 붙어 볼 만한 실력자가 되어간다.
하지만 모든 실패를 겪은 사람이 성공하는 실력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 모든 떫은 감이 홍시로 성공하지 못한다. 어떤 감은 발에 밟히거나 땅에 떨어져 못 먹게 되고, 어떤 감은 곰팡이로 뒤덮이고, 썩어 버린다. 그러나 모든 잘 익은 홍시가 떫은 감에서 시작한 것처럼, 모든 성공한 사람은 실패를 딛고 일어선 사람들인 것은 분명하다. 그들의 공통점은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나, 매일 쉬지 않고 노력하는 성실한 자세를 가졌다는 것이다. 그러한 자세는 자신의 삶의 방향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지금의 고난과 결핍을 견디는 인내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일은 없다. 한 단계 한 단계 작은 목표를 끊임없이 세우고 이루는 과정을 거쳐가야 한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아니다. 인생엔 더 쉬워 보이는 길이 많고, 즐길 거리가 많고, 어울려 놀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서 우리의 집중력과 인내심은 끊임없이 유혹을 받기 때문이다.
물론 즐길 여유 없이 힘든 시간으로만 가득한 인생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성취하고 싶은 꿈과 목표가 있다면, 어느 정도는 즐기는 시간을 미루는 희생이 필요하다. 희생 없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꿈은 없다. 학대를 벗어나고 싶으면 독립을 해야 하고, 독립하고 싶다면 열심히 돈을 벌어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원하는 직업을 얻고 싶으면, 고용주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 열심히 준비해야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은 실패를 경험하기 전이나 후나 변한 것이 없지만, 이젠 내가 원하는 목적지를 더 정확히 아는 비전을 가지고 나아가기에 확신과 안정감의 바탕 위에서 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노력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달리는 사람은 그 목표로 가는 과정 자체가 즐거우므로, 단순히 성취 결과에만 목을 매지 않게 된다. 나는 글을 쓰면서, 내가 글을 쓴다는 사실 자체가 즐겁고, 글을 썼다는 자체가 좋아서 이미 많은 것을 성취하고 보상받은 것 같은 기분이 자주 든다. 베스트셀러가 되고 큰 성공을 거머쥐는 것도 즐겁겠지만, 내가 의미 있고 옳다고 확신하는 길을 가는 기대감과 설렘이 주는 행복감이 이미 크다.
실패라는 재산
나는 실패의 떫은맛을 잘 안다. 전에는 그것이 부끄러웠고, 그 떫은맛에 몸서리를 쳤다. 지금 깨닫는 것은 실패는 아직 홍시가 되지 못한 감, 아직 다듬어지지 못한 원석일 뿐이다. 당장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고 값어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인생 전체를 걸고 무모하게 돌진했던 날들의 흔적이 시간이 갈수록 아름답고 귀한 원석으로 남는다. 그날들에 그렇게 맹렬히 달리지 않았다면, 내가 안전하다 믿는 자리에 숨어만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을 것이다. 그 모든 갈등과 한계와 장애와 문제가 없었다면 나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각각의 감정들, 분노, 불안, 공포, 억울함, 답답함,... 부정적인 감정들을 깊이 느껴보지 못했을 것이고, 기쁨, 안정감, 안전감, 공감,.. 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이 주는 행복감을 예민하게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실패는 익어서 나에게 몇 가지 달달한 기쁨을 준다; 실패한 자리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신뢰하는 기쁨. 넘어지고 또 일어날 때마다 강한 사람이 되어가는 기쁨. 인생 여정 자체를 즐기게 된 기쁨. 또 넘어지는 일이 없기 위해 땅에 바짝 붙인 겸허한 삶의 기준이 항상 모든 일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기쁨.
내 인생에 일어난 일 중에 잘 익은 실패만큼 소중하고 귀한 것이 있을까. 나는 각종 글 공모전에서 수없이 떨어지기도 했고, 심지어 브런치 작가라는 이름을 얻기 위해서도 몇 번이나 낙방의 고비를 마셨다. 그래서 사람들이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 모르는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을 나는 어디나 달고 다니며 기쁘게 보여준다. 나에겐 여러 번의 실패 끝에 얻은 대단한 성취였기 때문이고, 그 여러 번의 실패 또한 내 삶에 큰 가치와 의미를 남겼기 때문이다.
평생 갖가지 실패를 함께 헤쳐온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열과 성을 다해 미친 듯이 달렸던 사람이었던 내가 나는 소중해지기 시작한다. 떫은 땡감을 미친 듯이 땄던 일조차도 귀한 경험이다. 내가 거쳐온 모든 경험과, 느꼈던 모든 감정들이 좋다. 내가 좋다. 내가 마음에 든다. 점점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잘 돌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간다.
실패했던 나를 보듬고 끌어안는 마음으로, 그때의 나처럼 오래 달리고도 열매를 얻지 못해, 불안하고 떫은 실패감에 낙담하는 마음들을 보듬고 귀띔해 주고 싶다; 당신은 마침내 모든 필요한 자격과 조건을 갖추고 제대로 된 출발선에 섰다고. 지금까지 달려온 길이 남들을 슬쩍슬쩍 보며 서로 의식하고 경쟁하는 속에서 동기부여를 받으며 달릴 수 있는 넓은 길이었다면, 지금부터 달려가야 하는 길은 혼자와의 싸움이 이어지는 나만의 좁은 길이어야 한다고. 슬쩍슬쩍 봐야 하는 것은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의 내면 상태이며, 경쟁 상대 또한 남이 아니라, 어제와 오늘의 나 자신임을. 아무도 모르는 혼자 걷는 이 좁은 길이야 말로 인생의 큰 즐거움이 되고 의미가 될 성공-남이 아닌 당신이 정의하는-의 길임을!
대문 사진 출처: Pixabay (by Schnauz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