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자극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소신 있는 삶을 위하여
나의 20대를 생각하면
화사한 봄이 떠오른다. 갓 대학 문턱에 발을 들였던 신입생 시절, 대학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대학에서 듣는 모든 이야기들이 새롭고 설렜다.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고, 듣고 싶은 수업을 들으며, 내가 참여하고 싶은 활동을 하고, 내가 가고 싶은 모임을 찾아다니는 삶, 얼마나 주체적인가. 오락게임을 해도, 술을 마셔도, 수업이 끝나기 전에 집에 일찍 가버려도, 쫓아다니며 야단치는 어른이 없는 삶, 얼마나 자유로운가. 캠퍼스에 만발한 예쁜 꽃나무들 사이로 내려앉는 햇살 아래서, 고풍스럽고 운치 있는 대학 건물들이 드리우는 낭만적 정취 가득한 그림자 아래서, 때론 열띤 토론을 하고, 때론 기타 치고 노래 부르며 청춘을 발산하고 즐기는 모습들을 보며, 그들의 일부가 되어 가며, 가슴이 무한한 행복감으로 부풀어 올랐다.
그건 딱 석 달 동안의 행복이었다. 20대의 나머지 시간들은 늘 흔들리고, 휘둘리고, 아프고, 실망스럽고, 혼란스러웠다. 20대라는 나이는 아름답지만, 결코 행복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20대 그 시절 그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사람을 찾아보기 정말 힘든 것도 사실이다.
내면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대학이라는 너무 많은 자극과 복잡한 관계가 난무한 거대 집단 속으로 내몰린 것이었다. 어쩌면 거친 물살 속으로 마구 던져졌기 때문에 그 사회를 수영하는 법을 빨리 배우고, 어디서건 모난 정이 되지 않도록 평범과 무난이라는 보호색을 갖추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단단한 내면으로 가는 길
여린 속을 가리는 법부터 배웠다. 하지만 보호색을 입고 가리고 살아간다고 절로 내면이 단단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단단한 내면이란 단단한 척 위장한다고 만들어지지 않았다. 정말 다야몬드처럼 단단해져서 남이 던지는 말들이 내 내면 속으로 뚫고 들어가지 못하는 고도로 압축된 고체 상태로 상전이를 해야 하는 것이었다.
영롱하게 빛나는 아름답고 단단한 내면은 다야몬드만큼이나 만들어지기가 어렵다. 고온고압의 환경을 기꺼이 가치 있는 고난으로 수용하고 자신이 아름답게 존재할 방법을 찾아가는 지혜로운 선택이 필요하고, 흔한 돌멩이 속으로 섞여 들고 싶은 유혹을 견디고 자신이 가는 길이 가장 최고의 길임을 믿는 자기 소신이 필요하고, 왜 그렇게 한심하게 땅속에 고립되어 살아가냐고 자꾸 들이대는 외부적 기준에 맞설 내부 기준이 확고해야 한다. 또한 자신이 끝내 아름답게 만들어지리라는 굳건한 믿음도 갖추어야 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긴 어둠 속을 홀로 걸어낼 수 있는 인내와 용기도 필요하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잘 견뎌온 마음들이 어느 날부터 영롱하게 반짝이며 빛을 내기 시작하는 것을 본다.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저 사람 분명 삶이 구질구질하고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었는데, 일생에 고생과 고난이 덕지덕지 붙어 늘 불행해 보였는데, 어느 날 강하고 아름다운 다야몬드가 반짝 거리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해내고 성공하고 평화롭게 풍요롭게 살아간다.
마음에 다야몬드를 품고 살아가는 것은 삶에 여유를 주고, 많은 일을 가능하게 한다. 두려움과 걱정을 거두어 간다. 가진 게 많으면서 마음이 쉽게 흔들리고 외부 기준의 습격에 쉽게 무너져 내리는 연약한 내면의 사람보다, 가지고 태어난 게 많지 않아도 마음이 소신과 믿음이 강한 다야몬드 상태인 사람이 훨씬 더 행복하게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나는 나로서, 내 모습 그대로 충분하다는 확신. 내가 걷는 내 길이 나에게 가장 좋은 길이라는 자부심. 스스로의 가치를 충분히 알아주는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 그것을 뚫고 들어와 내면을 흔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당신의 내면은 단단하고 찬란한 다야몬드 그 자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