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 같은 존재

경계면에 존재하는 삶을 위하여

by 하트온

바닷가 모래의 마음


바다는 내게 휴식이고 재충전이다. 바다로부터 힘을 얻고, 그 짠내로 내 호흡기를 말끔히 소독하고 와야 다음을 살아갈 수 있다. 이번 휴가에도 나는 바닷가에 갔었다. 거기서 푸른 바다 멍을 온종일 때리다 왔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했다. 이곳이 바다와 땅의 경계라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지구를 이루는 물과 흙의 경계면에 앉아 있다는 놀라운 자각이 바닷바람과 함께 내 머리를 잔뜩 헝클고 지나갔다. 늘 수평선 저 멀리까지 넓고 푸른 바다만 바라보느라, 세찬 파도 소리에 주의를 빼앗기느라, 그 아래 쉴 새 없이 반응하는 모래흙을 제대로 봐준 적이 없었다. 모래에 집중해서 보니, 파도가 제 아래 깔리는 모래를 가혹할 정도로 끝없이 흠씬 치고 빠지고 적셔 쓸어내리기를 반복하였다. 햇살을 잔뜩 머금고 거칠게 밀려온 파도는 찬란하면서도 요란하기 그지없었다. 그 힘에, 풀 죽은 모래가 힘없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처럼 보였다. 끝없는 괴롭힘처럼 느껴졌다.


정말 괴로운 걸까? 모래의 마음을 다시 느껴보려고, 바닥으로 몸을 낮추었다. 그러자 바다 연안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게와 가재 같은 작은 생물들이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숨었다 숨바꼭질하며 살아가고 있는 게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린 배를 채우고 쉼을 얻어가는 수많은 갈매기떼가 보였다. 그리고 바다 멍을 때리다 책을 읽다 꾸벅꾸벅 조는 사람들, 개를 끌고 나와 함께 뛰는 사람들, 파도타기 하는 사람들, 연안에서 그닥 멀지 않은 곳에서 돌고래들이 뛰어놀며 장난을 치고 있는 것도 보였다.


파도가 끝없이 길들여내는 바닷가 모래는 너무나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찾아오는 수많은 존재들에게 쉼과 양식을 주는 삶의 터전이며, 밟고 지나가는 대로 변화하고 맞춰주는 융통성 넘치는 친구이며, 한 번도 뾰족하게 굴거나 딱딱하게 나오는 일이 없는 믿고 맨몸 맨 마음을 맡길 수 있는 한없이 부드러운 인격의 소유자다. 바다에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힘든 마음을 쏟아 붓기 위해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항상 그 마음을 열어주고 따뜻하고 포근한 자리를 마련해 준다.


경계면에 서 있는 나


나는 수많은 이유로 경계면에 사는 사람이다. 미국과 한국의 경계면, 20세기에 태어나 21세기를 살아가는 경계면, 나를 위한 나와 가족을 위한 나 사이의 경계면, 공학과 여성 사이의 경계면, 영문학과 국문학 사이의 경계면, 젊음과 늙음 사이의 경계면, 7대에 이르는 독실한 불교 신앙과 문화를 깨고 나온 기독교 문화가 생소한 크리스천의 경계면, 영어를 배우는 학생 입장과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 입장의 경계면, 내가 읽어온 글과 내가 써야 할 글 사이의 경계면,…


내 삶은 언제나 어느 한쪽에도 완전히 속할 수 없는 경계선 운명인 듯 느껴진다. 어떤 것도 주장할 수 없고, 내세울 수도 없다. 부릴 수 있는 텃세 따위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언제나 소수인 소수민족 입장이다. 그런 입장에 처한 나의 역할은 가만히 경계면이 끝없이 불러오는 파도를 맞고 부서지고 변화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풍부한 자원을 잔뜩 품을 수 있고, 나눠 줄 지혜가 넘쳐흐르는, 어떤 마음을 품은 어떤 누가 와서 풀썩 기대앉아도 부드럽게 부서져 주고 맞춰 주는 그런 모래알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바다와도 살 수 있고, 땅과도 면할 수 있는 그런 존재, 많이 다른 둘을 이어주는 존재,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모래알 한 알의 위대함


모래알의 위대함을 가만히 마음에 새겨본다. 어떤 파도가 덤비건, 다 맞아 줄 테니, 다 덤벼 보라 했던 그 용맹함! 아주 작디작은 존재로 기꺼이 부서지기를 선택했던 그 겸허함! 그리하여 더 많은 것을 품을 수 있었던 지혜로움! 모래알, 너를 닮아가 보리라고 결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