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트온 Apr 27. 2021

영어, 널 어쩌면 좋니?

수십 년매일 영어 공부한 사람의 영어에 대한 생각 변화

나의 영어 공부 역사


중고등학교 시절엔 숙제와 시험공부를 위한, 딱 남들 하는 만큼만 영어공부를 했었다. 영어과목, 영어 교사들을 딱히 좋아한 적 없었고, 영어라는 언어가 크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적도 없다. 다만 이왕 알게 된 영어는 원어민처럼 발음하고 싶어서 영어 학습 오디오 자료를 반복해서 들으며 똑같이 발음하려고 애를 썼었다.


대학 입학 직전, 고등학교 절친들과 졸업 여행을 갔는데, 거기서 어느 일본 관광객이 말을 걸어왔다. 일본 어느 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계신 분이라고 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제2 외국어가 일본어였고, 나는 일본어 시험에 항상 좋은 성적을 받는 편이었고, 나름 일본어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 있게 그 일본인 관광객의 대화 시도에 응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할 수도 없었다. 일본어가 안되면 영어도 있잖아. 내가 "Let's talk in English"라고 말하자마자, 그 일본 교수의 입에서 유창한 유학파 영어가 줄줄 흘러나왔다. 반면 내 근본 없던 영어 자신감은 점점 작아져 콩알만 해지는가 싶더니 온데간데없이 뿅 사라져 버렸다. 결국 내 영어 듣기와 말하기도 형편없다는 것이 선명히 드러나 버렸다. 내가 수년 동안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했던 일본어, 영어와 이 사람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오는 일본어, 영어 사이에 뭔가 상당한 갭이 있다는 느낌이 대충격, 왕실망, 패배감의 창살이 되어 내 어린 마음에 파바박 꽂혔다. 


그 관광객과의 무자비한 경험을 통해, 내가 그동안 외국어 공부를 제대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 하나는 확실히 깨달았던 것 같다. 그런 외국어 실력으로는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내가 아는 정도로는 외국어를 할 줄 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걸 제대로 알게 된 것이다. 중고등학교 내내 일본어와 영어를 주입식으로 접하며 듣기 말하기 근육을 키운 적이 없었다는 것, 유창하고 자연스러운 외국어 회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원어민과의 언어 교류가 반드시 필요하며 어휘도 더 키워야 한다는 것을 점점 깨달아 갔다.


내가 어떤 면이 부족한지 깨달아 가면서, 나만의 다양한 영어공부법을 시도해 보았다. 나는 영어 책을 끊임없이 읽었고, 어휘집을 사서 수천수만 개의 단어를 익히기도 했으며, 새벽 영어 학원을 다니며 영어 뉴스 듣는 법을 배우거나, 원어민 교사와 회화 연습을 꾸준히 하기도 했다. 영어로 소통해야 하는 자리, 외국인 방문 교수나 학생들이 한국에서 적응하는 것을 돕는 일에 자원봉사를 마다지 않았으며, 미국에 와서는 영어에 푹 젖어보기 위해 2-3년 한국어를 말하지 않고 원어민들과만 소통하고 지낸 적도 있으며, 매일 영어로 일기를 쓴 적도 있고, 미국에서 회사를 다니면서도 저녁엔 계속 영작문 수업도 들었다. 


영어를 잘 배우는 방법을 찾고 찾다 영어 교수법 석사 학위 (MA TESOL)를 취득하기도 했다. 테솔 석사 학위 중 교육 심리학을 깊이 파고들며,  지능 성향과 성격, 학습 스타일, 뇌 컨디션 및 여러 가지 개인차에 따라 영어 학습법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나는 정말 내 성격 성향 상황에 맞는 영어 공부법을 찾아가며 한 번도 영어공부의 끊을 놓은 적이 없다. 20대부터 지금까지, 매일 1시간씩 영어 공부를 하자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며, 영어공부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꾸준히 많이 해 보았다고 자부한다. 심지어, 아기들 낳고 키우며 잠 못 자고 피폐하던 그 시절에도 나는 도서관에서 영어 동화책을 빌려와 쌓아 놓고 아기들에게 읽어주며 영어 공부를 했다. 따끈한 신간이어서 내가 아직 서점에 들르지 못해 미처 읽지 못한 책은 있어도, 출판된 지 1년 이상 된 동화책 중에 내가 읽은 적이 없는 영어 동화책은 찾기 힘들다.



내 영어 공부의 목적


문득, 이렇게 오래 영어공부의 탑을 쌓아가고 있는 목표가 불분명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저, 내 안의 빈 곳을 계속 채우려고만 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어민이 될 수 없다는 건 진작에 알았고, 아이 둘을 낳은 이후, 무슨 연유에선지 언어 능력과 기억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이 내가 그동안 쌓은 영어의 탑을 확 쓸어 버리고 있다는 것도 느껴왔다. 아이들을 낳기 전, 미국 직장에서 일하는 동안이 내 영어의 최고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데, 그때는 내가 미국에서 어릴 때부터 살았던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발음이 좋았고, 영어를 금방금방 주워 흡수하는 스펀지 같은 언어 능력이 내게 있었다.


심한 입덧으로 오래 침상 생활을 해야 했던 것과, 아기를 낳을 때 무통분만을 위해 맞은 에피듀럴 후유증과 밤에 1시간마다 깨던 아기를 키운 것이 합작하여 내 뇌에 무슨 짓을 했다. 영어를 자연스럽게 말하는 리듬과 발음도, 영어 문장을 빨리빨리 만드는 능력도, 상대방과의 대화에 집중하는 능력과 미국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는 능력까지 확 쓸어갔다. 영어를 듣고 말하는 근육 자체가 많이 약화되었다. 


나는 다시 근육을 키우고 싶었고, 능력을 높여가고 싶어서 사업과 아이들 육아/교육으로 바쁜 중에도, 계속 영어 책을 읽고, 매일 영어 공부하기를 이어나갔다. 전처럼 유창하게 술술 발음 좋은 영어가 흘러나오는 상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음을 새삼 깨닫고 있다. 어딘가 깨진 부분이 있는 빈 독에 영어라는 물을 계속 채우려고 애쓰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 알겠다.



내 영어의 목적은 무엇이어야 할까


나의 빈 곳을 채우려는 목적으로 사람을 대하면, 내 마음만큼 나를 채워주지 못하는 상대방이 점점 더 싫어지고 탓을 하게 되고 화가 나기 시작하는 법이다. 하지만, 내 빈 곳에 집중하지 않고, 상대에게 내 빈 곳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고, 제대로 상대의 마음을 보기 시작하면, 상대가 내 곁에 함께 하며 자신의 귀한 시간을 나누어 주는 자체에 기쁨과 감사함이 생긴다. 


나는 지금까지 나의 빈 곳을 채우려는 목적으로 영어를 공부해 왔다. 내 욕심만큼 내 결핍을 채워주지 못하는 영어가 점점 더 신물 나고, 이렇게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인 걸 내려놓을 수도 없고, 미국에 이렇게 오랜 시간 살아왔으니 테솔 석사 학위까지 있으니,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라는 사람이 원어민은 아니라도 원어민에 가까워야 한다는 강박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영어를 잘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계속 닦달하니, 점점 더 편하게 자신있게 영어를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가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재미가 사라져 버리고 속박과 부담만 남아 있는 게 아니었을까. 쉽게 자괴감과 수치심을 불러오는 무엇이 되어 가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부족한 영어 능력을 채우기 위한 영어공부를 그만두려 한다. 그 길은 어차피 채워질 수 없는 길이고 끊임없는 길이다. 나는 내 결핍에 그만 집중하려 한다. 뇌 기능이 떨어졌으면 떨어진 대로, 언어 능력이 줄어들었으면 줄어든 대로 그대로 소중한 나임을 잊어버릴 뻔했다. 내가 테솔 석사를 하며 내렸던 결론은, 영어는 놀면서 재미있게 배워야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이었는데, 나는 남에게는 잘도 그런 설명을 누누이 하면서, 나 자신은 옥죄기만 했다. 


나는 한 동안은 영어를 가지고 놀 방법을 연구해볼 생각이다. 공부는 접고 놀기만 해 볼 생각이다. 그리고 내 안에 쌓고 가두기 위한 영어가 아닌 세상과 즐겁게 나눌 수 있는 영어를 찾아 내 보려 한다. 글쓰기의 이유를 세상과 나누는 것에서 찾은 후, 글 사명감이 분명해지고, 글쓰기가 더 의미 있고 재미있어진 것처럼, 내 영어를 세상과 나눌 길, 사명을 찾아보려 한다. 그런 후에야 영어도 내게 더 재미있고 의미 있는 존재로 있어주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 작가의 클럽하우스 배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