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아 상처가 된다면

부실 공사된 곳을 손보고 다시 세울 기회가 온 것이다

by 하트온

미꾸라지 같은 말들이 내 마음에 진흙탕을 만들고


사람들이 함부로 하는 말들에 나는 곧잘 상처를 받곤 했었다. 때로 그 말들은 내 뱃속 깊숙이 들어와 미쳐 날뛰는 미꾸라지 몇 마리처럼, 몇 년이 지나가도 죽지 않고 계속 살아 내 안에서 분노와 수치심의 흙탕물 회오리를 일으키곤 했다.


나는 그 말을 뱉었던 사람들을 오래 미워하곤 했다. 그런 말을 사람 면전에서 하다니 저들이 악마가 아니고 뭔가 하고 생각되기도 했다. 무척 이상하게도 그런 잔인한 말을 함부로 내뱉는 악마는 가는 곳마다 있었다. 심지어 누구나 혐오하고 미워해야 할 악마들이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리고 잘만 지낸다. 어떻게 된 거지? 누가 잘못한 거지? 내가 아프고 상처 받는 게 내가 잘못한 건가? 내가 이상한 건가?


오랫동안 혼돈스러웠다. 세상이 천천히 내게 말해주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은 악마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라고.



나를 상처 낸 것은 악마가 아니라, 내 안을 파고들어온 외부적 기준이었다


삶은 내부적 기준 - 내 소신 - 과 외부적 기준 간의 피나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내 소신이 내 정체성 자아상이 건강하게 자리잡지 못한 곳은 외부적 기준의 침략에 힘없이 무너지고, 그것들은 내 안으로 한없이 파고 들어와 할퀴고 상처를 내는 것이었다. 뻔뻔한 얼굴로 눈치 없이 아무 말이나 마구 뱉어내는 내 앞의 인간은 외부적 기준을 상기시키고 밀어 넣는 메신저일 뿐이었다.


외부적 기준을 전달했던 인간을 미워할 일이 아니라, 외부적 기준이 치고 들어와 생채기를 낸 내 내면의 영역들을 치밀하게 돌아보고 보수할 일이었다. 나는 더 이상 피해자의 자리에서 아프다고 신음하며 쓰러져 있기를 그만하고, 벌떡 일어나 뭔가 지금까지와 다르게 살겠다고 결심했다. 내게 상처를 준 말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내가 보수해야 할 영역들을 파악해 나갔다.


삶의 전쟁 속에 망가진 많은 영역 중에서 가장 심각하게 훼손된 부분은, 내 성격을 포함한 나 자신의 중심을 둘러싸고 있는 영역이었다. 그 영역이 약하게 된 것은, 내 부모와 관련이 있었고, 그것은 내 자녀들의 중심에까지 이어내려가고 있었다.



내 중심을 강하게 세우기


훼손된 곳을 다 파내서 애초에 부실 공사된 부분들을 하나하나 발견해 나가야 했다. 바닥에 깔려 있는 오래 썩어 온 결핍감에서 시작된 질투, 비교의식과, 서열주의, 자기혐오,... 그것들을 낳은 온갖 거짓말과 입구에서 걸러지지 않고 통으로 들어와 자리 잡은 남의 말들, 개똥철학, 쓰레기 사상 관념들을 깨끗이 청소하고 보니 진실의 기둥뿌리가 썩어 있었다. 썩어 무너지기 전에도 전혀 탄탄하지 못했던, 결코 내 삶을 단단히 받칠 수 없는 부실하고 볼품없는 기둥의 모습은 보기에 무안할 정도였다.


다시 새로운 진실, 건강하고 단단한 정체성 자아상의 기둥부터 세워야 했다.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야.

나는 소중하고 귀한 사람이야.

누구나 평등하게 태어나고, 나는 독특한 한 사람으로 모든 사람과 똑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어.

내가 타고난 목적과 사명이 있고, 나만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나는 내게만 주어진 그 사명을 이루고 말 거야.


정체성이라는 기둥을 세우고, 진심 어린 응원과 격려로 버무려 만든, '나다운 선택'이라는 벽돌을 하나하나 견고히 쌓아 '나의 소신'이라는 강한 성을 세웠다.


이제 어느 누가 어떤 말로 공격해도, 내 성을 무너뜨릴 수 없다. 물론 전에 무너졌던 기억이 있어 잠시 움찔하긴 하겠지만, 내 내면이 건강하고 탄탄하게 견딘다는 것을 경험할수록 움찔하는 버릇도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내면을 보수하는 핸디맨


누군가의 말 때문에 내 안이 무너지는 걸 느낀다면 두려워하지 말기 바란다. 내 안의 그 부분이 약하게 부실 공사되어있었을 뿐이다. 그 사람의 찌르는 말을 '상처'라는 카테고리로 분류해 오래 묵히지 말고, 내 안의 부실한 면을 자각하게 해 주는 '고발장' 카테고리로 분류하기 바란다. 재건축 공사가 끝나면 부실함을 알렸던 고발장 카테고리는 깨끗이 소각해 버릴 수 있는 무엇이 된다.


재건축 공사를 멋지게 해내면 그만이다. 다 다시 뜯어내고 잘못을 분석하고 새로 강하게 멋지게 다시 세우면 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스스로의 내면을 잘 보수하는 핸디맨이 되어야 한다. 물론 누구나 처음엔 서투르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때론 상담사나 정신과 의사 같은 전문 도우미들을 찾아가야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스스로의 내면을 보수하는 이런저런 경험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나는 경험 많은 내면 핸디맨이 되어 있다.


심지어 이웃들이 나의 만능 핸디맨 실력을 알아보고 부르는 날도 온다. 내 안을 보수해 온 경험이, 타인의 마음을 보수하는 데 도움을 줄 날도 온다. 내가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의 보수 재건축 작업이다. 내가 내 마음을 보수하기 위해 써왔던 글이 이젠 타인의 마음에도 내면 핸디맨의 손길로 다가가는 것을 본다.


우리의 인생길 내내 외부적 기준의 잔인한 공격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것을 쉴 새 없이 전달하는 미운 인간들도 어딜 가나 있을 것이다. 외부적 기준이 압박하는 것보다 더 끈질기게, 더 부지런히, 내 안의 소신과 신념을 다지고 또 다져 막아내고 앞서가면 된다. 때론 실패하고 부서져도 다시 일어나 또 공사하고, 또 세워내면 된다. 나에겐 그럴 수 있는 힘이 있고 능력과 기술이 있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다 괜찮다.



나를 아프게 하는 누군가의 말? 외부적 기준? 까짓 거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