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카렌 밈’( "Karen" meme) 현상

정의를 구현하고 싶은 임시 각성제

by 하트온



photo-1590989994833-e06bfcbb732a?ixlib=rb-1.2.1&auto=format&fit=crop&w=1000&q=80 © koshuuu, 출처 Unsplash



‘카렌’이라는 이름이 현재 이유 없이 흑인들을 경찰에 신고하는 등 인종차별주의적 행동을 하거나, 특권의식으로 충만한 사리 분별없는 행동을 하는 백인 여성들을 칭하는 대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 심지어는 ‘카렌’의 전형적인 헤어스타일 - 원래는 ‘여기 사장 나오라고 해(“speak to the manager haircut.”)헤어스타일'이었던 것이 '카렌' 캐릭터로 흡수됨 - 까지 사진이 돌고 있는 상황이다.


Screen Shot 2020-09-26 at 12.06.27 PM.png https://filmdaily.co/news/karen-jokes/


‘카렌 밈’이 시작된 것은 지난 5월 25일 미국 맨해튼 센트럴 파크에서 에이미 쿠퍼라는 이름의 한 백인 여성이 무고한 흑인 남성을 경찰에 신고한 것이 화제가 되면서, 네티즌들이 그녀를 ‘카렌’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 사건이 있고, 며칠 후, 또 다른 여성이 어느 운전자가 원하는 파킹랏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차에 기대는 행동을 했고, 이것이 촬영된 영상이 돌기 시작하면서, 네티즌들은 주저 없이 이 여자에게도 ‘카렌’이라는 해쉬태그를 붙였다. 이 사건들과 함께,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양 개념 없이 행동하거나, 무례하거나, 인종차별주의 본색을 드러내는 백인 여자들을 통틀어 ‘카렌들’(Karens)이라고 부르는 인터넷 현상이 시작되었다.



‘카렌’이라는 이름을 대중이 대명사처럼 쓴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고 한다. 자신들이 특권층인 듯 오만방자하게 행동하는 중년의 백인 여성들을 경멸하는 뉘앙스를 담은 이름으로 사용되어 온 역사가 생각보다 깊다고 사회문화학자들이 주장한다. 또한. ‘카렌’ 캐릭터가 코미디쇼, 혹은 드라마 캐릭터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모든 말이 맞을 수 있지만, 어쨌든 지금 시점에선 그 유래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사실 ‘카렌 밈’은 잘못된 혐오감의 발산 인지도 모른다. 성차별적인 요소도 있고 - ‘데이빗’이나 ‘마크’ 같은 남성명이 아닌 ‘카렌’이라는 여성명이라는 것. 또한 수많은 진짜 ‘카렌’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명예훼손급의 피해이고, 최근 예쁜 아기를 낳아 '카렌'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던 부모들이 줄줄이 개명 신청하는 웃픈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백인 중년 여자라고 다 나쁜 게 아닌데, 한국의 ‘김여사’처럼 선입견과 편견을 심히 일반화, 스테레오타이핑 하는 행위로 보이기도 하지만, ‘카렌 밈’의 오류와 잘못을 지적하고, 성차별 역 인종차별로 몰아가기 전에


많은 이들의 공감을 끌어내고 있는 '카렌밈'의 심장을 꿰뚫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지금 우리 모두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카렌 밈’으로 한 목소리를 내는 사회적 현상의 배경과 이유다. 또한 우리는 이 ‘카렌밈’이 이루고자 하는 일,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의지를 가늠해야 한다.



‘카렌 밈’은 표면적으로 개념 있는 사람처럼 행세하며 인종차별이 없는 사회,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 가자고 하는 듯 하지만, 내면 깊숙이 인종에 대한 서열의식을 품고 있는 - 사회학자 Karen D. Pyke가 internalized racism이라고 이름 붙인 바 있는- 백인들의 위선을 꼬집고 있는 것이다.


공원에서 흑인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경기하듯 반응하며 경찰에 신고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에이미 쿠퍼라는 여자가 화제가 되었기에 여성 이름인 ‘카렌’이 된 것이지만, 사실은 백인 남성, 백인 노인, 백인 청년,… 백인 여성이 아니라고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일상에 흑인 (혹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의 존재가 조금이라도 신경이 거슬리면 경기하듯 과잉 반응하는 것이 조지 플로이드 사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흑인 청년이 사망한 사건)의 과잉진압 경찰과 그 사고방식에 있어서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 직후에 일어나고 있는, ‘카렌 밈’ 현상은 미국에 거주하는 재미교포 한인들 입장에서는 다행천만 한 일이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흑인이 경찰한테 과잉진압당하고 목숨을 잃는 등, 흑인들 전체가 분노하는 인종차별 문제가 발생하면, 미디어는 종종 이것을 백인 vs. 흑인 구도가 아닌 한인 vs. 흑인 구도로 몰아가곤 했었다. 흑인 밀집 지역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한국인 자영업자들이 유독 많기도 하고, 두 인종간 부정적인 경험들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기에, 그런 상황에서 한인 상점 주인이 흑인 고객을 무례하게 대하거나 과잉 방어적인 행동을 취한 것 - 이것 또한 말 전하기에 따라 정말 달라지는 이야기들인 - 이 전국적으로 편파적으로 보도가 되는 순간, 흑인들의 분노를 자기들 지역 안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한인들에게 폭력과 약탈의 형태로 퍼붓는 것이 항상 일어나는 수순이었다. 이런 흑인 폭동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가장 심하게 부서지고 두드려 맞는 것은 한인들의 몫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한인들 중에서도 흑인에 대해 선입견 혹은 왜곡된 인종 서열의식을 가지고 있는 차별주의자들이 분명히 있고, 그들의 사고방식,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모멸감과 분노를 느끼는 흑인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흑인과 한국인이 인종간 대립으로 폭력사태가 일어나야 할 수준의 갈등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결코 아니며 - 오히려 서로를 존중하고 평화롭게 협력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들이 훨씬 많다 - , 흑인과 한인, 인종간 갈등을 부추기고 확대하여 몰고 간 것은 미국 언론의 책임이 분명히 있다.


가장 명백한 예로, 지난 LA폭동 때, 전쟁을 방불케 하는 총격전이 일어날 정도로 한인 vs. 흑인 간 갈등 구도가 심각했던 적이 있다. 당시, 경찰들은 한 발 물러나, 백인 타운 위주로만 지키고 보호하였으며, 미국의 주요 미디어들 또한 한인들이 총을 들고 대항하는 장면을, 흑인들과 적극적으로 전쟁을 벌이는 갈등의 주인공 집단인 듯 몰고 가며, 한인 영업장, 영업 구역을 분노한 흑인들에게 제물로 썼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미국 정부, 미국 사회는 백인 vs. 흑인 갈등 구도를 기피하는 듯하다. 특히 백인 남성이 인종차별의 중심에 서게 되는 것은 온 미국 사회 전체가 기피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플로이드 사건과 같은, 백인 남성 경찰에 의한 흑인 사망이 자주 일어나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백인 남성, 혹은 백인 남성이 대다수인 경찰 집단에게 ‘카렌 밈’ 같은 조롱과 멸시가 쏟아진 적은 없다. 그들보다는 사회적으로 대중적으로 어쩌면 백인 여성이 더 혐오감을 발산하기 더 만만한 상대이기 때문에 쉽게 ‘카렌 밈’이 조성된 것은 아닐까.


어쨌든, 대중들이, 과잉진압을 자행한 백인 경찰에 대한 분노를, 흑인이 자신이 지나가는 길에 있었다는 이유로 경찰이 와서 체포를 하든 과잉진압을 하든, 죽이든 내 눈 앞에서 다시는 얼쩡거리지 못하게 해 주기를 바랐던 ‘카렌’에게로 확산시키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과잉 진압하는 경찰만큼이나, ‘카렌’이 함부로 신고하는 것 또한 흑인들의 생명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심각한 요인이라는 것이다. 흑인들의 생명을 쉽게 여기는 듯한 경찰들 만큼이나, 사회 도처에 존재하며 조금씩 은근하게 인종차별을 일삼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행사하는 카렌들 또한 사악하고 위험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카렌들’을 가려내고 그들을 자신들이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마녀 사냥을 하고 싶은 것이 지금 미국 네티즌들의 심리상태다.


‘카렌 밈’의 시초가 된 앤더슨 쿠퍼라는 여자는 현재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개까지 임시로 빼앗긴 상태다. 모두들 이게 정의 구현이지 생각하며 박수를 친다. 미국에 살면서, 미국 백인 여자들의 못돼 처먹은 성질 부림, 대놓고 차별, 왕따를 당해 본 사람은 사실 이 현상에 '꼴좋다' 속이 시원한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카렌들’은 한 번쯤 이런 일 당해도 싸다’는 것이 대놓고 말하지는 않더라도 아마 유색인종들, 이민자들이 느끼는 공통된 감정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게 만든, 바이럴 된 영상, 그것이 불러온 ’ 카렌 밈’이라는 사회적 이슈가 없었더라면, 앤더스 쿠퍼 사건 또한, 앤더스 쿠퍼라는 백인 여성은 전혀 피해 보는 일 없이, 늘 그래 왔던 것처럼, 흑인만 어이없이 피해를 당하는 일로 끝났을지 모른다. 이들을 찍은 영상이 ‘카렌’이라는 해쉬태그를 달고 바이럴 현상을 일으켰기 때문에, 이 정도의 정의라도 실현된 것이 아닐까. ‘카렌 밈’ 자체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만큼의 임시적 정의라도 구현하는데 작용한 필요악이 아니었을까. 특권의식으로 함부로 갑질 하는 ‘카렌’이 되어 망신당하지 않아야겠다는 경각심을 잠시 동안이라도 주는 각성제처럼 말이다.


하지만, 잠시 유행처럼 지나가는 ‘카렌밈’이 미국 사회의 깊고 아픈 ‘인종차별’이라는 오랜 '목구멍에 여전히 걸려있는 가시'에 대한 해결책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내 슬픈 예감이다.


내 친구 (직업이 교사인 흑인 여성)와 내가 서로가 느끼는 인종차별, 선입견(스테레오타입)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장 보러 어느 영업장에 들어갈 때마다 뭔가 훔치려고 들어온 사람이 아닌가 쉽게 의심받곤 하는 자신의 일상적 경험, 자신의 가방에 든 모든 물건에 제 것이라는 표시를 해 놓았다는 - 언제든 가방 검사를 당할 수 있기에 -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갑자기 목을 뚫고 들어오는 따가운 가시와 함께, 뱃속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불길을 느꼈다. 이들이 생활처럼 당하는 오해와 의심, 모욕과 신고, 쉽게 일어나는 과잉 반응 과잉 진압.


나는 이들을 생각할 때, ‘카렌 밈’ 보다 더 큰, 더 속 시원한, 더 멋지고 선한 방법으로, 이들의 눈물을 씻어주는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있다.



오늘도 찾아와 하트온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인종차별, 인간차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