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력'의 일인자
남자가 힘겨루기를 할 때 사용하는 가장 본능적이고 동물적인 방식이 '주먹질, 몸싸움'이라면, 여자들에게 그것은 '관계력'*이다.
*관계력: 이 글에서 말하는 관계력은 글쓴이(하트온)가 말하고자 하는 것의 설명을 돕기 위해 [관계 + 힘]을 임시로 조합한 단어로, 주변과 관계를 맺는 능력뿐 아니라, 주변 타인의 관계를 조종하는 힘 - 관계 조종력-을 다 포함한 관계적 능력을 말함.
남자들이 힘으로 제압하고 군림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면,
여자는 관계를 조종하며 상대를 압박하고 힘을 과시하고자 하는 본능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
남자들 중 가장 힘이 강한 우두머리가 '조폭 우두머리'나 학교의 '짱'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면,
여자들 중 힘이 강한 우두머리는 '여왕벌'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조폭 우두머리'나, '학교 짱'이 어떤 상대가 와도 제압할 능력이 있다면,
'여왕벌'은 주변 누구와도 원하는 관계를 맺을 능력이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의 주변관계를 끊어 놓을 수 있는 '관계 절단 능력'이 있다.
'여왕벌'과 그것이 만드는 여자 세계의 힘의 구도를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왜 여자들 모임에서 항상 누군가는 중심에 있고, 그 사람이 딱히 좋은 영향을 주거나 인격적인 사람이 아님에도 사람들이 둘러싸고 잘 지내려고 하는지, 누군가를 해코지하거나 나쁘게 행동한 기억이 없는데도 어느새 관계가 다 떨어져 나가는 일이 발생하는 것인지, 왜 없는 말을 지어내기까지 하면서 이간질, 험담이 무성한 것인지...
남자들이 열심히 힘의 서열을 정리하기 위해 주먹질하고 기싸움하는 시간에,
여자들은 험담, 이간질로 '관계력'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서열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남동생 밖에 없었고, 남자아이들만 수두룩한 동네에서 자라고, 소녀보다는 소년 같은 분위기 덕분에 여중 여고에선 '팬레터 받는 인기 아이돌' 역할을 했고, 이후, 공대, 대학원, 연구소, 엔지니어링 회사,... 들만 전전했으므로, 여자들 사이의 '관계력' 경험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그만큼 여자들 사이에서 발휘할 수 있는 '관계력'을 갖추지 못했고, 심지어 지금도 아들 둘과 남편, 남자 셋에 둘러싸여 사는 입장이라 남자들과의 관계가 훨씬 편하고 남자들이 더 잘 공감이 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결혼한 입장에서 이웃집 총각이나, 남의 남편과 친하게 지내고 친구가 될 수는 없는 일이므로 오프라인 관계는 모두 '여자' 뿐이게 되었다. 결혼을 하면서 더 이상 '가부장적 사고'와 결합한 남자들의 힘의 군림을 피해 다닐 필요는 없어졌지만, 또 다른 문제들이 다가왔다. 아이들 엄마들과의 플레이데잇, 교회 여성 모임, 동네에서 알게 된 한국 여자들, 여초 직장의 미국 여자들,... 여자들과의 만남이 더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뭔가 이 여자들 세계 속에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잘 지내려고 노력했음에도 무언가 이건 아닌 것 같은 일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관계가 꼬이고 뒤틀리는 일들이 자꾸 발생했고, 그런 일들은 점점 상처가 되어 마음에 쌓였다.
10년 여자들 세계에서 고행한 후에 깨달은 것은 '관계력'이었다. 그리고 '나의 관계력' 상태였다. 어릴 때부터 뛰어넘고 싶은 남자들의 세계, 남자 집단에 포커스를 두고, '주먹'과 체력을 키우며 남자 집단 근처만을 맴돌았으므로, 여자들 세계를 충분히 경험하지도 못했고, '관계력'을 위한 실력을 전혀 키워두지 못했다는 것을 자각했다. 그리고 세상 여자들은 대부분 나보다 '관계력'이 뛰어나다는 사실, 그 '관계력'이 올림픽에 출전할 수준인 탁월한 '여왕벌'들이 도처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청소년기 내가 여중 여고를 관계로 상처 받는 일 없이 무사히 졸업한 것은 되돌아 생각해 보니, 나의 '소년 미', '걸 크러쉬 미', 덕분에 '여왕벌들'에게 전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을뿐더러,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친하고 싶었던 '여왕벌들'이 많았고, 나는 '여왕벌'의 '특별 절친'으로 지냈기 때문에 '특별 대접'을 받았던 것이었다. 내 소싯적 절친들이 나름 자신들의 세계에서 '여왕벌'인 존재들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사실은 나도 '여왕벌'의 보호 덕택에 편안히 지냈던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여왕벌'에게 시달리지 않으려면, 그 '여왕벌'이 좋아하고 동경하는 사람이 되면 된다는 결론.
그러나, 나이를 먹고 '소년 미'를 잃고,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여성 미'를 키워가고 있는 나이기에 더 이상은 '여왕벌'에게 호감을 얻을 수 있는 어떤 조건도 없으며, 많은 순간 나의 뼛속까지 '평등주의자'적 태도가 그들에게 '위협'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수많은 경험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들이 상대를 압박하기 위해 발휘하는 '관계력'은 정말 엄청난 힘이었으며, 내가 쿨쿨 자고 있는 밤사이에 여자들 세계의 관계 판도가 뒤집히는 대전쟁 - 전화통화, 단톡 방 문자 돌림,.. 등등 온갖 현대 기술을 동원한 - 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나는 그들의 '관계력' 싸움에 낄만한 실력이 전혀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제로 관계력'인 내가 한 가지 '묘수'를 찾은 것은, 가능한 여자들과 '집단'으로 엮이지 않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집단 상황에 봉착하지 않는 한, 나의 철칙은 항상 '1대 1'이다. 그 '1대 1'의 상대를 통해 다른 사람을 소개받는 일도 기피한다. 여자들 사이는 3명만 돼도 험담과 이간질이 생긴다는 것을 수없이 경험했다.
30대 이후, 내가 성역할 정체성을 어느 정도 회복하고, 여초 직장에서 일하는 '도서관 사서'와 '한글학교 교사', '스토리 타임 교사', '공립학교 교사'라는 직업을 거치면서 내 주변에는 여자들이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가까이서 여자아이들을 관찰할 기회도, 주변 엄마들, 주변 할머니들을 관찰할 기회도 많이 얻으면서 깨닫게 된 것들이 있다.
어느 날 A라는 아이의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 A와 같은 반의 B가 친한 친구였는데, 새로운 아이가 나타나거나 여러 아이들과 놀 때, B가 돌변해서 다른 아이들과 무리 지어 우리 딸 A를 왕따 시켜요. 좀 지켜봐 주세요.
얼마 후 B라는 아이의 엄마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C라는 아이가 우리 B에게 자꾸 왕따를 놓는 것 같습니다. 아이가 많이 힘들어해요.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C의 엄마도 전화를 했다.
우리 딸이 맨날 D라는 아이에게 왕따 당합니다. 좀 도와주세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A는 B라는 아이에게 당한다고 하고, B는 C 때문에 괴롭고, C는 D한테 왕따를 당한다니... 그럼 A <B <C <D 순서로 왕따 시키는 힘이 센 건가?
나는 하루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A, B, C, D 아이들이 노는 걸 지켜보았다. 그런데, 내가 보고 있는 그 순간, A, B, C가 모여 D를 놀려먹고 따돌리고 있었다. 계속 자주 지켜보니, 그런 짓을 서로 돌아가면서 했다. 5-6세 여아들의 이야기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그것이 여자들의 '관계력' 싸움이라는 것을.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서로서로를 향해 '관계력'을 이리저리 휘둘러 보는 것이고, 엄마들 입장에서는 내 딸만 유난히 당하는 게 아닐까 걱정한다는 것을.
당신 딸도 만만치 않게 '관계력'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대신,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아이는 생각보다 강하고 학교생활 잘합니다.
나는 이 사건을 계기로, 어떤 문화 질서와 인격이 제어를 돕지 않으면 여자들의 관계는 쉽게 '여왕벌과 시녀 집단'을 형성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3살짜리 여아들부터, 70,80 먹은 할머니들까지 말이다.
가장 '힘' 센 아이, '관계력'이 뛰어난 아이를 골라내서 벌을 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교사는 학교에서, 각종 지도자들은 자신의 영향력이 닿는 영향권 안에서 '인간이 안전하고 평등하고 평화로운 관계를 누릴 수 있는 사회 문화' 형성에 앞장서야 한다. 내가 '힘', '강한 관계력'이 있음에도 '약자'를 괴롭히지 않는 인격, 그런 마인드를 기르고 권장하는 사회 문화가 건강하게 서 있어야만 , 그런 마인드를 가진 인격적인 리더가 잘 이끌어야만, 그런 본능적인 힘의 서열 세계가 판을 치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각종 서열 주의를 등에 업고 판치는 각종 '폭력'과 함께, 절제 없는 '관계력'이 판치는 여자들 집단을 보이콧한다. 내가 남자였다면 절제없는 주먹다짐이 판을 치는 남자들 집단을 보이콧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