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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트온 Sep 25. 2020

짬뽕과 짜장면

다 아는 맛이라서


©Jungyeon 출처 Pixabay


내가 미국행을 택했던 건, 순전히 짜장면 맛만 알고 짬뽕 맛은 몰랐던 시절, 한 번도 보지 못한 새로운 맛 짬뽕을 고른 선택이었어요. 미국 와서 짬뽕만 실컷 먹는 나날들이 이어지는 동안, 실은 짜장면이 그리워 죽을 것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709K 출처 Pixabay

 

한 달 동안 짬뽕만 계속 먹는 게 좋은가, 짜장면만 계속 먹는 게 좋은가를 놓고 논쟁을 하는 것이 의미가 없듯이, 미국에 사는 게 좋은가 한국에 사는 게 좋은가 따지는 것은 사실 별 의미가 없어요. 그래도 미국에 사는 많은 한국 사람들은 이 비교를 끝없이 해 봅니다. 언젠가는 한국에 돌아갈 거라 믿는 사람들도 많고, 노후를 한국에서 보내기를 꿈꾸고 소원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저도 가끔은 미국과 한국을 펼쳐놓고 삶의 질을 비교해 볼 때가 있어요 (쓸 데 없이)


미국 (지금 사는 동부 중소도시 기준)


장점: 공기가 비교적 맑다. 땅 넓고 공원 많고 인구밀도가 비교적 낮아서 가족들과 사람에 치이지 않고 근교 나들이 갈만한 곳이 많다. 아이들 인생이 좀 더 여유롭고 편한 듯. 비교 경쟁 없음. 내 외모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인간 없음. 학벌 출신 나이를 서열 정리하려고 물어보는 인간 없음. 비교적 싼 집값과 고깃값.


단점: 인터넷을 비롯한 모든 것이 느림. 느려 터짐. 심심. 단조로움. 고립감. 인간관계 어려움 (미국에서 왜 인간관계가 어려운지는 나중에 따로 설명드릴게요). 때로 훅치고 들어오는 인종 차별. 끝없는 외국인 자격지심. 



한국 (내가 살고 싶은 서울 부산 대도시 + 근교 기준)


장점: 재밌다. 친구도 많다. 가족 친지도 많다. 인터넷을 비롯한 모든 것이 빠르고 신속. 맛있는 음식 널림. 환상적인 배달 문화. 익숙하고 편리한 한국말과 한국문화. 따뜻한 정. 


단점: 미친 집값과 물가. 주변에 사람이 많은 만큼 참여해야 할 경조사, 이벤트가 넘침. 무한 경쟁. 지적/비교. 정신적 피로감. 공기 오염. 어딜 가나 사람 많음. 때로 훅치고 들어오는 인간 차별. 서열 정리. 갑질. 



하지만 이건 오롯이 저 개인의 형편과, 저만의 개인 경험을 기준으로 비교한 것입니다. 현재 미국에 어떤 지역에 사는가, 한국에서 어디에 살 것인가, 당사자의 사회적응 능력 및 성격, 선호도 경향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기에 이것은 온전히 저에게 맞는 비교일 뿐, 남의 상황에는 적용되기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


어쨌든, 결론은 항상 반반. 동전의 양면. 편하고 외롭거나, 재밌고 피곤하거나. 이쪽도 저쪽도 장단점이 있다는 거예요. 사실 인생의 모든 것이 다 그래서 - 뭘 골라도 장단점이 있어서- 저는 살면 살수록 세상이 참 공평하다고 느낍니다.  


제게 한국에 돌아갈래, 미국에서 계속 살래 라고 선택의 여지가 주어진다면, 저는 한국도 미국도 선택하지 않을 것 같아요. 다 아는 맛이라서 그렇습니다. 물론 아는 맛이라 먹고 싶고, 당길 때가 있지만, 그건 가끔일 때가 좋은 것 같아요. 


제 마음은 늘 새로운 맛을 추구하고 싶어 해요. 가족과 생계, 일이라는 걸림돌이 없었다면, 저는 계속 새로운 맛을 찾아다녔을 거예요.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고 사는 아미쉬 마을에서도 살아보고 싶고, 미국의 원주민들이 쫓겨나 모여사는 저 시골 구석 아메리칸 인디언 마을에도 가서 살아보고 싶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물과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숲 속에서 자급자족을 시도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사실 저는 도시의 맛에 질린 상태인 것 같아요. 마트가 없다면 저는 먹거리를 구할 다른 방법을 모르고, 먹거리를 직접 구하고 재배할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게 점점 답답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져요. 모르는 사람들과 다닥다닥 붙어서 아등바등 경쟁적으로 사는 도시의 삶도 지겹고요(물론 여기가 서울보다는 훨씬 들하겠지만). 자동차 소음과 공해도 없으면 좋겠어요(편리 없이 살 수도 없으면서 이런 말을 일단 지르고 보는 무모한 나). 태어나서부터 콘크리트 바닥을 딛고, 시멘트 건물 아파트에서만 쭉 살았던 저는,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놀러 가 본 기억 말고는 자연과 어울려 살아본 기억조차도 없다는 것이 서글플 때가 있어요.


그나마, 어릴 때 고층 아파트 살면서 너무나 원했던, 땅 밟고 사는 꿈을 미국에서 이루긴 했네요. 


하지만, 저는 새로운 맛에 대한 바람만 가지고 있을 뿐, 이곳을 벗어나려고 그다지 노력하지 않는 저를 발견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짜장면이 지겹다고 한국을 떠났을 때, 익숙한 것이 주는 안정감과 친숙함을 버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불에 덴 적이 있거든요. 가볍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 고통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맞먹는 고통이라고, 제가 고통을 참다못해 찾아간 금발머리 파란 눈의 카운슬러 아저씨가 말해주었어요. 오죽 힘들었으면 내 말 들어줄 한국인을 찾지 못해, 영어로라도 속풀이를 해야만 했을까요. 마음을 속시원히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해 간간이 끊어지던 답답한 제 영어를 잠잠히 들어주던 카운슬러 아저씨의 파란 눈에 차오르던 눈물, 그리고 제 손을 잡고 해 주던 기도가 너무나 위로가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귀에 익숙한 말이 들리고, 눈에 익숙한 사람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안정감은 그 안정감이 사라질 때까지 알 수 없는 공기 같은 거예요. 지인 누군가가 저에게 직장생활이 힘들어 미국으로 이민 가고 싶다고 했을 때, 제가 적극 말리면서 그랬어요. ‘편안한 공기 함부로 버리는 거 아니다’ 라구요. 


그래서 어쩌면 중국집에 새로운 요리가 출시되고 어쩌고 해도, 사람들은 짜장면과 짬뽕을 끊임없이 선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짜장면과 짬뽕이 다 지겹다는 이야기에서, 결국 짜장면 아니면 짬뽕을 먹을 거라는 이야기로 끝나고 있는 이 제 글을 어떡할까요. 댓글에 이런 글이 달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


'그래서 뭐여? 결국 짜장면이 먹고 싶다는 겨, 짬뽕이라는 겨, 아님 딴 거 시킬 거라는 겨?'


혹시 모를 댓글 질문을 위해 답부터 드릴게요. 지금은 짜장면이 엄청 당기기만, 짜장면 시키면 짬뽕도 엄청 당길 거라는 걸 알아서, 저는 언제나 반반으로 먹을 수 있을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라는......


써 놓고, 제 진짜 본심을 발견하네요. 결국, 둘 다 먹고 싶다는 양심 불량자였습니다 제가.  


어쩌면 이 브런치라는 공간이 매일 짬뽕만 먹고사는 나에게 진한 짜장면 맛을 제대로 보여주는 곳이라 사랑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말씀도 덧붙이고 싶네요. 


오늘도 찾아와 하트온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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