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평등으로 나아가는 길
내 안의 혐오를 점검하다가
한 번씩 내 안의 감정을 들끓게 만드는 상황이 있다. 많이 느긋해지고 편해진 내 안에 여전히 작은 불길을 일으키는 생각과 행동들이 있다. 분명 내가 싫어하는 것이 여전히 있는 것이다. 아직 남아 있는 혐오. 내 안의 혐오를 합리화하기를 잠시 멈추고, 용기 내어 내 안의 혐오들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나의 혐오가 향하는 한 가지 방향을 본다. 그것은 평등이다. 나는 평등을 목숨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평등을 저해하고 평등의 길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온몸으로 혐오하고 있다. 나는 왜 평등을 그렇게나 소중히 여기는 것일까. 그렇게나 큰 가치로 여기는 것일까. 나는 왜 평등을 수호하지 못해서 안달복달하는 사람이 된 것일까.
나는 차별의 뜨거운 맛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금세 깨닫는다. 사람이 사람을 주관적으로 - 혹은 보편적 기준에 따라 - 분류해서 다르게 대할 때, 칼날이 마음을 찢고 지나가는 고통을 생생하게 느껴본 사람이라 그렇다. 여자로 태어나서 언젠가 적당한 때에 시집가 버릴, 가족 집단, 학연 집단, 회사 집단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인간이라서,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존재. 나서지 말고 나대지 말고 조신하게 살며 시집가기 전까지 최대한 희생해주면 좋은 존재. 어렸을 때 뜨겁게 겪었던 그 차별을 시작으로, 각종 인간 차별 인종 차별이 내 살을 파먹겠다고 조용히 덤비는 식인 상어처럼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녀, 조금도 방심할 수 없는 삶을 전전긍긍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차별만이 문제인 건 아니겠지만
이 세상에 차별만이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감정을 가장 뜨겁게 만들 수 있는 것은 확실히 차별 문제다. 이젠 남녀 차별만이 문제가 아니다. 남녀 차별의 아픔을 겪었던 덕분에 공감 능력의 내공이 커져버린 만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차별에 대해 나는 뜨거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차별 자체와 함께, 차별을 지향하는 서열주의, 식민주의, 계몽주의, 학벌주의, 인종주의,... 같은 것들도 함께 혐오한다. 서열정리를 위해 재단하고 분류하는 시선을 혐오한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고 조금 아는 것을 휘두르며 덤비는 어설픈 넘겨짚기와 편견과 선입견을 혐오한다. 내가 남보다 나은 것 하나라도 찾으면 그걸 내세워 서열의 우위를 점하려는 인간의 교만한 본성도 함께 혐오한다. 자신이 휘두를 수 있는 기준과 규칙을 내세워 사람들 통제하고 좌지우지하려는 갑질 본능도 혐오한다. 특히 사람을 이롭게 하는 듯 종교나 정치의 탈을 쓰고 가장하여 인간을 차별과 통제를 가하고 이용할 대상으로 삼는 사상과 태도를 혐오한다. 동시에, 인간 인식의 한계 앞에서 겸허한 태도를 버리고, 알량한 지식을 무기 삼아 휘두르는 양심 없는 지성, 자기주장 합리화에만 힘을 쏟는 논쟁을 혐오한다. 이렇게나 혐오하는 것이 많고, 내 안에 불쾌함을 일으키는 것이 많다.
계속 혐오해도 될까?
싫어하는 것을 계속 싫어하는 마음이 있어야, 그것에 화를 내는 마음이 있어야,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사람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함께 분노와 혐오라는 감정도 허락된 이유가 아닐까.
하지만 이것이 사람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나도 똑같이 내 생각을 기준으로 삼아 휘두른다면, 나의 교만한 통제 욕구를 푸는 수단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내가 혐오하는 대상과 내가 달라질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나도 충분히 잘 모른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겸허한 태도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평등의 기준을 만들고 큰 소리로 떠드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내가 사람과 마주했을 때, 함부로 재단하고 줄 세우고 차별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내가 차별받는 것을 혐오하는 만큼, 내가 열린 마음으로 선입견 없이 사람을 대할 줄 아는 것이 아닐까.
마음에 혐오하는 것이 있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혐오를 기준으로 만들어 함부로 휘둘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함부로 사람을 미워하고 공격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혐오하는 그 모습을 내 안에서 내 삶에서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 믿는다. 혐오하는 것이 없어진 세상을 원한다면, 진정 개혁을 원한다면, 나 자신, 나의 내면부터 개혁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목표는 나를 사랑하고, 그만큼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내 안의 혐오가 감당해야 할 역할을 생각해 본다. 내 삶에서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밀어 내고 - 혹은 충분히 싸우고 고민해 보고, 결국 내 삶을, 나 자신을 사랑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나를 품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내공이 타인을 사랑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사랑은 혐오에서부터 출발하여 나 자신과 싸우며 이루어지는 성장과 변화가 아닐까. 사랑을 향한 시작 선상에 서 있는 나의 혐오를 가만히 품고 토닥거려 본다. 사랑과 평화, 평등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격려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