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다시 일어서서
아침부터, 눅눅하게 가라앉은 뜨거운 여름 공기를 느끼며 멈추어 선다. 요즘의 내 감정 같아서 미워하지 않기로 한다. 발을 움직여 나아가 본다. 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지점에서 나는 또 멈춘다.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가던 방향으로 계속 걸어가 본다. 금방 나왔는데,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 계속 걸을까 돌아갈까 이쪽으로 갈까 저쪽으로 갈까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라도 한 잔 살까 그냥 집에 갈까. 마음이 정해지지 않는다.
나는 자주 마음을 정할 수 없다. 기호가 없는 사람이라 그렇다. 좋아하는 색깔 같은 거 없어요. 아무 거나 주세요. 좋아하는 음식 같은 거 없어요. 아무 거나 있는 거 남는 거 먹을게요. 저는 남은 찬밥 처리나 돕는 깍두기 같은 존재니까 신경 쓰지 말고 부담 갖지 말고 그렇게 편하게 호구삼아 몸종처럼 부리시면 돼요.
그렇게 철저히 훈련된 엄마가 나에게 물려준 삶의 태도. 결혼 후 만난 시댁 식구들이 내게 바라는 삶의 태도. 아버지들은 여자들이 가부장 사회가 정해주는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 같으면 불화살을 쏠 준비가 된 수문장들 같았다.
나는 그렇게 살 수 없었다. 나의 내면은 그런 사고방식, 그런 삶의 태도를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쉽게 그 문화를 사고방식을 떠날 수 있을 줄 알았다. 떠나고 보니, 내가 떠난 건 떠난 것이 아니었다. 나 자신이 둘로 갈라지는 고통이 시작된 것이었다. 내 이성적 지향과, 본능적 습관이 따로 노는 고통이 시작되었다. 아직도 어린 시절 형성되고 굳어진 내 의식구조의 많은 부분이 지배하고 활약하고 있는 것이다.
네 입은 쓰레기통이 아니야.
내 입을 쓰레기통 취급하다 위장병이 심해진 나에게 남편이 보다 못해 한 말이었다. 먹고 싶은 것을 먹어야 할 만큼 적당히 먹기. 나는 그런 기본적인 것조차도 신경 써 노력하고 연습해야 할 수 있다. 조금만 방관하면 나는 자동 프로그램된 로봇 쓰레기통처럼 식구들이 먹다 남긴 것들을 다 쓰레받아 내 위장에 쑤셔 넣는 행동으로 돌아간다.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은 다 그렇게 나의 습관과 반대로 해야 한다. 글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길을 잃는다. 내 마음을 글로 드러내는 일이 순간순간 낯설어진다. 나를 아무리 밖으로 초대해 내고, 나를 위하여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하여 글을 쓰자고 밖을 향해 목소리를 내자고 마음을 다잡아도, 수치심이 쉽게 발동하는 나의 사고 습관은 나를 다시 안으로 잡아끌어 가두고, 숨기고, 문을 걸어 잠그려 한다.
나는 세상과 단절하고 자물쇠를 채우려는 그 고집스러운 겁쟁이의 손아귀 힘을 이겨내기 위해 종종 씨름을 해야 한다. 나는 근육을 키워 그 씨름을 싸워 이겨내야 한다고 느낀다. 나는 밖으로 향하는 출구를 만들어 내야만 하고, 열어낸 소통 창구를 유지시켜야만 한다. 그것이 나의 나아갈 길이고 사명임을, 내 인생을 의미 있게 할 길임을 안다.
네 마음은 쓰레기통이 아니야
가만히 나에게 말을 건네 본다. 내 마음에 어떤 말 어떤 생각이 들어가도 상관없는 것처럼, 어떤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상관없는 것처럼, 친절하고 마음이 넓고 여유가 아량이 있는 것처럼 태도를 취해왔다. 먹고 싶은 것을 먹어야 할 만큼 먹기. 이것을 마음에 적용해 본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 내가 듣고 싶은 것. 내가 보고 싶은 것. 내가 배우고 싶은 것. 그 모든 것을 하고 싶은 만큼, 유익할 만큼만 하기. 나를 몰아붙이고 강요하지 않기. 나를 필요 이상으로 소모시키지 않기.
문을 살짝 열고, 뜨겁고 후덥지근한 여름 공기처럼 내면에 고여있던 감정을 뿜어내 본다. 마음에 시원한 바람 한줄기가 들어온다.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방법, 나를 건강하게 하고 인생을 의미 있게 하는 모든 일이 나 자신의 본성을 거슬러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긴 해도. 중요한 건 내가 본성을 거스를 힘이 있고, 나를 거슬러 본 경험이 풍부하다는 사실이다. 나는 거슬러 거슬러 살아가는 사람이다. 거슬러 거슬러 살아가야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기 위해, 남은 찬밥이나 처리하려는 본성을 거슬러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 '심봤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내가 거슬러 살아가는 모습을 반드시 기록하려 한다. 그래서 나는 때로 넘어지고 주춤하고 머뭇거리더라도, 언제나 다시 일어서서 쓸 것이다. 언제든지 바닥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날 밀어 쓰러뜨려 봐. 난 언제나 더 강해져 일어설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