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나 같은 괜찮은 사람이 누구나 경멸할만한 못된 부자를 죽여 그 돈으로 이 세상에 좋은 일을 한다면?
이런 생각이 스스로에게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 도스토예프스키 책을 즐겨 읽던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다. 가난한 사람을 괴롭히는 못된 부자가 죽고, 더 많은 사람이 편해지고 행복해지는 일이라면, 꽤 정의로운 결론이 아닌가 내심 생각했을 것이다. 가능한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져야 한다는 공리주의, 다 같이 공평하게 나누자는 공산주의에 강한 매력을 느꼈던 기억, 신창원이라는 의적을 향해 응원의 마음을 품었던 기억이 있는 걸로 봐서 나는 못된 부자들이라는 막연한 대상에 대해 굉장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모두가 똑같이 누리지 않는, 불평등한 사회에 대해 나는 불같이 끓어오르는 마음을 가진 <죄와 벌> 책 속의 주인공 같은 젊은이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살인을 저지른 후 주인공의 다음 행보가 너무나 답답했다. 자신이 계획했던 일을 해놓고 그렇게까지 사람이 망가져 가는 이유를 가늠할 수 없었다. 왜 처음에 뜻했던 대로 그 돈으로 멋진 일을 하며 잘 살아가지 않는 거지? 자신 있게 좋은 일을 계획하고 행하지 못하는 거지? 왜 자책하다가 감옥까지 가는 거지? 정말 이상하고 찌질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주인공 이름들이 길어서 읽기도 너무 힘든데, 왜 이런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전 세계적으로 대작가로 인정받는지, 주변 사람들 모두가 읽어보라고 권하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미안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를 내가 좋아하는 작가 리스트에 결코 끼워 넣어 줄 수가 없었다. 멋진 영웅도 기상천외한 서사도 없이, 힘이 쭉 빠지는 비참한 비극으로 낼름 미끄러져버리는 B급 드라마 같은 이야기로 속 시끄럽고 머리만 아프게 하는 작가의 글은 도무지 쾌적하고 시원한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초인 사상과 사람의 본질, 사람에게 필요한 가치를 꿰뚫어 낸 작가
이때, 1860년대 유행하던 초인 사상은 니체의 초인 사상이 아니라 나폴레옹 3세에게서 나온 초인 사상으로, 사람의 종류가 초인과 평범한 사람으로 나누어지며, 초인은 대의를 위해 범인들을 어떻게 다루고 어떤 짓을 해도 죄가 되지 않고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식의 사상으로 당시 엄청난 논란거리였다고 전해진다.
'내가 초인이라면...?'
그런 생각은 돈 때문에 고통받는 현실에 짓눌려 학교를 쉬어야 했고, 돈 때문에 나이 많은 사람에게 팔려가듯 시집가는 누이를 보는 것이 마음 아픈 가난한 청년에게 획기적인 '돌파구'로 다가왔다.
자신이 이 세상을 심판하고 좋은 방향으로 정리해 내는 인신, 초인의 역할을 담당한다면, 그는 가난에 허덕이는 자신과 가족의 삶을 구해내고 동시에 이 세상을 위한 정의도 멋지게 실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저지르는 살인은 범인이 저지르는 극악무도한 죄가 아니라, 역사의 영웅들이 내 조국의 세력을 넓히고 많은 사람에게 안전한 삶의 터전을 보장하기 위해 저지른 전쟁과 같은 필요악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일이 될 수 있다. 초인이 되는 일은 그에게 모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정의로운 이념과 이상을 이루는 멋진 돌파구가 될 것이었다. 빨간 한복을 입고 제사만 지내면 조상도 내 인생도 다 편안해진다는 '도를 아십니까' 보다 10 배쯤 더 설득력이 있는 한방의 해결법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그러나 초인이란 건 잠시 마음을 혹하고 지나간 허상일 뿐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죄를 저지르는 그 순간, 내면이 죄의식에 잠식되어 버릴 수밖에 없는 범인에 불과한 주인공. 그냥 돈을 향한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몹쓸 짓을 저지른 가난에 몸부림치던 젊은 범죄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
주인공이 살인을 저지른 후 왜 더 힘들어했는지를 이제는 충분히 이해한다. 가난이라는 감옥보다 더 숨을 옥죄는 더 답답하고 견디기 힘든 감옥은 죄의식과 그 죄의식이 불러오는 내면의 사망, 그리고 자기혐오라는 감옥이라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그 감옥을 깨고 나오지 않고는 결코 인간답게 주변과 관계를 맺으며 살 수도 자유로워질 수 없으니, 그는 결국 자수하고 시베리아 유배를 감수했다는 걸 이젠 알겠다.
왜 스스로 초인의 길을 걷지 못하고, 평범한 범인의 심리에 휘둘려 부자에게 훔쳐낸 금품을 땅에 묻어 버리고 결국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시베리아라는 벌을 택하는 거지 생각했었던 건 사람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 나의 어리석고 어린 생각이었다. 죄에는 벌이 따를 뿐. 사람이 사람을 죽이면, 그 행동의 결과 내면의 감옥에 갇히는 벌을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는 그 무서운 내면의 벌을 끝내기 위해 자신의 죄를 사회에 알리고 사회가 요구하는 대가를 치르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그런 후에야 그는 다시 자유를 되찾고, 세상과 다시 소통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며 인간다운 삶을 회복해 나갈 수 있었다.
죄와 벌은, 사람을 세상을 자신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이미 주어진 것들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함부로 내던진 무모한 청년이 뼈아픈 대가를 치르고 사람에게 필요한 진짜 가치들을 - 자유, 사랑, 소통 -를 깨달아 가는 성장 이야기라는 큰 그림을 이제야 본다. 죄와 벌은, 죄를 계획하고 저지르고 합리화하는데 능숙한 인간의 본성, 그러나 죄를 지은 후 인간의 내면에 일어나는 형벌로 더 이상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 인간의 운명, 그런 인생의 형편을 상기시키고 거기서 스스로를 구해나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너무나 중요한 소설이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