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꿈꾸는 미래와 엄마가 꿈꾸는 혁명
집안일 잘하는 아들
재택근무하는 엄마 아빠가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하는 환경과, 홈스쿨을 하니 남아도는 아이들의 시간이 어울려 저절로 고용주와 고용인 느낌이 나는 관계가 형성되었다. 점심때쯤 공부가 끝나면, 아이들은 집안일 리스트를 하나하나 책임지고 해내야 한다. 첫째는 주로 주방을 맡아 설거지를 하고, 설거지가 끝나면 사용했던 수세미를 소독하고 말리고, 개수대 주변 물기까지 깨끗이 닦아야 한다. 둘째는 화장실을 맡아 수시로 화장실 물기를 잘 닦고, 젖은 수건은 교체하고, 화장실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밥 먹는 시간이 되면, 아이들이 수저와 접시를 갖다 놓고 밥을 차려야 하고, 밥 먹고 나면 밥 먹은 자리도 닦고 청소해야 한다. 첫째는 부엌일이 끝나면, 아래층 위층 베큠을 돌리기 시작한다. 둘째는 놀고 난 자리 책 읽은 자리 뒷정리와 함께 거실 바닥 닦는 일을 도맡아 해야 한다. 그들의 밥값 집값 옷값 학비를 제공하는 부모에 대한 마땅한 도리이자, 가족 구성원 모두가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생활 기술이라고 설득된 아이들은, 군말 없이 훈련 과정을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책임지고 해낸다.
나와 남편은 집안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것도 사람에게 중요한 근육이며, 잘 청소 정리하는 근육이 잘 발달하면, 자신의 공간을 깨끗이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일의 제대로 된 시작이 자신의 마음과 주변부터 깨끗하고 쾌적하게 정리하는 일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부모가 바쁘거나, 아픈 일이 있어도, 집안이 돌아갈 수 있게 아이들을 훈련시켜 놓고 싶기도 했고, 온 가족이 한 팀이 되어 서로를 도우며 위급한 상황에 처한 가족 구성원을 위해 때론 희생의 뒷바라지를 하는 일도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싶었다.
나는 누가 뭐래도 이 집안일이 서울대 하바드 가는 비결보다 중요하게 생각되어, 필사적으로 가르친다. 축구팀 야구팀 활동, 피아노 바이올린 같은 원하지 않은 운동이나 음악 레슨은 억지로 시키지 않지만, 요리 학교는 끈질기게 설득해서라도 보낼 생각이다. 자신이 먹을 음식을 타인에게만 의존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일을 할 줄 모르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 엄마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은 혁명가. 이것은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는 내 안의 또 다른 정체성이다. 청소년 시절 혁명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 마음이 불같이 타올랐으며, 혁명가들의 전기를 읽었을 때, 그들이 환생한 것이 나인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나는 그들을 백 프로 이해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에서도 독립과 인권을 위한 '옳은' 혁명을 이루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옳은' 방법을 고수하고 지켜냈던 간디와 마틴 루터 킹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한없이 뜨거워진다.
나는 다 바꾸고 싶다. 사람이 스스로 자처한 일이 아닌 조건들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모욕과 절망감을 주고 자기 비하를 일으키는 모든 악한 것, 그중에서도 특히, 누군가는 차별을 당해야 하고 각종 폭력에 짓눌려야 하는 그런 문화, 힘없는 누군가는 부당한 일을 당해도 부담에 짓눌려도 참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문화가 고수되는 것을 바꾸고 싶다. 누군가 일방적으로 항상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하는 자리로 쉽게 내몰리는 문화, 밥을 얻어먹기 위해 아이를 키우기 위해 여자에게 삶을 의존해야 하는 삶의 주도권을 자신이 아닌 외부에 빼앗겨 버리고 마는 남자들이 처한 현실, 그런 남자들의 필요에 인생을 휘둘리며 생계를 의존함으로써 여자들이 처하게 되는 비굴한 현실, 나보다 서열이 높다는 이유로 함부로 폭력과 모욕을 일삼는 문화. 직업에 귀천을 가리는 문화. 각종 갑질 문화. 한쪽은 높임말을, 한쪽은 반말하는 문화를 바꾸고 싶다. 일방적으로 아래에서 위로만 향하는 존중과 배려의 문화. 친절을 약함으로 간주하는 문화, 약자를 함부로 대하는 문화를 바꾸고 싶다.
그 모든 악한 문화의 중심에 수직적인 마인드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더 우월하고 높고 나이 많으면, 나보다 못하고 낮고 어린 사람의 마음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사고방식. 밟아 길들여 시종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함부로 신체 폭력이나 언어폭력을 휘두르고도 스스로를 정당화시키는 마인드. 돈이면 다 된다는 물질주의 마인드에 사람의 귀천에 서열이 있다는 계급 서열주의까지 가세하여 붙으니, 수직적인 마인드가 누구나 가져도 되는 보편적인 마인드 인양 문화 속에 만연하다.
혁명은 바깥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시작되고, 내 삶 속에서부터 먼저 실천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수직적인 마인드를 내 마음 안에, 그리고 나아가 내 가정 안에 용납하지 않기로 했다. 각종 서열주의, 계급주의를 버리기로 했다. 아무것도 사람보다 더 우선하는 가치는 없기로 했다. 돈이 너무 중요한 물질주의도 깨끗이 걷어내기로 했다. 서열을 정하겠다고 날뛰는 경쟁주의는 땅에 묻어 버렸다. 사람은 다 평등하게 소중하기로 했다.
모두 평등하되, 약자를 보호하고 배려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기로 했다. 만약 순서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어른부터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배고픔을 참기 힘든 가장 어린아이부터 밥을 먹고, 뭐든 가장 약하고 어린 순서대로 하기로 했다. 직업에 귀천이 없기로 했고, 세상이 정하는 랭킹, 순위 같은 것들을 무시하기로 했다. 학벌을 높이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나, 세계적인 대기업에 입사해야 한다는 생각 같은 건 우리 가족 어느 누구의 마음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일에 있어서도 남보다 잘하는 1등이 목표가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최고 최선, 끝까지 해내기, 끊임없이 발전하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모두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가정 문화
사람은 언제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지 모른다. 오늘은 회사 다니는 사람이라도, 내일은 집에서 가족을 돌봐야 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경력이 단절된 사람이라도, 혁신적인 기업가로 재탄생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는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책임지고 여러 가지 역할을 다 해야 할 수도 있다. 성공적일 때도 있지만, 때론 하는 일이 잘 안될 수도 있다.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실패를 할 수도 있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자연재해나 역병, 사고에 발이 묶여 나아가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사람을 잘못 만나 속임을 당할 수도 있다.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일어나 추스르고 잘 살아가기 위해 여러 가지 근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집안일하는 근육도 필요하고, 바깥일 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근육도 필요하다. 또한, 자신의 내면을 돌보고 사랑하는 근육, 책을 읽고 배우고 성장하는 근육, 사람과 건강한 관계를 맺어가는 근육, 자녀를 정성으로 양육하고 교육하는 근육,... 수많은 근육이 골고루 균형 있게 성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근육을 고루 갖춘 회복탄력성 강한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게 돕는 것이 내 아들들을 위한 교육 목표다. 그래서 공부하는 시간만큼 집안일도 하게 하고, 친구들과 뛰어놀다가 갈등을 겪고 관계를 고민하게도 하고, 돈과 비지니스에 대해서도 가르치고, 아이들의 관심 분야인 게임 영상 웹툰 만들기도 실컷 해보게 한다.
해보고 싶은 일도 실컷 하지만,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어떤 일이 생겨도, 가족이라는 팀이 등 뒤에 항상 든든히 둘러싸 지지하며 응원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해 준다. 가족을 만든다는 것은 자신보다 작고 힘이 없는 아이들을 오래 참아주는 사랑으로 잘 돌보고 성장시키는 일이며, 그 일은 동시에 부모가 된 미성숙한 사람들을 끊임없이 진짜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과정이라는 것도 말해준다.
엄마 아빠로부터 받은 무조건적인 사랑에서 얻은 힘을 잘 모아두었다가 나중에 자신의 가족을 사랑하는 데 쓰면 된다는 것도 가르쳐 준다. 부모에게 되갚아 주어야 한다는 ‘효’ 사상 따위는 아이들을 낳기 전에 쓰레기 통에 버리고 시작했다. 댓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 외엔 취급하지 않는다.
이 모든 배움과 훈련이 언젠가 자신의 집을 마련하고, 자신이 이룬 가족과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도록 서로 도우며 잘 살아가기 위한 준비임을 누누이 말해준다. 스스로를 동등한 아내의 남편, 자녀 양육에 힘쓰는 자상한 아버지, 능력 있는 일꾼, 똑 부러지는 살림꾼으로 키우는 준비를 아들들은 결코 마다하지 않고 오늘도 성실히 근육을 키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