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을 바꿀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함부로 하는 말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타인의 외모에 대해 성격에 대해 지능에 대해, 타고나서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너는 나중에 커서 성형해야 되겠다, ' '쟤는 게임에 중독됐네 중독됐어, ' '너는 아빠 닮아 머리가 나쁜 거야, '... 정말 별 일 아니라는 듯, 자신의 말에 발끈하면 예민하다고 몰아붙이는 무기를 쓰면서 떠오르는 대로 말을 뱉는다.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을 상대할 때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고,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것에 대해서 양심도 전혀 찔리지 않는 눈치다. 내 입 가지고 솔직하게 말하는데 뭐가 문제냐는 태도다.
엄마에게 여쭤본 적이 있다. 엄마 또래 어른들은 왜 그렇게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들을 함부로 하시냐고 물었다. 엄마는 다들 못 배워서 그렇다고 말씀하셨다. 전쟁 전후, 아이들의 마음을 생각할 겨를 없는 어른들 - 지금은 대다수 돌아가신 분들 -이 함부로 말을 했고, 그런 말들을 듣고 자란 아이들이 서로에게 함부로 말을 하기 시작했고, 아무도 어떤 말은 사람에게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 걸 가르쳐 준 사람이 없었기에, 특히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은 무시하고 함부로 해도 되는 걸로 배웠기에, 조심성 없이 배려 없이 떠오르는 대로 말을 하는 게 버릇이 되어 버렸다고 말씀해 주셨다.
서로 존중하며 서로 고운 말하는 사회를 꿈꾸며
나이를 먹고 보니, 나이가 어리건 많건, 그건 상대적인 수 개념일 뿐이라는 것을 알겠다. 인간은 모두가 동등하게 소중하고 귀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 어린아이라고 두뇌 발달이 미성숙하다고 함부로 취급받고 무시당할 이유가 없다. 모두가 고운 말을 들으며 존중받으며 살아갈 자격이 있다.
누군가 물을지 모른다. 악질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도 존중해야 하느냐고. 일이 일어난 결과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를 따지고 들어가야 하는 문제다.
이젠, 사람 존중하는 일에 있어서 좀 평등해지면 안 될까. 나이, 성별, 인종, 학벌, 직업, 계급 따지지 말고 기본 인격 존중이라는 개념이 좀 자리 잡히면 안 될까. 성폭력에 대한 미투 운동이 터져 나오고 모두가 정확하게 무엇이 성희롱이고 성추행이고 성폭력인지 깨닫고 개념이 확립되고 법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처럼, 언어폭력에 대해서도 무엇이 사람을 짓밟고 상처 주는 말인지, 모두가 더 세세히 잘 알게 되고 질서가 잡히고 말을 조심하는 사회가 세워져 가면 좋겠다.
반말 높임말이 사라졌으면
나는 한국어에 반말과 높임말이 따로 있는 것이 싫다. 일방적으로 한쪽은 존대를 한쪽은 반말을 하는 관계들이 싫다. 그냥 종결어미가 좀 달라지는 정도가 아니다. 무시하고 하대하고 함부로 하는 말들을 일방적으로 한쪽에서만 쏟아내도 된다고 허용하는 수직관계, 한쪽이 상대를 억압하고 통제하고 명령을 쉽게 하기에 편리한 상하 복종 관계가 만들어져 버린다.
물론 반말과 높임말에 상관없이 상대에 대한 존중과 따뜻한 배려를 항상 마음에 품고 말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고매한 인격자'라고 부르며 칭송하고 존경한다. 그런 사람들과는 같이 있고 싶고, 그런 사람들을 찾아낸 것이 진흙밭에서 보석을 찾아낸 것처럼 기쁘다.
하지만 대부분은 반말이 허용하는 치의 불손하고 싸늘한 칼날 같은 마음을 휘두르고 사는데 능숙하다. 사회가 허용하는 만큼 최대한 힘을 휘두르고 사는 것이 더 이익인 것 같이 느껴진다. 그것을 문제시하는 사람들에겐 보편적 기준이라는 준비된 검을 휘두르면 된다. 보편적 문화를 견디지 못하는 네가 예민하고 유난스러운 거라고, 성격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면 된다.
우리의 마음,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이런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마음을 함부로 대해도 되는 날카로운 칼끝을 휘두르는 위험한 수직 문화를 계속 이어가도 괜찮은 것일까? 갑질 하는 사람들보다 위험한 것이 갑질이 쉽게 튀어나올 수 있게 허용해주는 문화임을, 모두가 함께 정확히 꿰뚫어 보았으면 좋겠다. 수차례 칼을 맞고도 예민하고 모난 성격이 되지 않기 위해 견뎌야 하는 사회를 언제까지 이어갈 것인지, 언제까지 칼이 되어 휘두르는 말들을 우리 삶 안에 만연하게 내버려 둘 것인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결국, 칼을 휘두르도록 진두지휘하는 것은 마음이다. 말은 마음을 담은 도구일 뿐이다. 마음이 바뀌면 도구는 저절로 바뀐다. 전쟁이 일어난지 70년이 지났고, 굶을 걱정 없이 우리에겐 마음을 돌아볼 여유도 있는데, 이제 정말 우리 마음을 바꿀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리하여 우리가 하는 말이 바뀔 때가 되고도 남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