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위한 감정 코칭 4
어른을 위한 감정 코칭
어른을 상대로 하는 감정 코칭은 쉽지 않다. 코칭을 하는데 가장 필요한 바탕은 '신뢰'인데, 어른의 감정 정글 안에 사는 내면 자아는 '속고 당해 본 경험'이 너무 많아 함부로 누군가를 신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감정코칭이 쉽다. 어릴수록 쉽고, 부모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을수록 쉽다. 두뇌 발달이 아직 다 이루어지지 않아, 감정의 홍수에 빠지기 쉬운 아이들은, 부모가 정확한 언어로 자신의 감정을 짚어주고 설명해 주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해결되는 듯한 시원함을 느낀다. '엄마가, 아빠가 내 마음을 정확히 알고 있구나, ' '엄마 아빠가 내 마음을 설명하는 언어를 가지고 계시는구나, ' 신뢰와 공감과 안도의 기쁨이 터져 나와 아이는 금방 웃으며 평정심을 되찾는다.
어른들을 위한 감정 코칭은 이렇게 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것처럼 단순할 수 없다. 이미 뇌가 다 발달하고, 자신을 설명할 언어를 가질 만큼 가졌다고 착각하기 쉬운 어른은, 자신이 스스로 할 수 없는 사람, 문제처럼 취급받는 것에 자존심도 상하고, 더 이상 어찌해볼 도리 없이 인생이 망했다는 절망감도 빨리 든다. 나는 정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민폐나 끼치는 모자란 인간이라는 혐오감은 이미 소리 소문 없이 들어와 마음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거슬리는 모든 것에 시비를 걸고 짜증을 내고 있다.
늑대의 훈련
솔직히 나는 성질이 더러웠다. 밖에서는 온순하고 온화하다는 평을 들었지만, 만만한 가족 앞에서는 진상도 이런 진상이 없는 개진상이었다. 동생, 엄마, 그리고 남편, 내 아들들은 내 성질이 얼마나 더러울 수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상대의 감정 따위는 배려하지 않았고, 상대가 내 마음에 들게 행동하는지 아닌지만 따졌다. 뭐든 내 뜻대로 진행되기를 원하는 강박이 있었다. 계획대로 일이 되지 않고, 마음에 거슬리면 짜증을 부렸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 안의 수치심이나 결핍감을 건드리면 내 안의 무언가가 격렬하게 반응하는 것이었다. 더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내면과 협력 관계를 맺지 못한 채 스스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잃고 살아가는 사람은 이렇게 성질이 욱하고 더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늑대는 성질을 부리고 싶은 혈기로 가득한 내 마음 한가운데로 훌쩍 들어와 앞발로 내 심장을 누르고 나를 제압했다.
짜증 부리고 싶은 혈기를 참아.
늑대가 형형한 눈으로 내 눈을 들여다보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어린아이가 생떼를 쓰는 단계에서 감정코칭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그대로 자라나서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사고 습관, 행동 습관 훈육이 부족한 것이었다. 특히, 내 마음속에 나만 상처 입은 피해자라는 피해 의식과 자기 연민과 자기혐오를 동시에 품고 있는 비틀린 정서가 자꾸만 내면을 흔들어 주변을 향해 분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런저런 육아서를 읽고 아이들에게 적용해 보겠다고 이런 방법 저런 방법으로 아이들을 훈육하고 있었지만, 진작 훈육이 덜 되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눈을 뜨고 보니, 훈육이 제대로 안 된 영역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늑대와 눈을 마주치고부터 나는 겸손해졌다. 나 자신의 모자란 부분들을 정확히 직시하면서, 타인의 행동에 대해 왈가왈부하려는 마음 자체가 깡그리 사라졌다. 심지어 아이들도 나보다 나은 것 같아, 더 이상은 잔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너희는 참 잘하는구나, 엄마보다 낫다, 칭찬해줄 것 밖에 없었다. 야단칠 거리가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이런 성질을 그동안 다 받아주고 견뎌준, 동생에게도 엄마에게도 남편에게도 나는 그간의 무례를 사과하고 평생 미안해하며 잘해줄 일만 남아 있었다.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다. 늑대의 힘이었다. 주변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180도 뒤집어 놓았다.
늑대는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붙어 서서, 차분하고 끈질기게 나를 훈육시켰다. 잔소리 늘어놓고 짜증 부리고 싶을 때, 울분이 터져 나오려 할 때 꾹 참으라고 했다. 꾹 참아 보았다. 1분이 지나가고 10분이 지나갔다. 1시간이 지나가고, 하루가 지나갔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괜찮았다. 짜증 부리고 싶은 혈기를 참아서 내가 속이 터져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되거나 속에 울화가 차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성질부리고 싶은 충동은 그냥 지나가는 바람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 지나가니 아무 일도 없었고, 잘 참았다고 생각되었다. 잘 참아서 일이 더 잘 해결되는 것을 몇 번 경험하니, 나는 그런 식으로 감정을 과하게 표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몸으로 깨닫게 되었고, 그런 감정적 충동에 휘둘려 성급하게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선택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다루기 쉽지 않은 청소년이 된 아이들이 성질을 부린다거나,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들 때에도, 늑대에게 배운 것을 설명해 주고 도와줄 수 있었다. 내가 정말 잘 배우고 잘 훈육받고 변하니까 아이들은 그대로 따라올 뿐이었다. 성질날 때, 아이들에게 가끔 소리 지르곤 했던 남편도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점점 깨닫는다는 고백을 했다. 늑대는 내 심장만 제압한 것이 아니라, 그 강력한 에너지를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발산하고 있었다.
늑대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감정을 절제하여, 길게 반복하지 않고, 상대를 비난하지 않고, 한 마디로 온화하게 압축해서 이야기하고 대화를 깔끔하게 끝내는 법을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짧고 가볍게 말해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내 한 마디에 모든 것을 알아듣고 이해해 주었다. 간혹 상대가 나의 한 마디에 기분이 상하고 비딱한 반응을 보여도 상대의 감정에 말려들지 않고 나만 차분하면 문제는 어렵지 않게 해결되었다. 이렇게 소통하는 거구나. 나는 가족과 대화할 때 감정의 홍수에 빠져 헤매지 않고, 차분히 소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다. 누구와의 대화에서도 나는 차분하게 평정심을 지킬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어떤 불쾌한 관계에서도 나를 지키고 상대의 패턴에 말려들지 않을, 감정의 파도를 부드럽게 탈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나의 늑대는 나를 집요하게 훈련시키면서도, 이 고된 훈련 끝에 어떤 아름다운 일이 벌어질 것인지 심장에 희망을 새겨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훈련은 내가 변할 거란 걸 믿지 않는 동안은 자신없고 어려운 것이었지만, 내가 해내고 발전할 것이라고 믿는 한은 하나도 어렵지 않았고 가볍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신나고 설레고 당당한 자신감이 생기는 경험이었다. 그것은 좋은 가정 현명한 부모 아래서 제대로 잘 양육받고 완전한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나의 늑대가 있어서 언제나 든든하다. 정글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나를 지키고, 항상 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해주고, 내가 부모에게 양육을 제대로 못 받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훈육 훈련시켜주고 채워준다. 나는 언제나 기꺼이 배우고 훈련받을 수 있다.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다.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는 나의 늑대의 마음을, 마음먹은 것을 해낼 수 있는 그의 능력을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