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위한 감정 코칭 5
감정의 소용돌이
잠잠히 기다리면 바람처럼 사라지는 감정도 있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고 쌓이는 감정, 불쑥불쑥 시시때때로 올라오는 감정도 있다. 그냥 넘길 수 없는 그런 감정이 무엇인지 나는 나의 늑대에게 물었다. 그는 저 하늘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딜레마에 빠진 거야.
왜 딜레마인 걸까, 감정과 딜레마가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나는 생각해 보았다.
한참 생각을 해 보니 그 말이 맞았다. 한 예로, 아버지의 기일이 되면 떠오르는 나의 감정은, 사랑할 줄 모르는데 사랑해야 했던,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죄책감의 딜레마가 맞았다. 깨끗이 잊어야 한다는 마음과 잊지 말고 그의 명복을 빌며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마음이 아직 결정되지 않아 거듭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었다.
떠나야 하는데 떠날 수 없는 딜레마, 머물러야 하는데 머무르기 힘든 딜레마, 사랑해야 하는데 사랑할 수 없는 딜레마, 완벽해야 하는데 완벽하지 않은 딜레마... 딜레마는 사라지지 않고 내 마음에 감정의 회오리를 일으키며 끝없이 머물러 있는다.
달밤에 마음을 쏟다
나의 늑대는 달이 둥그렇게 떠오르는 밤에 혼자 있을 수 있는 장소로 가서 울부짖는다고 했다. 내면을 토하고 모든 것을 꺼내보는 그만의 의식이라고 했다. 모든 회오리 감정을 토해내고 잠잠해지면, 결국 그 회오리를 일으킨 '핵', 문제의 본질, 딜레마가 떠오른다고 했다.
나의 늑대의 말을 듣고 나는 무엇이 문제인지를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내 안의 딜레마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은,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고 기피해 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내 곁에 누군가를 두려고 하고, 가득 차 올라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 위험하게 넘실거리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쏟아놓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 혼자서 너의 감정과 마주해야만 해
늑대가 나를 설득했다. 혼자 있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내면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가까이서 지키고 있을 테니, 불안해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나는 늑대의 말을 믿고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찾았다. 새벽 시간, 나 혼자 문을 닫고 들어가면 웬만해선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는 나만의 골방을 찾아냈다. 절대 고요의 순간, 주변 공기가 나를 사랑하고 지키려는 누군가의 열렬한 기도로 따뜻해지는 듯 느껴졌다. 덕분에 낯선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나의 감정에만 집중하고 앉아 있노라니, 내 뱃속 가장 밑바닥 감정이랄까, 내 삶의 기저에 항상 깔려있는 근본 감정 같은 것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훅 북받친 감정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밖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눈물과 콧물과 엉엉 울음으로 터져 나왔다.
죽죽 연결되어 끊임없이 뽑아져 나오는 클리넥스 휴지처럼, 마음이 죽죽 뽑아져 나왔다. 몇십 년 체했다가 쏟아내는 토사물은 다 빠져나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저 바닥의 감정까지 게워내는 동안, 처음 겪는 오랜 감정 구토에 몸이 격렬하게 뒤틀며 바닥을 뒹굴었다.
모든 것을 뽑을 만큼 뽑아내고 났을 때, 나는 말할 수 없이 해맑은 고요에 빠져들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 있는 나의 뇌리에 가장 문제의 핵심인 딜레마가 떠올랐다. 늑대의 말이 옳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딜레마를 다루는 늑대의 방법
이 딜레마를 어떻게 다루고 해결하는지 나는 나의 늑대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주변에서 가장 현명한 존재에게 그런 것을 묻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선택을 해야지.
나의 딜레마는 어떤 쪽을 선택해도 완전하지 않은 선택인 상황이었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빈 구멍이 생기기 때문에 애초에 해결이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딜레마가 생겨났고, 그것에 마음이 체해버렸던 것이었다. 늑대는, 그냥 보다 마음이 편한 한쪽을 선택해 버리고, 선택의 결과를 감수하면서, 뒤돌아 보지 말고 후회하지 말고 선택한 길이 최선이었다 믿고 쭉 걸어가야 한다고 조언해 주었다.
정말 도무지 선택을 할 수 없을 땐, 어떻게 하냐는 질문이 절로 튀어나왔다.
그것에 관해 아예 생각하지 않기를 선택해.
도무지 선택을 할 수 없는 딜레마라면, 어차피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내가 선택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게 확실하다면, 아무것도 선택하지 말고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그냥 어제와 같은 일상을 살면서, 모두 우주의 섭리에 맡겨버리라고 했다. 나의 일상 안에서 하나하나 옳은 것을 차근차근 쌓아가는 일에 몰두하라고 했다. 언젠가 모든 것이 잘 해결될 거라는 비전을 믿고 어두운 터널을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걸어내라고 했다.
나의 딜레마
나의 마음을 뒤흔드는 큰 딜레마 중의 하나는 '미국에서 계속 살아갈까 한국으로 돌아갈까'다. 미국에서 계속 살아가기를 선택하는 것은 내 삶에 빈 구멍들을 그대로 방치하는 일이고, 한국으로 돌아갈 선택을 하는 것은 너무나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50대 50이고 어떤 길도 자신이 없다. 이젠 가족까지 있어서, 더욱 어려운 결정이 되어 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결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내가 한국에 사는지 미국에 사는지 너무 의식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하루하루 성실히 나의 할 일을 하며, 내가 쌓아가야 할 것들을 단계 단계 쌓아가며 정성껏 살아가기로 한다. 내가 언젠가 한국에 돌아가 살아야 할 우주적 이유가 있다면, 그렇게 움직여 갈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여기 머물러서 할 일이 있다면 우주는 내가 여기에 계속 잘 머물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해도 어디에 살아도 내가 잘 지내며 나의 사명을 다 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이 내 삶을 지키고 도울 것이다.
일상적으로 나를 괴롭히는 또 다른 딜레마 하나는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다가갈까 말까'다.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은 두렵고, 사람에게 다가가지 않는 것은 외롭다. 사람에게 다가가면 즐거워지기도 하지만 괴로워지기도 한다. 사람에게 다가가지 않으면 자유롭고 마음이 편하지만 외롭고 쓸쓸한 기분도 함께 온다. 이 생각이 끊임없이 맴도는 이유는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항상 50대 50, 어떤 선택도 자신이 없다.
이것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나의 주변에 사람이 없지 않다. 가족들도 있고, 친구들도 있고, 소통하고 교류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너무 고립되고 외로운 건 아닐까, 더 사람들을 찾고 만나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 자체를 버리기로 한다. 내게 더 사람이 필요하다면, 내가 꼭 만나야 할 좋은 사람들이 내게로 올 거라 믿기로 한다. 그렇게 일이 되도록 온 우주가 도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기일 즈음마다 나를 힘들게 하는 딜레마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의 문제를 생각해 본다. 내가 마음 써 명복을 빌어주지 않으면, 아버지가 좋은 데로 못 가실 것만 같은 그런 책임감을 내내 품고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아버지의 불운한 삶에 대한 책임을 아직도 내가 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아 회한이 가득할 아버지의 영혼을 위로할 방법을 내가 찾아야만 하는 것처럼 느껴져, 죄책감에 눌린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졌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것에 대해 나는 한 가지 선택을 하기로 한다. 기일 날 나는 아빠가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 하나를 듣기로 결심한다. 음악을 듣는 몇 분간의 시간 동안 아빠의 영혼이 충분히 위로받을 거라 믿기로 한다. 아버지의 영혼이 좋은 곳에 계시기를 기도하고 바란 것으로, 부정과 원망이 아닌 사랑과 수용을 선택한 것으로, 그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믿기로 결심한다. 각자의 행복과 불행은 각자의 책임일 뿐이다. 내 책임이 아닌 것을 이제 내 등에서 내려놓기로 한다.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죄책감 같은 건 하얗게 씻어 버리기로 한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고 지키고, 성장시키고,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책임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