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위한 감정코칭 8
착한 사람 나쁜 사람
세상엔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다고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착한 사람도 없고 나쁜 사람도 없다. 모두가 원하는 건 사랑받고 사랑하는 일일 뿐이다. 다만, 그 방법을 모르므로 사랑을 지향하는 모습이 좀 왜곡되고 뒤틀렸을 뿐이다. 주변 환경에 나를 맞추기 위해 변형되다 보니 착한 사람, 나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드는 행동 습관이 반복되었을 뿐이다.
자꾸 때리는 가족을 사랑하려다 보니, 자신을 부인하고 모든 걸 내놓는 착한 아이가 된 것이고,
자꾸 무너지는 가족을 사랑하려다 보니, 분노하고 때리고 빼앗는 나쁜 아이가 된 것이다.
착한 이의 삶을 살지, 나쁜 이의 인생을 밟을지, 나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는 나의 감정이다. 나의 감정이란 가만히 혼자 편안하게 있을 때 내 안에서 우러나는, 사라지지 않는 근본 감정을 말한다. 나의 감정은 아주 어린 시절에 내 안에 새겨진 무엇인 것 같다. 가장 인상 깊은 어떤 사건이 최초의 큰 감정을 새기고, 우리는 그 감정이 만들어 가는 심리의 방향을 따라 모든 일을 결정하고 인생을 풀어 가는 것 같다.
가장 최초의 감정을 따라가 보기
4-5세 나이에 일어났던 기억이 생생한 몇 가지 일들을 떠올려 본다.
할머니를 비롯한 친가 식구들이 모두 우리 집으로 이사를 왔다.
어머니는 대가족 뒷바라지에 바빠졌고, 아버지는 화를 내는 일이 많아졌다.
명절만 되면, 정성이 부족하다고 온 시댁 식구들이 엄마를 타박했고.
힘들어하는 엄마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대신, 아버지는 어머니를 발로 차고 쫓아냈다.
온 가족이 그렇게 불화의 연속을 살아가는 동안, 나는 옆집에 태어난 아기를 보러 매일 놀러 갔다.
아기 엄마의 막내 동생이 아기를 보러 놀러 왔는데, 나는 그 중학생 오빠와 같이 있는 것이 좋았다.
그 오빠는 나를 밖으로 데려나가려고 했고, 나는 따라갔고, 성추행을 당했다.
애석하지만, 위 사건들이 나의 최초의 감정의 발원지다.
아들의 가정을 깨고 들어와 함부로 군림하는 '시댁 갑질'에 대한 분노
성질이 나면 사랑하는 사람도 폭력으로 학대할 수 있는, 배신하는 인간에 대한 깊은 불신
학대와 악습이 휘두르는 칼날 앞에서 속수무책 당하는 취약한 여성성에 대한 수치심
호감을 끄는 사람이라고 믿으면 안 되는, 누구나 성추행범이 될 수 있다는 의심과 긴장감
이 모든 것이 무너뜨린 내 마음의 빈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결핍감
참으로 안타깝게도, 이 끔찍하게 부정적인 감정들이 평생 나를 따라다녔던 것이다. 한 번도 이 감정에서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고, 덕분에 내 앞의 좋은 사람들을 믿어준 적이 없었고, 어떤 스승도 멘토도 믿고 따랐던 적이 없다. 한국을 떠나고, 가까웠던 인연들과 관계가 끊어진 것, 내 인생의 다음 행보 모두가, 내 안에 쌓여있는 저 감정들이 결정하고 선택해 간 것이었음을 이제 정확히 본다.
내 안에 형성된 감정 정글의 의미
이제 내 안의 감정 정글이 어떤 한 나무에서 시작되어 어떻게 무성하게 퍼져 갔던 것인지 알겠다. 충분히 깨달았다. 하지만 썩 기분 좋진 않다. 사실 기분이 무척 나빠졌다.
내 안의 모든 것을 보게 되는 것은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무척 실망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이렇게 형성된 사람이었구나. 내 안에 형성된 것들이 너무 초라하고 구리고 못나게 느껴진다.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이 내면에 기초를 다지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을 누가 사랑하고 이해해 줄 수 있을까. 나는 여기서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하고 나의 늑대에게 도움을 청한다.
너의 최초의 감정들을 나에게 맡겨. 내가 그걸로 예쁜 목걸이를 만들어 줄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늑대를 빤히 쳐다보았다.
네 감정들이 반짝반짝 아름다운 보석이 되었거든!
나의 늑대는 이제 사람들이 나에게서 아름다움을 느낄 거라고 했다. 내 안의 감정들이 그냥 단순히 부정적인 감정들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감정들을 뚫고 나와 살아내려고 성장하고 변하려고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자신과 격렬한 싸움을 싸워온 삶 속에서 깎이고 정련되어 반짝이는 보석들이 된 지 오래라는 말을 했다. 이제 그것들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목에 걸고 보여줄 시간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것들은 같은 감정의 고통을 견디고 싸우며 성장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될 거라고 했다.
나는 나의 늑대의 말을 듣고 기분이 한결 편안해졌다. 이제 숨기려고, 평범하게 잘 자란 척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는 거야? 그냥 내 안의 감정들에 관해 자유롭게 이야기해도 되는 거야? 다 보여줘도 되는 거야? 내가 아름답다는 말 믿어도 되는 거야? 정신없이 질문을 쏟아내는 나를 보며 웃고 있는 나의 늑대의 진지한 눈빛을 보니, 너무 믿을만해서 도무지 믿지 않을 수가 없다.
나의 늑대와 함께 언덕에 올라 감정의 숲 전체를 내려다보는 동안 어느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이 느껴졌다. 내 안에 새겨진 최초의 감정들과 그것들이 만들어간 감정적 선택들의 결과가 나의 감정 정글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너무 비참했었는데, 너무 절망적이고 답답했었는데,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기쁜 마음이 드는 것인지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너의 감정 정글은 조만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힐링하고 쉬어갈 수 있는 '치유의 숲'으로 개발될 거야.
내가, 내 마음이, 내 감정이, 과연 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너를 믿어. 그리고 나를 믿어. 내가 항상 곁에서 너를 지키고 지지하는 일에 최선을 다 할 거니까 너는 그냥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돼.
나 좀 부끄러울 것 같은데. 아직 결핍감이나 수치심 같은 게 그대로 들어 있는 걸.
드러내고 보여주고 나누어야 진짜 보석의 가치를 발휘하는 거지!
보석이 된 나의 감정들
보석이 된 나의 감정들을 보여주고 나눈다는 생각을 나는 곱씹고 또 곱씹어 보았다. 생각만 해도 떨리고 흥분된다. 나의 늑대의 도움으로 내 삶이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 되는 신기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나는 나의 늑대와 함께 이 새로운 삶을 신나게 달려보고 싶다. 보석이 된 나의 최초의 감정들, 이 오래 묵은 감정들이 나를 어디까지 데려갈 것인지... 나는 두려움과 걱정, 절망을 버리고 조심스레 설렘과 기대, 밝은 희망을 선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