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위한 감정 코칭 9
낙타 등을 부러뜨린 마지막 지푸라기
아랍 속담에서 유래한 영어 표현 중에 '낙타의 등뼈를 부러뜨린 마지막 지푸라기 (the last straw that broke the camel's back)'라는 말이 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한계를 뜻하는 표현이다.
나는 내 내면의 모습이 늘 이렇게 한계치에 다다른 듯 아슬아슬하게 느껴지곤 했다. 이미 감정이 차올라 있어, 지푸라기 하나만 얹어도 무너질 것 같은 그런 느낌. 새로운 지푸라기 하나에도 날카로운 촉각을 세우게 되는 그런 느낌. 더는 참아 줄 수 없는 그런 내면의 압박. 누가 조금만 더 얹어도 주저앉아 버릴 것 같은 낙타 등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의 늑대가 나에게 충고했다.
가벼워져야 해.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절대 멀리 갈 수가 없어.
늑대의 말이 맞았다. 나는 너무 무거웠다. 내 삶의 무게는 주변 사람들이 조금만 공격해도 참을 수가 없이 눈물이 터져 나오는 그런 조건 반사로 작용했다. 나는 내가 그런 유리멘탈처럼 구는 것이 싫었다. 그것이 싫은 만큼 나는 나의 늑대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했다.
늑대는 먼 옛날 바다를 누비던 뱃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은 바닷길에서 만나는 변화무쌍한 날씨를 견디기 위해 때로 자신들이 가진 가장 무거운 짐부터 버릴 줄 알아야 했다고 한다.
나에게 가장 무거운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가장 무거운 것들은 역시나 어린 시절의 감정들과 어린 시절 맺었던 인연들을 끊어낸 후 남은 감정들이었다. 나의 늑대는 이제 나의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않다.
너는 할 수 있어. 너는 스스로 가벼워질 수 있어. 너에게는 가벼운 몸으로 높이 뛰어오르고 멀리까지 달려갈 능력이 있어!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내 가슴에 불길이 일면서 눈에 눈물이 맺혔다. 누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해 주는 것이 처음이었다. 다들 그냥 어쩌겠어 팔자려니 하라고만 했지. 덜어내고 가벼워지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제발 그렇게 되면 좋겠다. 하지만, 나에게 무슨 능력이 있다는 것일까. 늑대는 내 안의 무엇을 보는 것일까. 나는 아직 알 수 없는 어떤 기운이 그에게는 느껴지는 것일까. 꼭 그렇게 늑대가 말한 대로 되고 싶은 간절한 마음만큼, 궁금함을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나는 늑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떻게? 내가 도대체 어떻게 뭘 할 수 있다는 거야? 난 네 말이 무슨 뜻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이젠 스토리의 힘을 이용할 때야. 네가 지금까지 쌓아온 이야기를 짓는 능력을 지금 써야 해.
나의 듬직하고 늠름한 늑대는 지혜롭고 밝은 눈동자를 빛내며 차분히 설명을 이어갔다. 내가 쓰는 대로 내 이야기가 내 감정의 무게를 변화시킬 거라 했다. 삶의 무게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 스토리를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을 내가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했다.
늑대의 설명을 들으면서 나는 심장이 세차게 뛰어오르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아직 아무것도 된 것이 없고, 한 것도 없지만, 그런 일이 곧 일어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강렬한 느낌이 살아났기 때문이었다. 내 마음은 이미 한없이 가벼워져 저 푸른 들판을 뛰어다니기 시작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자꾸 곱씹는 일들, 그것들이 불러오는 감정들을 무겁고 어두운 장르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내가 태풍이 지나간 폐허 더미에서 나를 구해내고 기둥을 바로 세우고 다시 집을 짓고자 노력하고 있는 성장 성공 스토리 장르로 바꾸어 내야 한다는 것이 늑대의 조언의 요지였다. 따뜻하고 힘이 나는 스토리는 충분히 가벼우면서도 나를 뛰어다니게 할 힘을 줄 능력이 있다고 했다.
나는 내 마음속에 축 늘어져 있는 힘겹고 무거운 스토리들을 보았다. 어떻게 저 무겁고 음침한 것들을 다시 꺼내 털고 고쳐갈 수 있을까 엄두가 들지 않았다. 갑자기 늑대가 다가오더니, 입으로 바람을 후후 불기 시작했다. 아기 돼지 3형제의 집을 불어 날릴만한 강도의 거센 바람이 내 안에 일어났다. 너무나 무겁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그 스토리들이 먼지처럼 가볍게 날아오르더니 맥없이 흩어져 버렸다.
저 이야기의 파편들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네가 무겁다고 믿고 있어서 무거웠던 것일 뿐이야. 어렸던 너에겐 너무 어렵고 무겁게 느껴졌던 게 당연한 일이었지. 이젠 아니라는 거 알았으니까 할 수 있겠지?
나는 어디까지 속아서 살아가고 있었던 걸까. 아무리 청소해도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처럼, 거짓을 아무리 열심히 치워내도 또 다른 거짓이 끊임없이 어디선가 나온다. 나를 짓누르는 모든 것의 실체가 거짓에서 비롯된 것만 같다. 나는 어지럽게 널려있는 거짓말의 먼지들을 꼼꼼히 쓸어 내고, 싹싹 물걸레도 닦아낸 후, 나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세우고 성장하는 중이다. 나는 삶을 잘 세워가고 싶어서 끝없이 노력하는 사람이다. 내가 과거를 떠올리는 것은 나를 슬프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감정을 다루고 이겨내, 다시는 그 감정의 폭풍에 휩쓸려 집을 잃는 일이 없도록 집을 단단히 세워가는 과정의 일부다. 나는 치밀하고 주의 깊은 내면 건축가이기 때문이다. 비바람에 끄덕 없는 강화 재료를 만들고 기초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 전에 살았던 집의 문제들을 계속 생각해 내야만 할 뿐이다. 전에 살았던 집이 폭우에 휩쓸려 내려간 일은 한동안 무척이나 비참하고 슬픈 일이었지만, 더 이상 나는 아프지도 괴롭지도 않다. 튼튼한 새집이 잘 지어져 있는데, 부실했던 옛집 때문에 슬픔에 잠겨 살아간다면 그건 너무나 바보 같은 일일 것이다. 나는 이제 기뻐하기로 마음먹는다. 나를 축하해 주기로 한다. 매일 새 집을 지어 낸 기념 잔치를 하고, 행복하고 안락한 일상의 축배를 들며 살아갈 것이다. 새로 지은 단단한 집에서, 날아오르는 가벼운 삶을 살아갈 것이다...
다시 쓰기 시작한 문장들을 늑대에게 보여주자 나의 늑대는 몹시 기뻐했다. 아직 달이 환하게 떠오르지 않은 낮이 었는데도, 늑대는 너무 감정이 벅차 올라 결국 푸른 하늘 한가운데 희미하게 박혀있는 작은달을 향해 기쁜 늑대 울음소리를 터뜨렸다.
나를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의 사랑을 받는 일이 얼마나 기쁘고 숨통 트이는 일인지. 그 진실한 위로가 얼마나 따뜻하고 충분한지. 나의 모든 일을 자신의 일로 여기는 그런 존재 곁에 있는 것이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마음을 놓고 나의 늑대와 모든 것을 의논하고 같이 해 나가는 삶이 얼마나 든든한지. 나같이 의심 많은 사람이 얼마나 나의 늑대를 사랑하고 믿게 되었는지. 아직 감정은 다루기 어렵고, 갈 길은 멀지만, 나는 어느새 나의 길에서 기쁨을 찾고 있고, 내 생의 한 순간 한 순간을 사랑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