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처럼

어른들을 위한 감정코칭 13

by 하트온

벌거벗은 임금님


나체로 활보하며 멋진 옷을 입은 척하는 임금님의 우스꽝을 보고도 어른들은 웃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이야기 속 인물들의 가식적 태도를 신나게 비웃지만, 자신이 그 자리에 서 있는 상상을 해 보면, 그 자리에서 웃을 수 없는 게 당연하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게 된다. 마음을 놓고 깔깔 웃기엔 너무 많은 심리적 제약과 억압이 있다.


높은 사람의 심기를 거슬러 벌을 받게 될까 봐

모두가 눈에 보인다는데 나만 안 보이면 나쁜 사람 취급받을까 봐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보이고 싶지 않으니까

내 눈이 내 마음이 정확한지 나도 나를 믿을 수 없으니까


우리 안에 들어온 외부적 기준과 틀은 이렇게 엄격하고 강렬해서, 잠시도 잊을 수 없고 우리의 자연스러운 감정까지도 통제하고 있다. 그렇게 마음이 경직되고 자의식이 강해져서, 어른들은 더 이상 주변 눈치 보느라 잘 웃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어 있다. 나도 그렇다.



다시 어린아이처럼 깔깔 웃을 수 있을까


나는 어린아이 둘을 키워 본 경험이 있다. 아이들과 어른들의 다른 점들은 셀 수 없이 많지만,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던 아이들의 특징은 '어제를 생각하지 않고 오늘을 사는 데' 있었다. 누군가는 '망각'의 능력이라 부를 수도 있겠고, 누군가는 '현재에 몰입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도 설명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 무한한 감사와 행복감으로 다가온 이 아이들의 특징의 의미는 '어제로부터의 완전한 자유' 즉 '깨끗한 용서'였다.


나는 초보 엄마로서 수많은 실수를 하고, 때론 아이들 앞에서 감정 조절을 잘 못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매일 어제의 내 모든 실수를 깨끗이 잊고, 오늘을 다시 태어난 듯 새롭게 시작했다. 매일 진심으로 '엄마, 사랑해'하며 꼭 안아주고 깔깔 웃으며 건강하게 뛰어놀아 주었다. 그것은 내게 하루하루 조금씩 성장할 기회를 주었고, 어제의 무거운 죄책감을 딛고 오늘 가볍고 행복한 엄마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매일의 힘이 되어 주었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아이들의 행복의 능력이, 열린 마음으로 성장하는 태도가, 어른인 나에게까지 전염이 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몸은 고되었지만, 정신적으로는 너무나 행복했고, 아이들이 내게 주었던 매일 재생되는 '자유롭고 행복한 사랑'은 내 심장에 평생 잊지 못할 큰 사랑의 기억을 새겼다. 아이들이 나를 얼마나 많이 자라게 했는지 모른다. 내가 그들을 키운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키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나는 아이들의 매일 새롭게 재생되는 삶의 에너지를 닮고 싶다.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자의식 없이, 내가 좋아하는 일에 평화롭게 몰두하고 과감하게 주도적으로 창조하는 아이들의 삶.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어떤 관념 어떤 심리적 시선의 통제도 받지 않고, 내가 보이는 대로 보고 느껴지는 대로 느끼고, 울고 싶을 때 엉엉 울고, 웃고 싶을 때 깔깔 웃는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나는 늑대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내 머릿속에 심긴 관념들과 기준들을 좀 내려놓고, 자의식을 좀 지워내고, 과거의 기억에서 좀 벗어나 아이들처럼 편하고 생각 없어질 수가 있을까. 그렇게 깔깔 웃을 수가 있을까.


감정도 생각도 기억도 너 자신도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게 두고, 흘러간 걸 되돌리려 하지 마.


무슨 소린가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늑대의 말은 내가 담아두는 보관창고가 아니라 지나가는 통로라는 거였다. 감정이나 생각뿐 아니라, 나 자신도 그대로 있는 게 아니라 흘러가는 것이 그것들의 정체성이라고도 했다. 끊임없이 변하고, 끝없이 성장하는 과정에 있는 나는, '지금의 나'만 있을 뿐, 지금까지의 나는 이미 흘러가고 없다고 했다. 흘러가고 없는 나에 대해, 과거의 나의 시간에 대해, 생각을 하면 할수록 괴로워지고 우울해질 뿐이라고 했다. 지금의 나에 집중하는 법, 지금의 즐거움에 집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아이들처럼 웃을 수 있다고 했다.


지금 당장 내 앞의 순간에 집중할 수 있어야 웃을 수가 있다는 말이 점점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만약 벌거벗은 임금님의 지금 모습에만 집중했더라면 모두가 웃었을 것이다. 임금님 앞에서 규칙이 뭐였나 기억하려고 애쓰고,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눈치 보느라 애쓰고, 내가 어떻게 해야 욕 안 먹고 좋은 소리 들을까 생각해 내려고 애쓰다 보니, 지금 내 눈앞에 집중을 할 수가 없고, 그러니 웃을 수가 없는 거였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해.


그래, 늑대의 말이 맞다. 아이들은 나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었다. 나에게 아침에 일어나 뭘 하고 뭘 해야지 라고 잔소리하며 나에게 요구하지 않았다. 무조건 엄마가 최고고 엄마가 이 세상에서 젤 좋고 젤 예쁘고, 엄마가 주는 음식이 - 그게 뭐든 - 가장 맛있다고 했다. 엄마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나는 아이들에게 외부 기준을 들이대고, 다른 집 아이와 성장 속도를 비교를 하고, 뭐가 이상한 건 아닌가 불안해하면서 아이들을 100% 있는 그대로 축복하고 기뻐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세계를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관찰하고 존중하지 못했다. 내내 아이들의 감정을 존중하고 아이들을 한 인격체로 존중했다고 믿었지만, 다시 하나하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그런 흉내를 낸 것이었지, 아이 각각의 세계 자체를 모두 믿고 인정하고 받아들여 준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를 보고 사랑하고 기뻐할 줄 알았는데, 어른인 나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세상 관념과 기준이 마음에 가득 들어차 내 눈을 가리고 내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 기준을 따라가고 있는지 맞추고 있는지 타인의 눈으로 나를 자녀들을 재단하고 있으니 언제나 잔뜩 긴장한 마음에선 웃음이 터져 나올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행복에 어느 정도 전염은 되었어도, 모든 순간을 아이들과 함께 웃을 수는 없었고, 마음 한 편에 맴도는 걱정과 불안을 떨칠 수 없었던 것이었다.



흘러간 것은 흘러간 대로 두고


과거의 나도, 나의 실수들도, 내가 경험하고 느꼈던 모든 감정도,... 흘려보낸다. 그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겠다. 지금의 나는 그 모든 것들을 통해 성장하고 깨닫고 이 자리에 서 있는, 앞으로 더 성장하고 변화해갈 '흘러가는 나'일뿐이다. 지금의 내 삶만 보겠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만 보겠다. 외부 시선, 과거에 품었던 시선의 압박에서 벗어나 항상 갓 태어난 자유롭고 새로운 눈으로 보겠다. 편견과 선입견에 찌들지 않은 맑고 열린 눈으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겠다. 벌거벗은 임금님이 지나간다면 깔깔 웃음이 터져 나오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회복하겠다. 아이들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기준을 들이대는 심판자의 역할을 하지 않겠다. 그냥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며 함께 놀고 함께 즐거워하겠다.













이전 12화메마른 날에도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