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위한 감정코칭 12
나 같은 사람이 무슨 생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아직 수명이 다 하지 않은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 사람들을 나는 종종 생각한다. 그리고 동시에 부서지고 무너지고 생이 곧 끝날 듯하면서도 끝없이 살아나 긴 생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생각한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겠지만, 가장 확실히 다른 건 세상을 향한 이해와 그 이해가 낳은 감정의 차이가 아닐까. 눈을 감아버리고 더 이상 나를 거절하고 힘들게 하는 세상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어떻게든 눈을 떠 일어나 나를 필요로 하는 세상과 마주하겠다는 마음의 차이가 아닐까.
살아갈 의미,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의미를 분명히 알지 못한 채 세상살이를 시작한 사람들에게, 거듭되는 세상살이의 거친 공격 속에서 생의 의미를 붙잡고 견뎌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인생이 망했다고 느껴지는 순간들,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는 것 같은 순간들, 그런 순간들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내가 믿고 살아가는 부모가 나에게 자꾸 실망하고 못마땅해서 괴로워 보일 때, 함께 갈 사람이라고 믿었던 연인이나 배우자에게 배신을 당할 때, 내가 가장 사랑했던 자식들이 늙고 병든 나를 귀찮아하고 부담스러워할 때, 아무도 반기는 사람 없이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는 느낌이 엄습할 때,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때가 오고 잉여인간이 된 생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할 때, 어떻게 견뎌낸단 말인가? 붙잡고 일어설 무슨 생의 의미가 남아있단 말인가?
세상이 필요로 하는 중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면
삶의 의미를 가지기 위해, 모두 내가 중요하게 필요한 존재라는 느낌을 갈구한다. 그 느낌이야 말로 비참한 거절감과 고립감에서 인생을 구원하고 삶을 행복감으로 충만하게 채워 줄 삶의 의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당연히 그것을 원했다. 아무도 함부로 등한시할 수 없는 꼭 필요한 중요한 존재가 되고 싶어서 달리고 또 달려갔던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열심히 달릴수록 내 생은 더 의미가 가치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없어지는 것 같은 반대현상이 일어났다. 멀리서 보기엔 점점 그럴듯하게 포장이 거대해지는데, 속 안은 그 텅 빈 느낌이 더 싸늘하고 기괴해져 갔다.
나의 늑대에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너무 세상에 맞추려고 노력하다가, 너의 길을 벗어나버린 거야.
중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다 바쳐 노력하고 희생하며 참아왔는데, 이게 나의 길이 아니라니! 진짜 의미가 되는 희생이 아니라 내 자리가 아닌 곳에 나를 깎아 넣는 의미 없는 고통을 견디고 희생을 한 것이란다. 이렇게 많이 왔는데, 이 어마어마한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를 어떡해?
걱정 마. 이 노력의 시간이 다 의미로 채워지는 날이 올 거야.
나의 늑대가 없었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나의 길을 찾지 못하고 얼마나 더 많이 방황했을까. 나는 괜찮은 척하느라 나를 얼마나 더 속여야 했을까?
인생 초반에 걸었던 그 길은 혼돈이었다. 진짜 내가 가야 할 길을 모르니, 익숙한 세상에 나를 맞추는 익숙한 고통 속에서 나의 안정감의 필요를 채웠고, 그만큼 나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 거기에 충실하기가, 나 자신의 진짜 필요를 생각하기가 두렵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 마음을 꽁꽁 숨기고, 타인의 기준 안에 들어가 섞여 드는 일이 훨씬 더 안심되고, 거기에 맞추어 어울려 사는 하루가 의미가 되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부모의 기뻐하는 얼굴, 스승의 만족하는 표정, 상사와 동료의 인정하는 말을 듣는 순간들이 의미라고 여겼으므로, 내내 그것들을 갈구하며 나아갔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니! 내 길이 아니라니!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나를 찾아가는 길
너의 길, 너만의 길을 반드시 찾아야 해. 너 자신을 믿어야 할 수 있는 일이야. 그 믿음만이 너를 너의 길로 인도해 줄 수 있어.
숨겨두고 묻어 두었던 나를 발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를 찾기로 시작했으면서도 계속 곁을 힐끔 거리는 버릇을 지우기도 힘들었다. 타인에게, 타인의 기준에 나를 맞추려는 자세가 쉽사리 고쳐지지 않았다. 나의 늑대를 쭉 따라가서 되는 일이라면 좋으련만, 늑대는 이번 일엔 결코 먼저 나서지 않았다. 한 걸음 뒤에서 내가 움직이는 만큼만 따라왔다. 내가 멈추어 서면 그는 참을성 있게 나를 기다리고 서 있을 뿐이었다.
내가 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아직 제대로 깨닫지 못했던 시점에, 내가 나를 완전히 믿어주는 법을 몰랐던 시점에 무작정 떠난 길이었다. 나의 늑대의 말만 믿고 떠난 이동이었다. 모든 깨달음은 그 여정 중에 일어났다. 내가 나를 믿어주는 것이 내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힘이라는 것도, 나의 길은 타인의 길과 명확히 구분되는 길이라는 것도, 불확실하고 의심스러운 시간들이 한참 지난 후에야 선명히 깨닫기 시작했다.
마침내 모든 의문과 후회는 사라지고, 그 길을 걸어온 것이 참 다행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전에 걸었던 길이 사람들의 칭송 속에 환하고 멋지게 시작되어 점점 불안하고 괴로운 미궁으로 치달았던 길이었다면, 이 길은 좁고 외롭고 불안한 마음으로 시작해서 점점 내 마음이 편안해지고 흡족해지는 길이다. 바로 이 길이야. 이 길로만 쭉 가면 돼. 안심이 되고 확신이 드는 길이다.
마른 나뭇가지 삶의 의미
더욱 확신이 생기고 많이 행복해졌으면서도, 다만 한 가지는 늘 마음에 걸렸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나뭇가지를 볼 때마다, 꽃이 시들어지고, 나뭇잎이 말라 떨어지는 것을 볼 때마다, 떠오르고 피는 것이 아닌 꺼져가는, 지는 모든 것을 볼 때마다, 불안하고 슬픈 마음이 치밀어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 삶이, 또한 내 주변의 모두가 이렇게 조금씩 지면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라는 생각을 할 때마다 앙상하게 나뭇가지만 남아 죽어가는 순간에도 내가 의미를 붙잡아 낼 수 있을지가 불안했다. 마지막 남은 날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뜨고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나의 늑대에게 내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사람들이 함께 있기 싫어하는 냄새나고 추한 늙은이의 시간, 그 시간을 어떻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지.
나의 늑대는 나를 겨울나무에게로 가까이 데리고 갔다. 그리고 흙을 파헤쳐 그것의 뿌리를 보여주었다. 땅 위의 나무는 죽어 말라비틀어져 가는 듯 보였는데, 뿌리는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뿌리는 열심히 스스로를 다지고 성장시키며 힘을 축적하고 있었다.
죽어 가는 것이 아니야. 나무처럼 사람도 죽어 가는 듯 보이지만, 더 이상 육체를 성장시키는데 에너지를 쓰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강화시키는데 에너지를 쓰고 있을 뿐인 거야.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를 하는 거야. 결국은 육체가 아닌 내 영혼으로 나아가는 거야.
영혼으로 나아간다는 말의 의미를 나는 아직 잘 모른다. 육체가 조금씩 낡고 있지만, 기꺼이 포기하고 벗어버릴 만큼 낡지는 않았으므로 나는 이 말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무너져 가는 육체만큼 강해져 가고 살아나는 나무뿌리 같은 것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이다. 마른 나뭇가지에 새순이 돋고 꽃이 피는 봄날의 나무처럼, 나는 다시 새롭게 더 풍성하게 살아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희망이 있는 한, 우리는 죽어가는 내 육체를 보면서도 기뻐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나이에도 설레며 눈을 뜰 수 있다는, 그럴 수 있는 나를 위한 길을 찾아야 한다는, 나의 늑대의 말을 믿고 나는 기꺼이 기대하며 나아가 보기로 한다.
네가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 만으로 생의 마지막 날까지 삶을 누릴 충분한 이유와 의미가 있어. 너 자신의 길, 너의 의미를 찾고 즐겁게 살아내는 너의 삶 자체가 네 주변 사람들에겐 좋은 영향, 큰 유산이 되는 거야.
대문 사진 출처: Pixabay (by pixunferti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