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 그다음엔?
미니멀리즘이 내 안에 일으키는 변화
미니멀리즘 입문자 모두가 시작하는 일이 있다. 필요 없는 물건 없애기. 더 이상 쓰지 않으면서 쌓아 놓고 있는 물건을 없애는 일은 그리 큰일이 아닐 것만 같다. 어차피 집 정리도 해야 했는데, 나도 한 번 시도해 봐야겠다 생각이 들고, 깨끗이 정리하고 나면 속이 시원해지겠다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입문 단계를 시도해 보다가 멈춘다.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사실 그 모든 과정이 나의 평소 습관을 거슬러야 하는 어려운 일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과 필요 없는 것을 구분하는 나만의 기준을 세워야 하고, 그 기준에 따라 물건을 분류하는 수고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며, 결정적으로 필요 없는 것으로 분류된 것들은 처분할 수 있어야 한다. 생각하고 계획하고, 물리적인 실천까지 해내야 하는 강한 결단이 필요한 엄청난 작업이다. 누군가에게는 트럭을 불러 해결해야 하는 방대한 작업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이 큰돈 주고 공들여 장만한 물건을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너무 아까워서 내내 끼고 있던 물건을 내려놓는 게 얼마나 아픈 일인지. 그 힘들고 아픈 과정을 반복해서 거치고 나면, 내면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잘못 선택한 물건이거나, 상황이 변해 더 이상은 용도가 없게 된 물건이 처하게 되는 운명을 보면서, 과거의 선택들, 그 바탕에 깔린 자신의 가치관을 되돌아보게 된다. 나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해 온 것들과 마주하고 다시 되물어 보게 된다.
정말 중요한 거 맞아? 옳게 선택한 거 맞아?
내 안에 혁명이 일어났다
아이들을 갖기 전 한국과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예쁘고 세련된 디자인에 반해 정말 큰맘 먹고 샀던 명품 브랜드 정장이 몇 벌 있었다. 아이를 낳기 전 가장 날씬하던 시절에 산 것이라, 아이 둘을 낳고는 체형 자체가 변해버려 아무리 살을 빼도 입을 수 없는 그림의 떡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하지만 나는 그 옷들을 없애지 못하고 계속 끼고 살았다. 마치, 그 물건이 나의 '리즈 시절'을 기억해 주는 기념품, 전리품처럼 느껴졌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사이 1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신기하게 옷은 그대로였다. 워낙 옷감이 좋은 데다, 잘 보관된 옷들은 여전히 빛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상태 그대로의 멋진 옷들을 보는 내 마음은 점점 무거워져 가기 시작했다. 미니멀리즘을 접하고, 없앨 옷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그 무거운 감정과 마주하기에 이르렀다. 그 무거운 덩어리 안에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 슬픔, 회한, 나이 먹고 몸이 변해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너무나 많은 감정이 쌓여 있었다. 삶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완고한 고집이 내 삶을 옭아매는 가시덤불로 자라나 있었다.
나의 내면에 자리잡기 시작한 미니멀리즘은 그 무거운 감정의 덤불을 끊어 내고, 그 물건을 없애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나는 그 물건이 결코 내게 좋은 에너지를 주는 것이 아님을, 자기 연민과 과거 집착의 블랙홀이 거기에 도사리고 있음을 확실히 보았다. 너무 아까웠지만, 앞으로도 입을 일이 결코 없으리라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마침 그 옷들을 기쁘게 사용할 사람이 나타났다. 아낌없이 건네주었다. 더 이상 맞지 않아 못 입는 옷들, 낡아서 더 이상 손이 안 가는 옷들 모두 함께 처분했다.
그 무거운 물건들을 모두 없앤 그 순간, 모든 것이 변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넓어진 옷장 공간 속으로, 깃털처럼 가벼워진 내 마음이 날아와 자리 잡았다. 내가 입을 수 있는 옷, 내가 좋아하는 옷, 나에게 설렘의 에너지를 주는 옷들만 걸려있는 옷장은 훨씬 신나고 자유로운 감정으로 가득했다. '비우는 것이 얻는 것'이라는 미니멀리즘의 가르침을 생생히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또한 변화를 수용하는 마음의 성장이기도 했다. 고집스럽게 과거의 옷, 과거 영광의 흔적을 붙드는 마음을 깨고, 삶이 흐르는 대로 따라 흐를 수 있는 마음으로 변화한 것이었다. 모든 것이 그 자리에 멈춰있지 않은, 끊임없는 삶의 변화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내가 자유로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자유를 지키는 삶
자유는 사람에게 너무나 중요한 덕목이다. 어디에도 얽매이거나 억압을 받지 않고, 오직 스스로를 위해 판단하고 자유롭게 선택할 자유가 있는 것이 사람이 자신의 속도대로 성장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가는데 정말 중요하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많은 자유는 내게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자유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부딪쳐 싸우고 피 흘린 결과다. 용기 있는 자들이 맞서 일어났던 혁명의 결과다.
하지만 아직도 자유롭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아직 인간은 모든 면에서 완전한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닌지 모른다. 무엇이 사람을 자꾸 옭아 매고 힘들게 하는 것인지 아직도 많은 숙제가 남아 있다는 뜻일지 모른다. 그렇게 중요한 자유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자유를 사유해왔고, 나 또한 개인적인 관심으로 오랜 세월 자유를 고민해왔다. 한때는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자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었다. 누군가는 선택의 자유가 있는 것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나에게 있는 제한과 규칙을 수용하는 것이 자유를 얻는 길이라고도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내 맘대로 하는 것이 자유라는 말도 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 나이가 되니 자유는 더욱 쉽지 않은 개념으로 다가온다. 어디까지가 인간 각자에게 유익한 만큼의 자유이고 어디까지 도덕 법규가 인간을 억압하는 것이 인간 집단 전체를 위해 옳은지 그 균형이 갈수록 복잡하게 생각된다. 누가 자유를 무엇이라 정의하건, 각 사람이 얼마만큼의 자유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건, 이미 나는 내가 속한 사회가 정하는 만큼의 자유와 억압에 길들여져 있음을 본다. 그것에 불만을 가진다 해도, 지금 당장 내가 어찌해 볼 여지는 많이 없다. 게다가,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사회 환경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내재화시킨 관념과 기준의 지배도 받는다. 알게 모르게 우리 스스로가 자신을 옭아매고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부분도 많다는 것을 점점 갈수록 더 크게 느낀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자유롭다고 믿는 이 사회가 우리의 정신을 엄청난 강도로 짓누르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나의 내면을 누르고 억압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어디서 오는 것이건, 미니멀리즘은 내 삶의 방향을 그 고통의 삶으로부터 틀어 바꾸겠다는 개혁 정신이다. 미니멀 라이프란, 나 자신을 모든 정신적 억압과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겠다는 혁명 의지다. 눈을 부릅뜨고, 나에게 해로운 것을 끊임없이 물리쳐 내고, 나에게 유익한 것만 취하며 내 삶을 지키고 사랑하겠다는 삶의 의지다. 미니멀리스트는 자신을 옭아매려 하는 모든 정신적 부담, 외부적 기준과 끊임없는 싸움을 벌이는 사람,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혁명 전사'다. 내가 나 스스로를 미니멀리스트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나는 오늘도 어떤 억압도 거부하고 두 눈 부릅뜨고 내 삶을 지키고 있는가? 어떤 물건 재산보다 중요한 것이 나의 마음, 나의 자유라는 것을 믿는가?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BlackDog1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