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주고 행복을 얻는 삶

미니멀 라이프, 그다음엔?

by 하트온

자유라는 황금 열쇠


미니멀리즘은 본질 외엔 다 비우고자 한다. 비운다는 의미는, 불필요한 것을 내 곁에 붙들어 두려는 고집과 미련을 거두겠다는 뜻이다. 내 소속이어야만 했던 통제와 감금을 풀어 주겠다는 의미다. 의미 있는 쓰임을 찾아 떠나가도록 자유를 주겠다는 의미다.


내가 널 갖지 않아도 돼.


손에서 놓아주는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상대를(혹은 대상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 목 좁은 병에 넣었던 손을 빼내려면 움켜 쥔 주먹을 풀어야 빠진다는 누구나 아는 원리, 어린아이도 알 수 있는 쉬운 개념을 나는 이제야 체득한 것이다. 내가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이제야 온몸으로 깨우친 것이다.


이토록 늦게 자유를 줄 줄 알게 된 건, 어쩌면 내가 무척이나 강한 통제 욕구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상이 마음대로 되지 않고, 사람들이 내 맘 같지 않은 것에 대해 체념한 듯 행동해 왔어도, 통제 욕구는 항상 살아 내 마음을 옥죄고 있었던 게 아닐까.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상황들에 대해 나는 내내 화를 내고 스트레스받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드러내진 않아도, 내 마음에 감정이 수시로 들끓고 있었던 게 세상을 통제하지 못하는 욕구를 내 안에 다 성질부리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 나는 세상에 자유를 주겠다.


'자유를 줄 수 있다'는 이 '황금 열쇠' 하나가 내 마음에 맺힌 응어리들을 다 풀어내고 쓸모없는 감정들을 분류하고 정리하기 시작한다. 하나의 원리를 터득하면, 열 가지 일에 적용할 줄 아는 영리한 나의 내면이, 터득한 자유의 원리를 삶의 모든 곳에 적용해 나가기 시작한다. 내가 더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더 많은 것을 손에서 놓기 시작한다.



나를 미워해도 될 자유


내가 오랫동안 붙들고 놓지 못했던, 나 스스로를 많이 아프게 한 영역이 있다. 나는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고 싶었다. 모두가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었으면 싶었다. 그토록 사랑과 친절을 갈망하는 사람이 되었던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게 되는 것을 죽도록 견딜 수가 없었다. 적어도 내가 베푸는 친절과 배려만큼 꼭 되돌려 받고 싶었다. 내가 베푸는 호감과 인정을 꼭 되돌려 받고 싶었다. 내가 받고 싶은 만큼 온 힘을 짜내서 세상을 친절하게 대하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국은 내가 받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니, 내가 베푸는 친절과 호의라는 것은, 진정한 자유와 사랑이 뒷받침하는 진짜가 아니라 계산이 가득한 가짜였던 것이다.


자신이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영감과 직관이 뛰어난 존재인 사람은 상대에게서 풍겨 나오는 느낌을 금방 알아챈다. 내가 아무리 저자세로 몸을 낮추고 친절하고 착하게 굴어도, 그것이 진심에서 우러난 진짜 사랑이 아닌 의도된 연기, 계산된 배려라는 것쯤은 바로 느낌으로 안다. 바로 알아채지 못한다 해도, 두고 보면 결국 시간이 진짜 성품과 의도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시어머니는 나보다 스무 살 이상이 많으시고 인간관계 경험이 훨씬 풍부하신 만큼, 참한 행동 뒤의 마음의 방향을 넘겨짚는 내공이 소림사 무승급이셨다. 게다가 늘 의지했던 아들을 뺏기는 불안정한 심리에, 남편마저 며느리를 예뻐하고 편드는 것이 불쾌하고 못마땅하셨으므로, 결코 내가 좋게 보일 리 없었다.


하지만, 20대의 나는 어머님이 가진 심리적 어려움들을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었다. 내 안의 심리적 강박만이 요동치고, 누군가 나를 싫어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그것도 가까운 가족의 마음이 그렇게 차가워져 간다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그때는 시부모님들이 가장 잘 보이고 싶은 사람들이었고, 마음을 얻고 싶은 욕구가 강한 만큼 더욱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었다. 그 시기의 며느리 심리에 대해 '사랑받고 싶은 며느리병'이라는 이름이 있을 정도로, 누구나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나는 평소에도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은 성향이 컸던 만큼, 어떻게 해도 시어머니를 만족시킬 수 없고, 따뜻한 마음 한 자락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은 내게 오랫동안 너무나 큰 절망감과 고통을 주었다.


이렇게 예쁘고 똑똑하고 착하고 괜찮은 나인데, 감히 좋아하지 않는 거야? 감사하지도 않는 거야?


이런 마음이 내 고통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 알게 되었다. 내가 위선자인 것을 내가 깨닫게 된 것이다. 겉으로는 겸허한 척, 부족한 면이 많은 걸 인정하는 척, 사랑하고 잘 지내려는 마음 외에 불순한 마음 따위 하나도 없는 척, 속으로는 저런 나르시시즘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 자신도 깜박 속아 버릴 정도였다. 오래 자신까지 속여 온 터라, 내 안에 저 마음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었다. 나를 깊이 싫어하는 사람이 생기고 나서야 나는 내 모습을, 깊이 숨은 속마음을 정확히 보게 된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이 낯부끄럽지만, 내면의 추악한 민낯을 드러낸 김에, 끝까지 다 파헤쳐 보자. 나의 깊은 속내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사실 다른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이 이제는 보인다. 누군가 나를 싫어하는 기색이 보일 때, 나에게 호감이 아닌 불신이 싹트는 느낌이 들 때, 그 약간의 미묘하게 미적지근한 감정도 나는 용납이 되지 않았다. 어디서나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호감 받고 싶은 욕구가 너무 컸다. 내내 나는 그런 사랑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스스로 믿었고, 사람들의 설레고 다가가고 싶은 마음은 내 것이어야 했다.


그래서 남자 친구들이 조금만 변심하는 것 같아도 나는 잘라냈었고, 친하게 된 사람들이 조금만 만만하게 함부로 말하기 시작해도 끊어냈었다. 소중히 여기는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이 아닌 것은 내가 결코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 마음은 뭐라 이름 붙여야 할지 모르겠는 내 안의 심리적 강박에 단단히 묶여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마음을 정리하고 자유를 느껴보고 싶었다. 그래서 사랑과 친절을 끝도 없이 빨아들이려 하는 블랙홀을 걷어 내고, 깨끗이 청소해 버렸다. 무한한 자유를 주고 더 무한한 자유를 얻자고 마음먹었다.


네네. 이젠 저를 싫어해도 됩니다. 싫어할 수도 있죠. 괜찮습니다.


가족 모임이 있을 때마다 조금만 어머님의 기색이 좋지 않아 보이거나, 불쾌한 말을 들을 때, 나는 너무나 오래 그 상황을, 그 상황에서 주고받은 말들을 두고두고 곱씹으며 나 스스로를 괴롭혔었다. 어머님에게 자유를 주고 난 뒤, 나는 전처럼 곱씹지 않는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어머니를 존중하는데 최선을 다했고, 상대방이 어떤 마음으로 나를 대할지는 그 사람의 자유다. 그 사람의 감정은 그 사람의 몫이니까. 나는 나의 감정적 만족을 위해 내가 할 만큼 하는 것이고, 어차피 내 손을 떠난 일들은 더 이상 내 몫이 아니다. 이제 그만 생각해도 된다. 그게 서로를 놓아주고 자유롭게 하는 길이다. 그렇게 마음먹자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자유를 주고 행복을 얻는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고, 나를 싫어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에게,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에 자꾸 매달려 생각하고 곱씹는 일은 자기 학대일 뿐이다. 사실 나도 싫어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 마음을 어쩔 수 없는데, 어떻게 모두가 나를 좋아하기를 바랄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관계들이 있다. 그들에게 자유를 주고, 나는 그것을 그러려니 생각하고 비워내야 한다. 그것만이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이다.


이 세상에 천차만별 다양한 모습의 사람이 있는 만큼이나 사람들의 마음도 다양하다. 내가 내 마음에 대한 자유가 있는 것처럼, 타인도 이런저런 마음을 가질 자유가 있다. 그것을 완전히 인정할 때, 나도 남의 마음에 대해 신경 끌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다. 남의 마음은 남이 알아서 할 남의 권리고 책임일 뿐이다. 나는 나의 권리와 책임만 신경 쓰면 된다. 내 마음의 방향이 옳은지만 살피고 내가 성장하는데 집중하면 된다.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나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한, 나를 속박하고 옭아매는 영역이 있는지 나는 꼼꼼히 내 삶을 살펴나간다. 자유가 필요한 곳이 있을 때마다, 나는 자유를 주고, 자유를 얻는다. 자유가 아닌 마음을 비워내고 자유롭게 된다. 더더 자유롭고 싶은 의지는, 점점 더 큰 자유를 줄 줄 아는 나로 만들어 간다. 자유를 주는 삶을 계속 연습하게 만든다.


자유를 주는 삶이 이렇게 나를 행복하게 할 줄 몰랐다. 더 일찍 자유를 줄 줄 알았다면 나는 얼마나 더 행복했을까를 생각하다가, 자유를 몰랐던 내 과거의 삶에도 자유를 주기로 한다. 예전의 내 삶이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집착하지 않기로 한다. 지금이 중요하다. 지금 내가 자유를 줄 줄 아는 사람이면 충분하다.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blende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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