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 그다음엔?
미니멀리즘의 역사
미니멀리즘의 기원을 밝히기는 쉽지 않다. 본질과 본질이 아닌 것, 꼭 필요한 것과 필요치 않은 것에 대한 구분 자체가 미니멀리즘의 중심 가치인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생각의 시초는 고대 철학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 미니멀리즘이라는 용어 사용만을 생각하면, 20세기 초반 유럽 사회의 아티스트 무브먼트에서 시작해야 한다. 유럽 아티스트들이 어디서 영향을 받았는지를 따지고 들어가면 당시의 일본 문화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고, 일본 문화를 파헤치다 보면, 500여 년 전에 이미 본질의 중요성을 설파했다고 하는 젠 - 중국 대승 불교의 한 학파, 한국의 선불교 - 철학을 만나게 된다. 여백의 미와 본질 표현이 강조되었던 조선시대 그림과 건축 양식들을 떠올려 보면, 이미 미니멀리즘이 동북아시아 전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떻게 어떤 영향으로 시작되었건, 시대는 미니멀리즘을 필요로 했고 받아들였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20세기 초반- 세계 1차 대전 당시부터 - 유럽 아티스트와 건축가들, 예술가들 사이에 미니멀리즘 무브먼트가 있었고, 세계 2차 대전 이후 뉴욕을 중심으로 아트와 음악계에 미니멀리즘 무브먼트로 번져갔고, 미국의 미술, 음악, 영화, 문학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전 세계적인 대대적 영향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미니멀리즘의 영향으로 현대의 미술과 문학과 음악은 고전의 장식적 형식적 군더더기를 다 떨쳐내고 본질만을 추구하며 지금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온 것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
라이프 스타일로서의 미니멀리즘
21세기에 접어들고부턴 미니멀리즘은 개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뜻하는 개념으로 더욱 확장되기에 이르렀다. 라이프 스타일로서의 미니멀리즘 확산에 가장 선도적인 역할을 한 나라의 중심에 일본이 있다. 많은 미니멀리즘 관련 저서를 낸 작가들 또한 일본인들이 많다.
미니멀 라이프 스타일이 일본에서 크게 인기를 얻은 배경에는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환경의 영향이 있다고 한다. 꼭 필요한 것만 놓고 최대한 적게 가지고 사는 것이 안전하고, 편리한 상황인 것이다.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미니멀리즘은 지진이 나도 물건에 맞아 죽을 확률 자체를 낮추어준다. 다른 곳으로 피신해야 할 경우, 짐을 싸서 집을 떠나기도 쉽다. 적은 물건을 가지고 사는 소박한 삶에 익숙해 지면, 모든 것이 부서지고 못쓰게 된 상황에서 다시 새로이 삶을 시작하는 일도 훨씬 수월하다.
이러한 미니멀 라이프 스타일이 서구 사회 및 한국과 같은 메트로폴리탄 사회에 큰 영향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은, 대량 생산, 쏟아지는 광고, 강박적인 소비문화, 너무 많은 물건에 둘러싸인 감옥에 갇힌 듯한 삶에 지친 현대인들의 정신적 피로에 미니멀리즘이 신선한 치료제로 다가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즘 역사와 동향에 관한 자료 출처: https://minimalistroad.com/origin-of-minimalism/
나는 왜 미니멀 라이프를 선택했는가
나는 불교철학, 선불교에 대해 모른다. 선불교, 대승불교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큰 관심도 이해도 없다. 그런 종교나 철학을 추구하기 때문에 미니멀리즘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전 세계가 열광하는 유행 문화라서 따르는 것도 아니다.
나의 미니멀 라이프는 기원과 유행과 아무 상관이 없다. 미니멀리즘은 내게 아주 유용한 정리 시스템이다. 내게 꼭 필요한 것이 있고, 쓸데없는 물건이 있다는 미니멀리즘 분류 기준에 동의하며, 쓸데없는 것을 없애고 나서 얻는 장점들이 많은 것을 체험했으므로 미니멀 라이프가 나에게 맞는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결론을 내리기에 이른 것이다. 특히 나는 미니멀 라이프를 통해 모든 억압과 강박과 얽매임으로부터 자유를, 자유를 통해 행복감을 느끼는 데까지 나아가는 경험을 하였기에, 앞으로도 누가 뭐래도 이 라이프 스타일을 떠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러니 나의 미니멀리즘 추구는 종교적 의식도, 철학적 신념도, 다수의 스타일을 따르는 모방도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그냥 써보고 좋아서 계속 쓴다 정도의 실험 후 결론을 받아들이는 과학적 합리적 결론 도출 정도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나는 앞으로도 무엇이건 합리적인 좋은 결론이 도출되는 방식만을 받아들이며 살아갈 그런 타입의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유비무환이 주는 여유
내게 미니멀 라이프는 내 삶에 필요 없는 것, 나쁜 것을 비워내고, 좋은 것,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채우는 일이다. 미니멀리즘 추구가 나에게 주는 큰 이점 중 하나는 유비무환의 자세다. 일본인의 지진에 대한 준비와 같은 맥락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조금 더 설명해 보자면, 내 삶을 어떤 변화에도 적응하기 쉽게 준비시켜 준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계속 변화한다. 사람도, 삶도 계속 변화한다. 멈춰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살아있던 것은 죽고, 죽어 있던 것은 다시 피어나고, 활짝 피었던 것은 시들고, 시든 것은 떨어지고, 떨어진 자리에는 열매가 나고,... 한 순간도 정지하지 않고 변화하는 것이 이 세상, 인간 삶의 속성이다.
변화하지 않고 이대로 쭉 계속될 거라 믿었다간 큰코다칠 일만 수두룩하다.
인생은 변하고 따라서 우리도 변해야 한다 (Life moves on and so should we)
스펜서 존슨(Spencer Johnson) 작가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Who Moved My Cheese?)>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책은 세상은 변화 그 자체이니,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부정하지 말고, 항상 모든 것이 변화할 것을 예상하고 기대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치즈와 쥐라는 메타포를 써서 쉽고 재미있게 잘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책 중 하나다. 이 책을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01년 9월 11일 화요일 아침 알카에다가 연쇄 테러를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 것을 근거리에서 생생히 느끼고 있었다. 나는 당시 미 해군 사관학교 근처에 본사를 둔 엔지니어링 연구소를 다니고 있었다. 항상 라디오를 틀어놓고 근무하는 테크니션 아저씨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 처음엔 거짓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나 심각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비행기들이 뉴욕과 워싱턴 디씨의 주요 기관 건물들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내 심장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가슴에 커다란 쇳덩이 같은 것이 얹히는 느낌에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가위에 눌려 깨지 못하는 그 느낌은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 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이후에 세월호가 바닷물에 잠기는 아비규환의 뉴스를 접하던 느낌과도 비슷했다. 다만, 911은 내 삶에 훨씬 더 가깝다는 차이가 있었다. 남편은 당시 워싱턴 디씨 백악관 바로 근처 건물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워싱턴이나 뉴욕에 가까운 가족이 있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었다. 내 옆 자리 동료는 아내가 펜타곤에 미팅을 갔다며 아내 걱정에 새파랗게 질린 채 울먹거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연락도 되지 않던 그날 아침 몇 시간은 바로 지옥 경험이었다. 누가 무슨 이유로 우리를 죽이려 들지 모르는 답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한없이 연약한 존재인 것을 깊이 마음에 새기는 순간이었다.
세상이 뒤집히고 변하는 경험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주택 금리가 한없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너도나도 집을 사겠다고 달려드는 상황에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가 싶더니, 2008년 미국 금융 위기의 바람이 휘몰아쳤다. 정부와 회사들은 구조조정에 들어가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전재산을 잃거나, 직장을 잃거나,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에 깔려 파산을 선택해야 했다.
조금만 편안해지는 것도 참을 수 없다는 듯, 끝없이 총기 사고를 일으키고 마약 약물에 찌들어 가는 청소년, 청년들의 소식. 내가 사는 도시의 학생들이 일 년에 몇 명씩 주검으로 발견되는 현실.
그나마 좀 일어나 회복되고 살아갈 만 한가 싶은 찰나에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었다.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증오 폭력의 타깃이 된 아시안으로 살아가는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과 내가 정부나 회사라는 기관에 의존하지 않고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우리의 사업을 일구어 낸 것도, 아이들을 학교에서 빼서 홈스쿨을 시작한 것도, 살 수 있는 집보다 저렴한 작은 집에 살기를 선택한 것도, 90%의 물건을 비워낸 것도, 우리 삶의 위험 요소, 부담 요소들을 제거하고, 쓸데없는 것에 소비하는 시간과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우리에게 의미가 되는 중요한 것에 마음을 집중할 수 있기 위해서였다.
어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에서도, 이미 단출하고 간편한 살림을 살고 있는 우리는 허리띠를 줄일 여유가 많이 있었다. 코로나로 규칙이 바뀌고 뉴 놈을 받아들여야 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안정감을 잃지 않고 변화에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
항상 비워내는 삶의 자세가, 정기적인 기부 나눔의 습관을 만들어, 모두가 문을 닫아 잠그는 각박한 현실에서도 이웃과 나눌 여유가 끊기지 않았다. 어른도 아이들도 우리에게 쓸모없는 것을 아깝다고 끼고 있을 마음이 없고, 나누고 비워 즐거움을 두 배로 만드는 맛을 이미 보았다. 어딜 가든 팁을 30% 정도 주는 편이다. 보통은 15% 이상을 권하고, 20%면 후하게 주는 편에 속하는데, 30%를 놓고 나오면 - 고작 몇 불 (몇 천 원) 차이임에도, 감정을 바꾸고, 관계를 바꾼다. 식당 주인과 직원이 모두 우리를 기억하는 기적이 일어난다. 인종 차별적 무시와 냉대, 이젠 묻지 마 폭력까지 도사리는 미국이지만, 언제 어디서건 특별한 환대 속에 안전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나름의 비결이다. 그리고 나의 이런 행동이 한국인 전체에 대한 이미지를 좋게 만드는 데 일조할 거라는 믿음과, 특히 코로나 시대에 서빙 일을 그만두지 않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작은 기쁨으로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어, 나름 타당한 이유를 갖고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습관적으로 기부하고 팁에 후한 태도는, 내 삶을 안정적인 감정으로 채운다. 내 것을 좀 더 비워내고, 긍정적인 감정으로 삶을 채우는 미니멀 라이프적 선택이다. 기부하고 팁 주는 액수는 한 달에 몇 백 불(몇십만 원)에 그치는 돈이지만, 삶에 깃드는 긍정적인 감정은 상상 이상이다. 비우는 삶을 시작하는 누구나 알게 될 행복감이다. 누군가에겐 바보 같고 어리석은 삶으로 비칠지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남의 시선을 비워내고, 나의 만족감으로 삶을 채우고 있으니.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Jordan_Sin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