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 그다음엔?
본질과 사명
어릴 땐 사명이란 말이 무척 거창하게 들렸다. 독립 열사들처럼 목숨 정도는 아끼지 않고 내놓아야 할 것 같았다. 물론 그런 사명도 있을 것이다. 국가를 잃은 상황에서 독립을 바라고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목숨을 걸기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사명일 것이다.
국가도 민족도 딱히 나를 절실히 필요로 하지 않는 듯한 이 평화로운 시대, 서구 문화 사상의 영향으로 개인주의 충만한 이 시대엔, 사명이라는 말 자체가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같은 의미에 대해, '의미 있는 일' 이라거나, '나의 길',... 같은 다른 단어를 사용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건, 나는 나의 삶의 목적과 방향에 대한 고민을 해야 했고, 나는 내가 만들어진 모습대로, 나의 본질대로 사는 것이 사명이라고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고, 오래 할 수 있는 일, 내 마음이 향하는 일을 하며, 그 일을 통해 가치와 의미를 찾고 성장해 나가는 것이 사명을 다 하는 삶이다라고 생각되었다.
나의 사명을 깨닫기 위해서는, 내가 생긴 모습, 내 모습을 잘 아는 일이 지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본질이 선명히 드러나야 나의 사명도 모습을 드러낸다. 문제는 현대인은 사회 문화가 요구하는 대로, 외부 시선 외부 기준을 의식하는 갖가지 페르소나를 덮어쓰고 있다는 것이다. 깊이 내면화된 페르소나가 나의 본질을 가리고 딱 달라붙어, 이젠 진짜 내가 누구인지도 헷갈리는 상황이 되었다.
페르소나를 뜯어 내고
화장을 한 날, 클렌징 크림으로 닦아내야 깨끗하게 화장이 지워지고 제대로 세안이 되는 것처럼, 우리는 가식적인 페르소나를 씻어낼 수 있어야만 나 자신의 본질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그래야 내가 정말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를 알 수 있다.
미니멀리즘이라는 클렌징 크림을 마음에 살살 바르기 시작해 보자. 나의 본질이 원하는 것에는 설렘과 기쁨이 있다. 내가 좋아해야 해서, 잘 보이고 싶어서, 좋아하는 척하는 것에는 그런 신나고 흥분되는 감정이 없다. 일본의 유명 정리 전문가 콘도 마리에는 내가 계속 가지고 있어야 할 물건과, 없애야 할 물건을 구분할 때, 물건을 하나하나 만져보고 감정을 듣는 방법을 쓴다고 한다. 그 전문가가 선택한 방식이 나는 참 옳다고 생각한다. 페르소나는 모든 것을 다 속일 수 있어도, 내 안의 감정만은 속일 수는 없다는 것을 잘 간파해낸 것이다.
감정과 미니멀리즘의 연합작전이 필요하다. 미니멀리즘은 쓸데없는 것을 걷어내고 본질을 되찾으려는 의지를 가졌고, 감정은 페르소나와 본질의 미세한 차이를 구분해 주는 유용한 도구가 된다. 정리 전문가 콘도 마리에가 하는 것처럼 내 주변의 모든 것 - 사람, 물건, 상황,... - 에 대한 나의 감정에 귀를 기울여 보라. 콩닥콩닥 기쁘고 기대하는 감정이 세차게 뛰는지, 다소 무겁고 어두운 그림자가 내려앉는지 마음을 기울이고 느껴보라. 감정에 보다 예민해질수록, 한 몸처럼 나 자신을 깜박 속이고 있는 본질을 가장한 심히 혼돈스러운 페르소나까지도 깨끗이 뜯어 벗겨낼 수 있다.
시원한 본질의 얼굴로 살아간다
페르소나를 뜯어낸 본질의 얼굴은, 두꺼운 화장을 깨끗이 씻어내고 편안히 잠자리에 드는 느낌만큼이나 시원하고 편안하다. 내 본질이 드러나는 순간,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 내가 무엇을 가장 기쁜 마음으로 잘할 수 있는지 분명히 알게 된다. 고민 없이 망설임 없이, 내가 원하는 것을 바로 안다.
한국을 떠나 타국으로 와서 자리를 잡는 것은 마치 육지에 살다가 물속으로 이사 온 느낌과 같았다. 한국 문화 사회 기준에 맞추어 형성되었던 내 안의 페르소나가 물속에서 불려진 떼처럼 벗겨지고 떨어져 나갔다. 적응이 안 되고 괴롭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생각해 보니, 내게 익숙한 페르소나들이 너무 갑자기 떨어져 나가는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감정 때문에 힘들었던 것이었다. 콘도 마리에 방식으로 감정을 느끼며 천천히 뜯어냈으면 더 좋았겠지만, 나는 페르소나가 떨어져 나간 김에 본질을 받아들이고 본질이 나아가는 대로 함께 나아가며 '이게 진짜 나구나' 하고 적응해야 했다. 적응하고 보니, 나는 정말 시원한 삶의 물줄기를 따라 살고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일, 나의 사명이 내 손안에 쥐어져 있었다.
나의 본질이 기쁨으로 하는 모든 일이 나의 사명이다. 그것을 하기 위해 태어났으므로, 그것을 할 때 기쁘고, 그 기쁨은 일을 지속하게 잘할 수 있게 하는 에너지원이 되는 것이다. 본질을 찾는 순간 사명이 보이고, 그때부터 기쁜 삶의 선순환이 일어난다.
나의 본질은 어떻게든 글을 쓰고자 한다. 늦게 본질의 사명을 찾아낸 만큼, 오래 쌓여있던 마음의 말들이 자꾸 아우성을 부리니 매일 글을 열심히 받아 쓰고 있는 것이다. 나의 본질이 글을 써 나가는 대로 나는 내버려 두고 자유를 줄 생각이다. 마음에 수시로 내려앉는 사회 문화의 압박 부담을 부지런히 치워주고, 다시는 가식의 페르소나가 자리잡지 못하게 늘 미니멀리즘이라는 클렌징 크림으로 깨끗이 본질을 씻어주며 살아갈 것이다. 어떤 더 중요해 보이는 일에 대한 유혹도, 글을 뱉어내기 시작하는 내 마음을 막지 못하도록 지켜줄 것이다.
페르소나가 여러 다른 문맥에서 여러가지 의미로 사용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본질(true self)과 다르게 사회적 상황에서 보이거나 보여지는 모습이라는 사전적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대문 사진 출처: Pixabay (by KELLEP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