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 그다음엔?
완벽주의
완벽주의, 수치심, 취약성, 불안과 같은 현대인이 겪는 감정 고통의 근원과 해결방법을 오래 연구해온 심리 전문가이자, 폭발적 조회수를 기록한 테드 강연 <수치심에 귀 기울이기(Listening to Shame)>, <취약성의 힘(The power of vulnerability)> 스타이자,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필름 <나를 바꾸는 용기(The Call To Courage)> 출연자인 브린 브라운(Brene Brown) 박사는, 그녀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저서 <나는 불완전한 나를 사랑한다 (The Gifts of Imperfection),2010>에서 완벽주의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완벽주의는 자기 파괴적인 관념이다. 왜냐하면 완벽한 것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완벽은 이룰 수 없는 목표다. 완벽주의란 완벽하게 보이고 싶은 인식에 더 가까운 무엇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러한 인식은 현실로 이루어질 수 없다. 아무리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어 노력한다 해도 인식을 통제할 도리는 없기 때문이다. Perfectionism is self-destructive simply because there is no such thing as perfect. Perfection is an unattainable goal. Additionally, perfectionism is more about perception – we want to be perceived as perfect. Again, this is unattainable – there is no way to control perception, regardless of how much time and energy we spend trying. - The Gifts of Imperfection -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세상의 본질이 불완전한데, 완전한 이상을 바라고 사는 것은 결국 자신을 상하게 하는 학대 행위라는 것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정보를 바탕으로 불완전한 결정을 내리고, 끝없이 실수를 만드는 존재인데, 실수 없이 실패 없이 늘 완벽하기를 바라고 있다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한 이상향을 설정해 놓고, 끝없이 스스로에게 실망과 혐오를 거듭할 덫을 쳐 놓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완벽주의의 악순환
나는 내가 완벽주의자인 줄 몰랐다. 완벽주의라는 이름은 내게 매우 생소한 이름이었고, 자의적으로 그것을 내가 추구하는 무엇으로 받아들인 기억이 없었다. 완벽주의자는 나 같은 사람보다는 뭔가 일을 꼼꼼히 잘 끝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일 거라고만 막연히 생각했었다.
브라운 박사의 책은 완벽주의가 일을 잘 마무리지으려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꼼꼼하고 성실한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완벽주의는 이룰 수 없는 이상향을 목표로 설정하는 것과 더 가까운 개념이었다. 브라운 박사는 최근 출간한 저서 <마음의 지도책(Atlas of the Heart), 2021>에서 완벽주의가 어디서 태어나는 것인지를 분명히 설명하고 있다.
수치심이 완벽주의가 태어나는 곳이다. 완벽주의는 일을 최고 수준으로 잘해 내고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건강한 노력은 내적 동기에서 나온다. 완벽주의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별 것 아닌 듯 단순해 보이지만 한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잠식해 버릴 수 있는 이 외적 동기에서 나온다. Shame is the birthplace of perfectionism. Perfectionism is not striving to be our best or working toward excellence. Healthy striving is internally driven. Perfectionism is externally driven by a simple but potentially all-consuming question: What will people think?
일을 훌륭한 수준으로 잘 끝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완벽주의자가 아닌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건강한 내적 동기를 가진 일 잘하는 사람일 뿐이다. 문제의 완벽주의를 가진 사람은 나였다. 수치심에 취약한 만큼,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너무 생각하는 완벽주의가, 수치심의 품속에서 태어나 나를 괴롭히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나를 함부로 대하고 여기는 것이 싫었고, 그만큼 나는 아무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완전해 보이는 존재가 되려고 노력했고, 그런 의도를 가진 만큼 실패하고 실수하는 순간들이 감당할 수 없게 괴로웠다. 겉으로는 공학 연구소에서 풍족한 연구비를 따내고 그럴듯해 보이는 연구일을 하면서도, 내 마음은 실패감과 수치심과 결핍감에 몹시 시달리고 있었다. 아무리 노력하고 가방끈을 늘리고, 더 나아 보이는 자리로 올라가 보아도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악순환 인생이었다. 수치심이 남을 신경 쓰는 완벽주의를 부르고, 완벽주의가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을 낳고, 자기 혐오감이 자존감을 땅으로 끌어내리고, 다시 수치심에 고통받는 악순환 그 자체였다.
나는 깨달았다. 그것이 내가 기쁨으로 하고 있는 나의 사명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남자들이 하는 일을 나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 그러니까, 단지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 외적 동기에 휘둘려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순수하게 정말 연구에 의미를 느끼며 그 일을 잘 해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럴듯해 보이는 겉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일을 하며 버티고 있었던 것이었다. 실패와 실수가 내 이미지를 망칠 수 있다는 생각에 몹시 두려워하고 있었으므로, 실험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나는 마음이 크게 무너지는 절망을 경험했다. 그런 실패를 딛고 배우고 성장해 가려는 성장 마인드가 없는 태도는 점점 나를 뛰어난 성공과 거리가 멀도록 밀어냈던 것 같다.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는, 실패 속에서 배움과 성장을 얻지 못하는, 성공하는 과학자의 필수요소인 호기심과 실험 정신이 다소 결여된 그저 그런 세상에 널린 연구원들 중의 한 명 - 다른 누구로 대체해도 큰 상관없는 - 에 머물도록 발목을 점점 끌어당겼다. 게다가 미국이라는 은근한 인종차별적 마인드와 위계질서로 점철된 실험실 환경 또한 나의 힘을 축내고 있었다. 한계점에 이르렀고, 나는 더 이상 홀로 버티고 헤쳐갈 힘을 잃었다.
악순환의 고리를 풀고 나와 재미있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괴로움을 견딜 수 없었으므로, 어쨌든 연구소에서 뛰쳐나오고야 말았다. 쉽게 그만두는 사람으로 '보이기'는 죽기보다 싫었지만, 나는 내면의 생사 갈림길에 서 있는 느낌이었고, 누가 어떻게 보건, 당장 위급하니 '생'을 선택했다. 나의 내면에 손을 들어준 것이었다.
그때는 미니멀리즘을 모르던 때였지만, 나의 행동은 본질을 찾아 본질이 아닌 것을 버린 미니멀리즘적 선택이었다는 걸 한참 후에 깨달았다. 아닌 것을 치워낸 것이다. 왜 그렇게 많이 공부하고 노력하며 세워온 커리어를 하루아침에 버리는지 이해할 수 없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견딜 수 없었으므로, 같은 직종에 있던 친구 지인 교수님들과도 연락을 두절하다시피 하여, 저절로 외부 시선이 끊어졌다. 나의 학자적 성공에 큰 기대를 걸고 있던 아버지와도 그때쯤부터 연락이 뜸해졌다. 나를 위해 많은 희생을 해 오신 엄마를 볼 낯도 없어 엄마와도 몇 년 간은 자주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어찌 보면 이렇게라도 외부 시선에 더 이상 시달리지 않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런 후에, 나는 여러 가지 일을 시도해 보며 좌충우돌 방황기를 가졌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내가 원하는 것들로 내 삶을 채워 나갈 기회를 얻은 것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다 시도해 보았던 것 같다. 미술을 좋아하는 나는 미대에 가서 각종 관심 있는 주제의 수업도 들어보고,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꿈을 안고 가구 가게 인테리어 컨설턴트 - 결국 영업사원- 도 해 보고, 좋아하는 미술관 스태프도 되어 보고, 단편 소설을 써서 공모전에도 내 보고, 혹시 연기에 재능이 있나 싶어 미국 영화 단역 배우에도 도전해 보고, 춤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라틴 댄스 줌바 댄스도 배워보고, 좋아하는 도서관에서 도서관 사서로도 일해 보고, 북클럽도 열고, 신문에 칼럼도 연재해 보고, 번역일도 해 보고, 다시 대학원에 진학해 교육학도 공부해 보고, 교사 시험도 보고, 교사 자격증도 따 보고, 다양한 학교에서 다양한 학생들도 가르쳐 보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불이 꺼지지 않고 끝없이 타오르는 내 안의 열정만이- 외부 시선은 배제된- 내 길을 만들어가, 지금 여기까지 왔다.
지금은 내 안에서 완벽주의를 깨끗하게 비워냈고, 세상에 그럴듯한 무언가를 보여주는데 관심이 없는 상태다. 내가 즐겁게 가는 나의 길, 나의 성장과정에만 관심이 있다. 타인의 시선보다 나의 내면에 훨씬 큰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지금까지 내 내면이 어떤 여정을 거쳐왔는지, 그것을 언어로 풀어내는 일에 큰 재미를 느끼고 있다. 지금은 재미있는 것만 하고, 그 재미가 에너지를 만들고, 그 에너지가 내 길을 열심히 나아갈 수 있게 하고, 열심히 하는 만큼 성장하는 나를 보는 일이 즐겁고, 의미 있고, 재미있고,... 힘차게 선순환하는 즐거운 삶 속에 내가 있다.
내가 하려는 말은 이것 하나다: 완벽주의를 비워낼 때, 삶은 재미있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