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 그다음엔?
혼돈의 시간
내 어릴 적 삶은 혼돈의 도가니였다. 이리저리 종이가 널려있는 책상에 바람이 휙 불어 더 어지럽게 흩어지는 것처럼, 연못에 돌을 던져 흙탕물이 누렇게 일어난 것처럼, 외부 자극이 올 때마다 감정 고통이 동반하는 혼란이 너무 컸었다. 자극이 잘못된 건지 내가 쓸데없이 예민한 건지 구분을 할 수 없고, 어떤 마음이 이런 자극을 만드는 건지, 이 자극이 왜 나를 이렇게까지 아프게 하는 건지 꿰뚫어 볼 수가 없었다. 내 마음이 너무 복잡하게 엉켜있었고, 뭐가 뭔지 모르겠는 혼돈이 눈을 가렸다.
나를 구해내야 했다. 나는 나를 구할 방법을 찾고 또 찾았다.
나를 구하고 돕는 과정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온갖 해결되지 않는 감정과, 어디서 왔는지 모를 기준과 이상향의 관념들이 엉켜있는 것을 풀고, 혼돈의 흙탕물을 청소하고 씻고 닦아내야 하는 방대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글이 내면을 분류하고 청소하다
미니멀리즘이 일을 하는 방식은 이렇다. 나에게 속한 모든 것을 꺼내 놓고, 본질이 아닌 것, 나에게 필요 없는 것은 비워낸다. 나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른 채,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의 내면을 모조리 쏟아부어 놓는 작업이었다. 글을 펼쳐 놓고, 내가 쏟아 낸 한 문장 한 문장을 뜯어 살펴보았다. 각 문장 뒤에 숨은 진짜 내 감정이 무엇인지. 각 문장이 어떤 생각, 어떤 마인드에서 나온 것인지. 자세히 들여다보니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에 얽매여 있는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 무엇을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 거짓말에 사로잡혀 있는지,......
나는 내 글에 답장을 하며, 무엇이 거짓말이고, 잘못된 사고이며, 품지 말고 버려야 할 감정인지를 스스로에게 들려주었다. 본질이 아닌 것들을 비워내는 과정이었다. 내면에 큰 감정이 차오르는 것을 느낄 때마다 나에게 글을 쓰고, 또 나에게 답장을 했다. 나와 내가 한 팀이 되어 감정과 생각을 착착 정리하며 버릴 건 버리고 정리할 건 잘 정리해 나갔다.
맑아진 내면
감정이 오면 글을 쓰고, 감정과 생각 정리하기를 20여 년. 물건 미니멀 라이프는 9-10년 차지만, 내면 미니멀 라이프는 20년 차가 넘는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워낙 혼돈의 도가니였던 내면이라, 청소하는 데, 정리하는 데 다시 리모델링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야 좀 말쑥하고 쾌적한 상태가 된 것 같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숨은 흙탕물이 또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현재는 오랫동안 고요하고 잠잠한 내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감정적 자극이 없는 조용한 인생을 살아서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일을 하고 있으며, 집에 식구들이 북적북적이라 자극이 여기저기서 돌멩이처럼 날아온다. 단, 어떤 돌멩이가 날아와 파문을 일으켜도 꽤 빠른 속도로 잠잠해진다. 흙탕물까지 일지 않고 작은 파문이 일다가 이내 잦아든다.
내가 잔잔하면, 이 돌멩이가 어디서 어떤 마음에서 출발한 것인지 선명히 꿰뚫어 보인다. 타인의 마음에 흙탕물이 이는 것이 보이기도 한다. 타인의 문제는 내가 신경 쓸 일도, 책임질 문제도 아니므로 타인의 시간에 타인이 알아서 성장하게 내버려 두는 자유를 주면 한 줄기 바람처럼 금방 지나가 버린다.
예민하게 자극을 느끼는 것이 내 안에 해결되지 않은 어떤 상처나 트라우마로 인한 문제라면, 나는 그것을 기쁘게 맞아들인다. 나의 내면을 또 한 번 샅샅이 뒤져보고, 어디가 문제였는지 보수공사를 할 기회다. 나의 내면이 한 걸음 더 치유되고 성장 강화될 수 있는 기회다. 또한, 글을 쓰는 입장에서 이 모든 감정들이 내겐 탐구 대상이고 글감이 된다. 그래서 부정적 감정 자극들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내가 무엇을 느껴도, 그것은 내 감정, 내 아름다운 삶의 일부이며, 성장과 회복 근력을 잉태하고 해산하는 값진 기회 탄생의 고통이다.
대문 사진 출처: Pixabay (by qimo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