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 그다음엔?
믿을 수 없던 시간
나는 완벽주의가 만드는 이상향 속에 오래 갇혀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발버둥 쳐도 실패감과 결핍감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내가 이룰 수 없는 이미지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열심히 사는데 아무 열매가 없는 삶, 그런 패턴을 반복하는 것이 신물 나게 지겨웠다. 원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나를 사랑하고 지지하기는 정말 어려웠다.
결핍감은 쉽게 질투심에 빠져든다. 아무에게나 질투를 느끼는 건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이상향을 손쉽게 가진 - 내가 느끼기에 - 대상을 만나면 참아주기 힘든 분노가 불타오르곤 했다. 그들이 자신의 자리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노력으로 삶을 쌓아왔는지를 생각하고 배울 여유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사람들의 호감을 쉽게 얻는 인기 있는 동료부터, 순수한 이미지를 타고나 모두가 좋아하는 연예인까지, 나는 이상적 이미지를 갖추고 많은 호사를 누리고 있는 듯한 모든 것에 적대감을 쉽게 품었다. 남들이 다 좋다고 마시는 커피 한 잔 같은 것에까지도 나는 적대감을 느꼈다. 모두가 우르르 좋아하는 무엇에는 다 불편한 마음이 일었다. 내가 가질 수 없는 이상을 갖춘 것에 대한 분노였다. 실패 실수투성이에, 흠이 많고, 호불호가 갈리는 애매한 대상이어야 마음이 놓이곤 했다.
나의 부족함을 가리고 포장하려 하면 할수록, 온갖 부정적 감정과 이해할 수 없는 심리는 더욱 많이 엉켜 들고, 그런 만큼 마음이 한없이 복잡해졌던 것이었다. 이 복잡한 마음은 좋고 싫은 것도 결정하기 힘들어했으며, 옳고 그른 것도 선명하게 판단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문제는 그런 복잡한 감정 심리에 갇혀있는 나를 나 자신이 믿어줄 수 없다는 거였다. 나의 그런 감정에 대해 복잡하고 비뚤어지고 꼬였다고 생각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나는 금방 알아챘기 때문이다. 그런 시선들이 내 안으로 들어와 나를 구석구석 판단하고 물어뜯기 시작했다. 내 감정은 틀려 먹은 것인지도 몰라. 나는 세상을 제대로 보고 바르게 판단할 수 없는 사람일지 몰라. 겉으로만 멀쩡해 보일 뿐, 나는 정상이 아닌, 많이 망가진 사람인지도 몰라.
믿을 수 없는 삶의 결과
내 생각, 내 판단이 주변 사람들과 다를 때, 나 자신을 믿는 마음이 없으면, 그것은 내가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를 드러내는 증거가 될 뿐이다. 그것은 더욱 나를 완벽주의 이상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며, 수치심과 낮은 자존감으로 몰아가는 감정의 동력이 될 뿐이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주변 자극에 쉽게 흔들리고 휘둘리고 자신을 패대기치는 자기 학대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믿어줄 수 없는 감정을 품고 세상을 보는 그 이상한 시선을 두 눈에서 파내 버리고 싶어 진다.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이 너무 싫어진다.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고 싶어도, 글 속에 자신의 시선이 드러날 것이 두려워 도전할 수가 없다. 나를 믿어 주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마비 상태에 갇혀있는 것과 같다.
그럴수록, 참 희한하게도 사람은 우월감에 목마르게 된다.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른 감정 다른 생각을 가지는 것이 어쩌면 나의 창의력이나 독보적인 개성이 아닐까 하는 한줄기 희망에 내 마음을 다 걸어 보고 싶다. 나는 독특해. 나는 너희와 달라. 나는 특별해. 내가 머리가 비상하게 좋아서 이렇게 남다르게 느끼는지도 몰라. 여기까지 생각의 파도가 솟구치기도 한다. 하지만 솟구친 것은 추락하기 마련이므로, 고립 속에 태어난 이 이상한 자만심은 아무리 해도 뚫어 지나갈 수 없는 현실의 바위에 부딪쳐 피멍이 들곤 할 뿐이었다. 결국 우월감을 느끼고 싶은 마음은 나를 아프게 하는 일로 끝난다. 아무리 열심히 이 수치심을 벗어나 더 올라가 보려 해도, 자꾸 마음 아픈 일, 사람들에게서 고립되는 일만 생긴다.
나를 믿는 삶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은 참 맞는 말이다. 조급할수록 불안할수록, 처음부터 하나하나 다시 풀어 나가는 차분한 인내심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게 결국 제일 빠른 길을 만들기 때문이다. 엉킨 마음의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 가다 보면, 무엇이 나의 눈을 가리고 있었던 것인지, 무엇이 나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인지, 그 실체가 하나하나 드러나기 시작한다.
삶이란 방향을 정하고 시작부터 하나하나 쌓아나가야 하는 것임을 알지 못하고 결과 - 이상향 - 에 속히 이르고자 했던 급한 마음, 결과 중심의 사고가 나를 언제나 불안하고 조급하게 만들고,
완벽한 이상을 목표로 하는 마음이 멋진 이미지를 장착하고 인기를 누리는 사람들을 보면 위협을 느끼도록 만든다.
타인의 시선 - 특히 가족이 나에 대해 품은 이상 - 에 매여 있는 것이 마음에 큰 짐을 만들고, 자유롭게 도전하지 못하게, 실패와 실수로부터 배우지 못하게, 마비된 삶을 살게 만든다.
나 자신에게 실수할 자유를 주지 않는 것이 타인에게도 자유를 주지 못하고, 내 마음도 관계도 다 수치심이 펄펄 끓는 지옥으로 만든다.
타인의 기준과 시선을 내 안으로 가져와 스스로를 미워하는 도구로 쓴다.
이렇게 다 드러낸 후에야,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지 못하게 만드는 우리 삶에 나쁜 영향들을 비워내고, 다음 기회를 기다리며 다시 시작하고 준비해 나갈 수 있다. 참 인생이 살만한 것은, 항상 기회는 우리가 성장하고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 준다는 것이다. 인간은 실수투성이인 것을, 완벽하지 않은 세상은 잘 알고 있고, 모자란 세상은 모자란 인간을 품고 함께 가려한다.
완벽주의 이상을 비워내고 나의 부족함을 긍정할 수 있다면, 나 자신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다면, 도전하고 실패하고 실수 연속의 삶을 살도록 자유를 준다면, 나아가 타인에게도 그러한 실패와 실수의 자유를 준다면, 실수투성이임에도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끝까지 믿어줄 수 있다면, 나의 소신을 단단하게 다져 타인 지옥에 갇히지 않을 수 있다면, 이 세상은 행복감을 느끼며 살아갈 만한 곳이라고 나는 생각하기 시작한다.
대문 사진 출처: Pixabay (by geral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