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를 조금 비워 진정한 유대감을 키우는 삶

미니멀 라이프, 그다음엔?

by 하트온

유대감에 목말라


미국이라는 낯선 곳에 와서, 나는 한국에선 생각할 필요도 없었던 묘한 영역에서 너무 목이 말라 타들어 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본 끝에,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유대감'이라고 결론 내렸다.


너무나 생소한 필요에 당황스러웠다. 생각해보니, 한국에선 어딜 가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래 친구들이나 입장을 함께 하는 각종 공동체 속에 속해 있었기에 유대감이라는 영역이 목마를 새가 없었던 것이었다. 어딘가 소속감이라도 느끼는 방안을 찾자 싶어서 나는 학교, 교회, 각종 수업과 소모임들을 찾아다니고 많은 사람을 만나왔다. 그런 과정에서 깨달았다. 어딘가에 소속된다고 절로 유대감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여기저기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정서적 유대감의 필요보다는 실리적 목적을 위해 얻을 것을 얻어야 하는 행동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 미국이라는 환경에선 학교나 직장을 옮겨 다니는 것이 자신을 위해 좋은 일이다 보니, 더 좋은 기회가 있으면 당장 내일이라도 떠날 준비가 된 사람들이라, 오늘 친하게 이야기 나눈다고 그것이 깊은 우정이나 의리로 발전하게 되는 일은 잘 없었다.


한국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목적에 도움이 되는 관계나, 힘든 거 하소연하고, 수다나 재밌게 떨고 헤어질 사람을 찾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진한 우정을 바랄수록 더 거절감을 느끼고 상처받게 되는 법이다. 처음엔 자존심이 상했다. 한국에선 사람들을 찾아다녀 본 적이 없었다. 항상 내 주변엔 어느 정도의 사람들이 있는 편이었고, 큰 인기는 아니라도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던 편이었으므로, 내가 이렇게 찾아다니고, 거절감을 느끼고 상처받는다는 자체가 용납하기 힘들 정도로 비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점점 사람들에게 우정을 바라지 않는 법을 배워갔다. 마음을 쉽게 내어주지도 않았다. 방어적이 되었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람을 이용하려는 조짐이 보이면, 내가 먼저 사람들을 차단하기에 이르렀다. 전쟁 같은 재앙을 함께 싸워낸 전우애가 아닌 한, 사람은 함께 진정한 유대감으로 나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거나, 어딘가 내가 모자라 사람들과 유대할 수 없거나, 미국이라는 곳의 문화가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거나, 어떤 이유든 안 되는 일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진정한 유대감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가족을 이루면서, 가족과의 유대가 깊어져 가면서, 유대감은 서로 사랑하는 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서로의 마음에 서로를 위한 자리를 만들고, 서로에게 진실한 모습일 수 있을 때, 진실된 관계가 만들어질 때, 거기에 유대감이 탄생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성경의 비유를 빌자면, 다음 요한계시록 (3장 20절) 구절이 함께 진정한 유대감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마음의 문을 열고,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이 이 한 문장 속에 다 들어 있다. 20대에 이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데, 왜 문을 두드리고, 문을 열고, 함께 먹는지, 그 모든 과정이 무슨 의미인지. 이 말은 도통 알 수 없는 수수께끼처럼, 내게 익숙한 보편적 문화와는 너무나 다른 남의 나라 이야기인 것처럼 다가왔다.


지금에 와서야 나는 이 말의 의미가, 나를, 나의 것을 조금 비워내, 타인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그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사랑의 관계를 이루어 가는 과정임을 깨닫는다.


내가 남의 집 문을 두드릴 수도 있지만, 남의 집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나는 거절감과 소외감을 느끼게 될 순간이 많을 것이다. 내가 남의 집 문을 두드리는 것은, 나를 위한 자리를 만들고 삶을 공유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곤란해하고 부담스러워하는 표정을 마주하게 될 수밖에 없다. 내 면전에서 문을 쾅 닫아걸거나, 아예 문을 열어주지도 않는 차디찬 거절감을 당하게 될 수도 있다.


다행히 또 다른 방법이 있다. 타인을 위해 내 것을 비우고 나눌 준비를 하고, 내 문을 두드리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다. 내가 더 손해를 보는 방법일 수도 있겠지만, 덜 상처받을 더 안전한 방법이기도 한다. 사랑의 관계를 이루어 낸다면, 내 것을 조금 비우고 나눈 것은 전혀 손해가 아니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아무나 들어오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니 음성을 먼저 듣고 어떤 사람인지를 잘 살핀 후에 문을 열어야 한다. 사랑의 마음으로 다가온 사람인지, 나를 이용하고 물건만 팔러 온 잡상인인지, 훔쳐 가려는 도둑인지, 뺏고 상처 내려는 강도인지 잘 가려내야 한다. 잘 살펴, 사랑의 마음으로 다가온 사람이라면 문을 열고, 맞아들인다. 환영하고 접대한다. 함께 시간을 보낼 공간과 대접할 음식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서로에게 마음자리를 내어주고, 서로의 진실된 모습을 함께 나눌 때, 거기에 진정한 유대감이 자란다.




진정한 유대감을 키우는 삶


가장 처음 초대해서 대접하고 유대를 이루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나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한 사람은 그 어떤 좋은 사람과 친해져도 뒤에서 비뚤어진 마음을 품는 통제불능의 자아 때문에 결국 관계를 망쳐버리게 된다. 내면 자아는 자신을 방치하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유대감을 느껴보겠다고 설쳐대는 꼴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잘해 보려 해도 상대의 단점을 부각해서 삿대질을 해대는 내면 때문에 결국 우정이 깨지고 만다.


나를 먼저 품고, 나를 먼저 사랑해야 한다. 나를 먼저 대접하고 돌보고 함께 먹고 마시며 유대감을 키워야 한다. 나 자신의 모든 단점과 실수를 사랑으로 바라봐주어야, 내 속의 내면 자아도 단점 많고 부족한 타인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며 품을 수 있다. 나와 내가 서로 사랑하는 손발 척척 맞는 한 팀이어야만 타인과 사랑과 우정을 나누고 유대감을 키워가는 이 막대하고 막연한 일을 끈질기게 이루어 낼 수 있다.


서로가 부족한 모습 그대로 받아주고, 서로를 위해 따뜻한 마음의 아랫목을 내주는 그것이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서로를 사랑해야 서로를 믿을 수 있고, 믿을 수 있어야 서로가 힘을 합치고 유대할 수 있다. 어떤 일에건 한 편이 되어 나아갈 수 있고, 서로를 두둔해 싸워줄 수도 있다.


때로, 정말 아닌 것 같은 사람인데, 나보다 훨씬 못한 사람인 것 같은데, 주변 사람들과 의리 넘치는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다. 사람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며, 완벽한 존재를 찾지 않는다. 사람은 부족한 나를 받아주고 마음속에 자리를 내어주고, 또한 자신의 부족함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사람과만 그런 관계를 맺어갈 수 있는 것이다. 나보다 훨씬 못한 사람인 것 같지만, 진실되게 사랑하고 유대 관계를 맺는 일에는 누구보다 능숙한 사람인 것이다.


그런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 가는 비결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내 공간과 시간, 물질을 조금 비워내, 상대를 위한 공간과 시간과 선물을 만들어 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타인을 위해 나를 비운다는 것은, 조금 손해 보는 일 같지만, 상대의 마음을 얻고 진정한 유대감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그 자리에 사랑 나무가 자라 엄청나게 달콤한 열매를 주렁주렁 끝도 없이 많이 맺을 일이다.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PIRO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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