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있는 밤, 별이 없는 밤

내 마음을 여행 중입니다

by 하트온

별이 있는 밤


내가 별을 처음 본 것은 내 나이 5-6세쯤 되었을 때였다. 우리 가족은 작은 연립주택에 살다가, 아담하고 알찬 단독 주택 - 마당 한편에 셋집까지 딸린 -으로 이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던 때였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시골에 살던 삼촌들과 할머니가 우리 집으로 와서 함께 살기 시작했던 때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갈등과 문제가 항상 있었어도, 아버지의 사업이 승승장구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집안 공기가 대체로 희망에 부풀어 있던 때였다.


그 밤에 삼촌들과 함께였는지 아버지도 함께 계셨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는 여럿의 남자 어른들과 옥상 위에 있었다. 마당에서 시작되는 계단으로 올라가는 옥상에는, 아버지와 삼촌들이 시멘트와 쇠막대기를 융합해서 만든, 철봉이나 역기 같은 운동 기구들이 있었고, 비닐 장판으로 표면을 마감한 다용도 평상도 있었다. 옥상에는 빨랫줄도 높고 길게 쳐져 있었는데, 소낙비가 후드득 떨어질라 치면 다급하게 옥상으로 빨래 걷으러 가는 엄마의 뒷모습도 기억이 난다. 그해 여름밤엔 유독 남자 어른들이 자주 옥상에 올라가 운동하며 시간을 많이 보냈던 것 같다.


그날도 운동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별 다를 게 없었다. 그날 밤이 유독 기억에 남아 있는 건, 그날은 다른 날들보다 꽤 많이 늦은 시각이어서 깜깜했기 때문이다. 왜 그런 늦은 시간에 어른들이 모여 운동을 하고 있었을까. 어린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어른들은 몹시 기분이 좋았고, 덕분에 내가 느끼는 밤공기도 무척이나 상쾌하고 유쾌했다. 평소 심한 겁쟁이였던 내가 하나도 무섭다고 느끼지 못할 만큼 어떤 신나는 느낌으로 가득했다.


내가 옥상 평상 위에 벌러덩 누웠을 때, 하늘을 촘촘하게 채운 그 무수한 별들이 그 찬란한 빛을 내 어린 마음에 끝도 없이 쏟아부었다! 그 밤이 그리도 검었기 때문에, 평생 잊을 수 없는, 영혼이 떨릴 만큼 신비롭고 아름다운, 밤하늘을 가득 채운 빛나는 보석들을 목격한 것이었다.


저 별들이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언제나 저 자리에 있었던 것인지, 앞으로도 있을 것인지, 나는 너무나 궁금했다. 나는 겁이 많은 아이라, 아무리 궁금증이 일어도, 혼자 밤에 별을 보러 옥상에 올라간다거나 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어쩐 일인지, 그 이후론 어른들도 그런 깜깜한 시간에 옥상에 올라가는 일이 없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내가 별이 - 뽑기에나 등장하는 모형 정도가 아니라- 밤하늘에 실재하는 실체임을 목격한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별이 없는 삶


이후, 우리 집엔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결국 중학교 때부턴 단독 주택을 떠나 고층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아버지의 사업은 완전히 회생 가망이 없이 파산한 때였고, 우리 집 공기는 절망감과 패배감으로 습하고 눅진해졌다. 아버지는 '사업 말아먹고 매일 술이나 마시는 폐인'이 되었고, 나와 동생은 '망한 집 애들'이 되었다.


살던 동네를 떠나, 비슷비슷하게 생긴 아파트 건물이 빽빽한 아파트 단지로 들어간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었다. 서로 이웃을 잘 모르는 아파트는 환한 낮에도 깜깜한 밤에도 집에 들어앉아 있기 좋았다. 모든 음식은 배달이 되고, 아파트 상가 안에서 대부분의 생필품을 해결할 수 있어, 아파트 밖으로 나갈 일도 거의 없었다.


다만, 어린 마음에 나는 전에 살던 '우리 집'이 너무 그리웠다. 셋집이 딸린 그 아담한 단독주택에 살며 큰돈을 모은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부터 건축가를 찾아가 직접 설계에 참여해서 새집을 지었었다. 나와 동생은 아버지가 지은 그 집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그 집은 아버지가 동경하던 유럽 고전 감성을 다 담은 2층 집이었는데, 지금도 손에 잡힐 듯이 그 집의 구조와 마감 재료의 문양 같은 것들이 세세히 기억난다.


오랫동안 그 집을 그리워했다. 그 집을 찾아가 내 방을 찾아 헤매는 꿈을 수도 없이 꾸었다. 몇 번이나 그 집 앞을 찾아가 서성이기도 했다. 한때는 내가 돈 벌어 다시 그 집을 되찾겠다고 마음먹었을 정도로, '우리 집'을 강제로 잃어버린 것이 나에게는 오랫동안 큰 아쉬움과 슬픔으로 남았었다.


그러다가,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또 한 번 더 먼 곳으로 이사를 갔다. 조금씩 점점 더 가난해져 가고 있었다. 학교에서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들과 자석처럼 끌려 뭉쳤다. 우리의 삶을 곤경에 빠뜨린 사회를 불신하고 있던 우리는, 쉽게 학교와 교사들까지 불신했다. 학교도, 교사도, 주입식 교육도 믿지 말고, 우리가 주도하는 능동적인 공부를 하자며 우리끼리의 공부를 시작했다. 어쩌다 보니 우리들은 어느새 유물론과 마주하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들의 아버지들에게 다시 일어날 기회를 주지 않고 버려두는 사회를 원망하던 차에, 우리의 모든 슬픔과 원망과 미움을 사회 구조의 부조리와, 부르주아 집단에게 쏟아부을 수 있게 미워할 대상을 정해주는 공산주의와 유물론이 반가웠다. 지금 생각하면 부르주아 집단에서 떨어져 나가자 마자 부르주아를 미워하기 시작한 나라는 인간의 얄팍함에 치를 떨며 이불 킥 할만한 행적이지만, 그땐 그게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게 중심을 잡아주는 무엇이었다.


그렇다고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공부해야 하는, 고등학교 생활 자체를 거부할 순 없었다. '강제 자율 학습'이라는 모순 가득한 밤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던 어느 밤, 나는 문득 밤하늘을 올려다 보고 깜짝 놀랐다. 별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더 이상 밤이 깜깜하지 않았다. 별빛이 쏟아져내리는 밤을 보았던 그 어린 시절에 비해, 밤은 너무 환해졌다. 불빛이 너무 많아졌다. 차도 많아졌고 상점도 많아졌고, 밤늦게까지 불을 밝혀 놓는 네온사인 가득한 건물도 너무 많아졌다. 생각해보니 내가 겁 없이 밤에 혼자 돌아다닐 수 있게 된 것도, 밤이 환해지는 만큼 안전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대가 되고, 어른의 삶을 시작하면서 때때로 별이 그리웠다. 하지만 별이 그립다고 해서 별이 있는 삶을 선택할 마음은 없었다. 별을 선택하는 것은, 이제 어린 시절 살던 집에 찾아가는 것 같은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도시 시설이 구축되지 않은, 야생의 자연을 선택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도시 문명이 주는 편리를 포기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겁쟁이인 나에겐 환한 밤의 안전한 느낌을 포기하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별 대신 편리와 안전이 있는 곳을 골라다니며 내내 별을 잃은 도시 경계선 안에 머물렀다.



그래도 별이 그립다


별이 가득한 밤을 본 기억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나의 아이들은 밤하늘에 별이 가득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와 사진으로만 안다. 별빛 축제가 벌어지는 듯한 밤의 그 느낌을 알게 해 주고 싶어, 과학관 플라네타륨 별 관측 프로그램에 참여도 시켜봤지만, 그건 자연이 주는 느낌과 몹시 달랐다. 인공적으로 제작된 가상공간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별이 있는 밤, 생생한 자연의 시간을 선물하고 싶지만, 도시 인프라가 없는 곳으로 무작정 떠날 마음을 좀처럼 먹을 수 없다. 생면부지의 장소에서 깜깜한 밤에 나와 돌아다니는 선택도 할 수 없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내 삶의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동안 너무나 많은 것이 변하기도 했다. 별이 보이다가 안 보이는 변화. 별 볼 일 없어도 잘만 살아가는 현대라는 시간. 이 시대는 이제 천천히 흐르는 게 아니라, 어딘가로 미친 듯이 질주하고 있는 듯 느껴진다. 앞으로는 어떤 변화들을 맞이하게 될까. 별이 있어도 없어도, 나는 부족한 결핍 투성이고, 삶은 여전히 모르는 것으로 가득한 대혼란이다. 큰 차이가 없는 듯하다. 적어도 먹고사는데 만큼은 아무 지장이 없다. 그럼에도, 중헌게 뭔지 아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나는 별이 내 작은 마음에 넘치게 쏟아지던 그 밤이 무척 그립다. 별이 너무 많던 그 밤이 너무너무 그립다.



대문 이미지 출처: <Starry Night> by Vincent Van G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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