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여행 중입니다.
타인을 사랑할 수 있을까
자신의 가족도 사랑하기 힘들어 허덕이는 게 인간의 민낯 현실이다. 그런 처지에 가족 외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하늘의 별따기만큼 말도 안 되는 일일까. 아무리 막연하고 힘들어도 '타인을 사랑하기'라는 나의 목표를 내 머릿속에서 지울 수는 없다. 그것을 이루지 않고는 진정 행복해질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 그것이 내가 이 인생을 사는 동안 풀어야 할 진짜 숙제라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고 내내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 막연한 목표를 위해 나는 무엇을 어떻게 시도해 보아야 하는 것일까.
나는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과 사랑이라는 것이 결국은 같은 것을 원하는 심리적 욕구에서 나온 두 가지 이름 - 이름만 다를 뿐 본질은 같은 -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행복에 있어 감정을 떼놓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에 있어서도 감정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실은 행복도 사랑도 내게 주어진 대상을 즐거워하는 기쁜 감정인 것이 아닐까. 행복이 주어진 삶을 즐거워하는 감정이라면, 사랑은 내게 온 사람을 즐거워하는 감정이 아닐까. 행복을 추구하는 우리는 삶이 즐거워할 만한 것이 되도록 애를 쓰기도 하지만, 주어진 삶을 감사하고 즐거워하는 법을 배워야 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곁에 두고 즐거워할 만한 좋은 사람을 만나려고 노력도 해야겠지만, 내게 온 사람을 감사하고 즐거워하는 법도 배워야 하는 게 아닐까.
나의 특별한 이모부 이야기
나에게는 아주 둘도 없이 특별한 이모부가 계시다. 이모부는 특별히 유복한 운을 타고 나신 것도, 남달리 교육을 많이 받으시거나 경제적으로 성공한 분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내게 몹시도 특별한 분인 이유는, 이모부는 내가 태어나서 본 사람 중 가장 사람을 잘 사랑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이모부는 내가 미국에 오기 10여 년쯤 전에 미국에 온 가족을 데리고 우리 집안 최초로 미국 이민을 감행하셨다. 이모부의 옛 직장 동료 친구분이 먼저 미국에 이민을 와서 자리 잡고 계셨는데, 이모부의 이민 절차 전과정을 도울 테니 여기 와서 같이 사업을 하자고 계속 설득하셨다고 한다. 이모부는 당시 대기업에서 기술자로 일하고 계셨는데, 회사에서 곧 퇴직을 권유할 것 같은 분위기 - 회사에서 쓰는 기계들이 모두 디지털 방식으로 교체되고 있어 이모부와 같은 아날로그 기계 기술자들이 자리를 잃기 시작하던 시기 - 이기도 했고, 남의 회사에 몸 바칠 만큼 바쳤으니 이젠 자기 사업을 좀 시작해 보고도 싶고,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이 자녀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 같기도 해서 결국 온 가족이 미국 이민을 가기로 과감히 결정을 했다. 하지만, 이모부가 미국에 도착해서 발견한 것은, 그 친구분이 이모부가 보낸 전재산을 다 들고 잠적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한국에 있었던 나는, 그 말을 전해 듣고 너무나 이모 가족이 걱정되었다. 이모가 미국에서 빈털터리로 어떻게 삶을 이어나가실 수 있을지 몹시 걱정이 되었다.
이모부와 이모는 온갖 허드레 일을 전전하며 삶을 일구어 내셨다. 내가 미국에 와서 이모 가족을 만났을 때 즈음엔, 좋은 동네에 마당이 예쁜 독채 집을 마련하여 다섯 식구 오손도손 살고 계셨고, 집에 왕래하는 친구들도 많으셨다. 그간의 사연을 듣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이모부가 그 사기 치고 잠적했던 친구와 다시 연락을 하신다는 거였다. 친구가 오죽 힘들면 그랬겠나 이해를 하신다는 거였다. 자신의 삶을 곤경에 처박은 친구를 한 번도 미워하거나 원망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이모부는 티 없이 맑게 웃으셨다.
손해 보고 살면 큰일 나는 줄로만 알았던 20대의 나는, 속으로 이런 바보 호구 같은 사람들이 있나 하는 생각이 올라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이모부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왜 사기꾼 친구를 다시 받아 주는지 물었다. 이모부는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하셨다. 행복하려면 마음이 편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이 가장 편해지는 쪽으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사람을 좋게 볼수록 마음이 편하다고 하셨다.
나에게 사기 쳐 내 인생을 수렁에 빠뜨린 나쁜 놈, 원수까지 좋게 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목구멍을 뚫고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이모부의 환한 미소가 뿜어내는 빛이 너무 강렬해서, 묻고 따지고 싶은 내 성질머리는 점점 머리를 숙이고 사그라졌다.
어떤 사람이건, 사람을 좋게 보는 그 시선이, 그 고생을 하고도 그 인자한 웃음을 잃지 않고 지켜낸 것이었음을 나는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사랑을 받는 상대방에게도 유익한 일이겠지만, 내 마음 내 즐거움을 지키는 나를 사랑하는 가장 좋은 길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모부가 보여주신 세 가지 비결
사르트르가 그의 희곡을 통해 언급했던 '타인 지옥'이라는 고통에 갇히지 않도록, 남의 시선에, 남을 원망하는 마음에 사로잡혀 자신을 학대하지 않도록 내 마음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 사랑인 것이 아닐까. 내 마음을 잘 지키는 사람, 나를 가장 잘 사랑하는 사람이, 타인을 잘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이모부가 자신의 마음을 지키고 사랑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세 가지 비결을 본다
첫째, 이모부는 자신이 피해를 당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잘 몰라서, 그 친구에게 너무 의존했던 스스로의 잘못만을 생각했다. 스스로 은행 어카운트를 개설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그 친구가 다 알아서 해 주기를 바라며 한꺼번에 너무 돈을 많이 보내, 형편이 어려운 친구가 유혹을 느끼도록 상황을 스스로가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실수와 실패에 생각이 묶이게 두지도 않으셨다. 몰라서 실수했지만, 실수로부터 큰 교훈을 배웠으니, 큰 레슨비를 지불한 셈으로 여기고, 툭툭 털고 일어나셨다. 이후 미국에서 여러 가지 일을 시도하여, 나머지 인생을 사는데 꼭 필요한 생활 기술을 잘 배우게 되었고, 아이들이 빨리 성공해서 집안을 돕겠다는 마음으로 모두 열심히 공부하여 잘 되었으니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생각하셨다.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가족이 단합해서 상황을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서로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얻었으니,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하셨다.
둘째, 이모부는 마음의 평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마음의 평화를 지키면 행복도 사랑도 지켜낼 수 있다고 믿으셨다. 마음의 평화가 깨져버리면, 이모부가 지금까지 이룩한 화목한 가정도 깨지고, 그러면 지금 누리는 행복과 사랑도 다 무너질 수 있다고 판단하셨다. 그래서 그 무엇보다 마음의 평화를 지키고자, 마음의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쪽으로 생각을 하고, 결정을 내리고자 노력하셨다. 어떤 상황에서도 가족 간의 화목과 단합을 가장 우선으로 추구하셨고, 절망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성실과 끈기로, 온화한 사랑으로 아버지의 책임을 다 하심으로써, 자녀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다.
셋째, 이모부는 그 누구에 대해서도 좋은 점에 대해서만 생각하셨다. 친구가 돈을 들고 잠적한 것에 대해서도, 양심의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가족을 위해 노력한 사람이라고 하셨고, 친구가 다시 연락을 했을 때도, 쉽지 않은 일에 용기를 낸 사람, 본심은 착한 사람이라고 하셨다. 그런 이모부 곁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그 자녀들도 아버지를 몹시 사랑하여 틈나는 대로 곁에 모여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애를 쓰고, 이모부의 은혜를 입고 삶을 일으킬 수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문안 인사가 끊이지 않으며, 항상 이모부 가까이 있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 늘 돈독하고 훈훈한 유대감 속에서 살아가신다.
사랑하는 훈련
나는 많은 순간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뻥뻥 뚫고 들어오는 공격을 당한다. 결핍감, 수치심, 열등감,... 이런 것들이 내 눈을 가려 마음을 무방비 상태로 만든다. 뚫려버린 마음은 사랑할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연약해져 버린 그 자리는 상대에 대한 원망, 적대감을 품으며 버틸 수밖에 없다.
내가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내 마음이 강해져서 타인을 탓하는 마음으로 치닫지 않고, 내 인생에 내 선택으로 일어난 모든 일을 내가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야 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내 마음이 어떤 공격에도 거뜬히 편안하고 단단한 평화 상태를 유지해야만, 타인의 실수 많은 인간다운 모습 그대로를 좋게 보고 즐거워하는 사랑을 할 수가 있을 것 같다.
우선 나는 내가 타인을 원망했던 모든 퀘퀘 묵은 일들부터 타인에게 돌렸던 책임을 내가 다시 가져오는 작업을 시작해 보려 한다. 내가 미워했던 모든 사람의 좋은 점을 헤아리는 일을 시작해 보려 한다.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의 좋은 점을 보는 작업을 시작해 보려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상대의 좋은 의도를 부각해서 생각하는 일부터 시작해 보려 한다.
인생에 쉬운 게 없다.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이 훈련과 연습을 필요로 하는 고된 과정이다. 행복도 사랑도 그렇다. 사고 훈련을 필요로 한다. 좋게 해석하는 사고의 습관이 잡혀야 좋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좋은 감정을 품을 수 있다. 나도 타인을 대할 때 이모부처럼 환한 웃음이 터져 나오는 그런 감정을 품고 싶다. 그런 반갑고 기쁜 웃음을 품을 수 있는 마음 바탕을 가꾸어 가고 싶다.
다행히도 인간의 뇌는 끊임없이 변할 수 있다고 한다.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가득 품는데 익숙한 나지만, 여기서 멈추거나 포기할 마음은 없다. 내 삶은 이미 사랑을 향하여 나아온 지 오래다. 사람을 좋게 보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까지 나는 내가 힘닿는 데까지 끝없는 변화의 노력을 해 볼 참이다.
무엇보다 나는 내 삶을 사랑하고 있다. 내 삶을 사랑하기에 행복을 바라고, 내 삶에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해 즐겁고 설레는 감정을 품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세상을 향해 사랑의 기쁜 감정이 샘솟을 때까지, 언제까지나 내 마음을 보수하며, 사람을 향한 내 시선을 조율해 나갈 것이다. 삶에도 글에도 따뜻한 사랑의 감정만이 그득하기를 꿈꾼다.
대문 사진 출처: Pixabay (by Leroy_Skalst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