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것과 있는 것

내 마음을 여행 중입니다

by 하트온

내 인생에 없는 것들


내 인생에는 많은 것이 없지만, 그중에서도 너무 원하는 데 없어서 아플 만큼 아쉬운 것들이 있다. 그토록 바라는 것들 중에서도, 가장 필요했던 것은 내 감정에 대한 부모의 관심과 이해, 그리고 '나'라는 사람 자체를 기뻐해 주는 자애로운 사랑이었다. 나는 이것을 나의 엄마에게 너무나 갈구했다. 무서운 아버지에게 가까이 갈 수 없는 만큼, 엄마에게 더욱 집착하며 내가 원하는 사랑을 요구했다. 내가 그녀에게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정확히 인지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던 어린아이 시절부터 나는 엄마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누군가를 졸졸 쫓아 다니는 사람은 감정적으로 너무 궁핍해서 얻어먹으려고 손 내밀고 구걸하는 사람인 것이다.


엄마는 내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없는 사람이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전쟁 통 아수라장 시절에 태어난 그녀는, 산모가 잘 먹지 못하고 겨우 낳아 곧 죽을 거라 생각하고 방 한 구석에 밀쳐 놓은 아기였다고 한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아기를 부모는 귀하게 여겼지만, 아래로 3명의 동생이 줄줄이 태어나고, 먹고살기 바쁜 시대에 부모의 관심을 충분히 받을 도리는 없었다. 부모의 인정과 사랑을 조금이라도 맛보려면, 부모를 돕고 헌신적으로 동생을 잘 돌보는 착한 아이가 되는 길 밖에 없었다. 더 잘 돕고 집단을 위해 더 희생할수록 부모뿐 아니라 사회가 나서서 더 반기고 더 칭찬했다. 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 또한 엄마의 순종과 희생 위에 군림하고 싶어 하긴 마찬가지였다. 자존감 낮은 남편의 성질을 건드릴까 봐 살얼음 인생을 살아오며, 그녀는 자신을 완전히 부정하고 희생하는 삶, 타인의 필요만 살피며 열심히 일하는 삶을 하늘 끝까지 쌓아왔다.


자신을 부정하고 자신의 감정을 억눌러온 사람에게 자녀의 감정은 반갑지 않다. 어떻게든 못본 체하고, 별거 아니라는 듯 관심을 돌리고, 안되면 도망가고 싶다. 나는 내내 엄마에게 목마름을 호소하고 갈구하다, 얼마 전에야 깨끗이 포기를 했다. 엄마는 내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없는 사람임을 선명히 깨닫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내 인생에 부모와 정서적 연결은 '없는 것'임을 이제는 제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없는 것이 수치스러워서


나를 따뜻한 시선 만족하고 흡족해하는 시선으로 바라봐 주고, 내면을 지혜와 사랑으로 보살펴 주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서부터 나는 수치심과 결핍감을 키우기 시작했었던 것 같다. 드라마나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그려지는 자상하고 이상적인 부모를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 소위 '사랑 듬뿍 받고 자란 건강한 사람'이 못된다는 설정을 나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것은 나의 내면에 새겨진 - 내 인격적 한계를 의미하는 - 선명한 '주홍글씨'가 되었다. 소중하게 고이고이 자란 -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양육 환경을 가진 - 사람들이 가득해 보이는 사회 앞에서 나는 주홍글씨가 불러오는 수치심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수치심과 결핍감은 금세 분노가 되고 적대심이 되었다.


나는 수치스러운 빈 구멍을 누구에게도 드러내기 싫었다. 아무에게도 부모에 대해, 내가 부모에 대해 느끼는 결핍감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 구멍은 사라지지 않고,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커지고 깊어져 갔다. 급기야는 내가 정말 망가진 이상한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런 구멍이 없을 다른 사람들과 자꾸 비교가 되고, 불량품이 완제품인 듯 가식을 떨고 거짓 포장을 하고 살아가는 것처럼 죄책감이 들고, 누구 따라 하다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은 불안감도 달라붙었다.


내 안의 구멍은 이제 모든 종류의 부정적 감정을 다 끌어당겨 모으는 집합소가 되었다. 내 부모에 대한 원망과 수치심은 더 커져갔고, 부모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들은 이제 세상 모든 사람들을 향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다 싫었다. 결국 사람들은 다 각자의 방식으로 망가지고 미친 존재인 게 아닐까 의심까지 품었다.


자녀를 낳고서야 나는 깨달았다. 내게 주어진 인간 - 핏줄로 연결되어 피할 수 없는 - 이 내 눈에 완벽하지 않을 때, 어떤 감정을 가질 것인가를 내가 선택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잘못을 크게 깨달았다. 부모의 인생을 감히 내 기준으로 재단하고 부끄러워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잣대로 자식을 재단하고 부끄러워하는 길을 걷기 시작하려는 나 자신을 보았다. 사람의 인생을 급을 나누고 판단하고 재단하는 내 안에 내재화된 서열주의 차별주의를 보았다. 감히! 감히! 감히!



내 인생에 있는 것들


애초에 누군가의 인생을 내가 부끄러워할 자격이 없었다. 아무리 가깝다고 해도 말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살아내 보려고 발버둥 친 사람들이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배울 것을 배워내고 스스로를 성장시키려고 애썼던, 무엇보다 자식을 먹여 살리고 공부시키려고 최선을 다했던 사람들이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인생 설정을 부끄러워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것은 내 잘못도 내 부모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냥 그들에게, 또 나에게 주어진 환경이었다. 여기서부터 어떻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내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이냐가 중요한 것이었다. 아무리 부모 자식이라도 서로의 길, 서로의 삶을 재단하고 판단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 아니다. 나는 나만 잘 성장시키고 내 삶만 잘 살아내면 되는 거였다. 내가 가족에 대해 할 일은 그들을 사랑할 방법을 찾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법을 배워나가면 되는 거였다. 어리석게도 나는 수치심에 몹시 휘둘려 중요한 것을 다 놓치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젠 더 이상 내 인생에 없는 것을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수치심을 키우지 않기로 한다. 자꾸 생각하면 커지고, 생각하지 않으면 작아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없는 것에 대한 생각에 마음자리를 내주지 않을 생각이다. 없는 것에 대한 미련을 떼 내는 방법으로 나는 나에게 있는 것들을 집중해서 강조해서 생각하기로 한다.


내 감정을 이해하고 돌봐주는 부모는 없었지만, 나에게 깨끗하고 부드러운 살이 가득한 생선 몸통을 떼 주는 부모가 있었다. 무엇보다 위하고, 보호하고, 먹이고, 내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깊이 품었던 부모가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자녀를 사랑으로 수용하는 부모 역할을 할 기회가 있다. 삶의 매 순간을 같이 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함께 삶을 고민하고 성장하고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돌봐주고 관심 가져주고 믿어주고 사랑해 줄 수 있는 든든한 내가 있다. 이제 충분하게 다 있다. 내 마음의 검은 구멍이 점점 줄어들고 메워져 가는 느낌이 든다.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CDD20)


이전 05화별이 있는 밤, 별이 없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