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에 관한 에세이
에세이가 뭔데?
나를 에세이 작가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내내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이런저런 유명인이 내렸다는 에세이의 정의와, 프랑스어에서 essay가 유래됐니 어쩌니 하는 에세이의 역사를 읽고 감이 잡히는 듯하다가도,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면 종종 길을 잃고 글에 자신감을 잃었다. 다른 에세이 작품들을 보면 더 마음이 심란해졌다. 저 사람 글처럼 실생활 대화가 좀 들어가야 하나? 저렇게 유명한 남의 말을 좀 인용해야만 하나? 중후한 철학서 느낌 나게 기승전결, 논리가 딱딱 들어맞게 써야 하나? 공모전 에세이 대상 작품들처럼 눈물 쏙 빠지게 마음을 울리는 감동적인 수기여야만 하나?
북클럽 참여 활동 차, 고미숙 작가의 <고미숙 글쓰기 특강: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라는 책 -고전 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열정적 견해를 담은 글쓰기 지도서 - 을 크게 공감하지 못하며 억지로 슬렁슬렁 읽다가, 2부 3장 에세이 쓰기 강의 편에서, '자기만의 사유를 그려보라'는 표현을 보는 순간, 나는 이 책 - 내가 절대 스스로 고르지 않았을, 내 필요와 취향에서 몹시 벗어나는 -이 왜 나에게 왔어야 했는지를 깨달았다.
오래 고민해왔던 주제, 에세이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깨달음이 마음에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또한 내가 에세이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데 왜 그리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도 깨닫고 있었다.
에세이는 그냥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내 생각의 무늬, 내 생각과 감정이 글로 그리는 그림인 것이었다. 형식도, 내용도, 문체도, 그 어떤 것에도 타인이 그리는 스타일에 연연할 필요 없이, 내 스타일대로 쓰는 글. 내 인생, 내 감정, 내 사고 흐름의 본질이 흘러나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에세이인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의 에세이를 열심히 읽으며, 그 글을 따라 쓰려고 하는 것은 진짜 에세이 작가가 되려는 공부가 아닌 것이다. 유명화가의 그림을 똑같이 모방한다고, 내가 유명화가 반열에 오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유명화가 반열에 오르기는커녕, 남의 그림이 내 내면을 장악해 버리는 순간은 바로 내 그림이 발견조차 되지 못하고 어두운 뒷골목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살육당하는 순간인 것이다.
나만의 무늬, 나만의 그림, 나만의 글을 찾아낼 때, 누구나 에세이 작가가 될 수 있는 거였다. 물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더 큰 인기를 누리는 작가가 있고, 아닌 작가가 있겠지만, 나만의 글을 쓰고, 나만의 무늬를 그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글의 가치에 있어서는 누가 더 좋은 에세이를 쓴다라고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누구의 인생이 더 좋은 인생이다라고 감히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물론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세상은 돈 많이 버는 얼굴이 예쁜 얼굴이고, 돈 많이 버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꾸역꾸역 우겨대겠지만 나는 그 생각에 조금도 동의할 마음이 없다.
내 에세이를 잘 쓰기 위해서는, 내 생각, 내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답게 쓰면 되는 거였다. 형식도 내 스타일대로 내 생각의 흐름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스타일과 형식을 취하여 쓰는 되는 거였다. 쉼표 하나도, 따옴표 하나도 일반적인 문법 맞춤법, 남들이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연연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내 숨의 호흡과 내 목소리의 톤을 글로 재현해 내는데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창의적으로 이용하면 되는 것이었다. 어떤 수준의 어휘를 쓸까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역사가 담긴 나의 언어를 그대로 옮기는 데 초점을 맞추면 되는 일이었다. 흥미롭게 시작해서, 끝까지 꼼꼼하게 마무리만 잘해주면 되는 거였다.
에세이 작가가 되자!
오늘부터 나는 나를 에세이 작가라고 불러주기로 결심한다. 이왕 불러주는 김에 독보적이고 훌륭한 에세이 작가라 불러주겠다. 나는 거침없이 전보다 더 자신감 넘치게 나만의 에세이를 쓰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독특한 무늬가 정신없이 현란한 전무후무한 에세이 스타일을 구축해 갈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쓰는 글이 적어도 나와 나의 독자들에게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새로운 최고의 에세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또한, 아직 글쓰기를 머뭇거리고 있는 나의 글동무들에게 간곡히 호소하고 싶다. 당신만의 독보적인 에세이를 보여달라고. 당신만의 생각이 그리는 무늬를 글로 그려 보여 달라고. 나는 당신의 그림이 그 어떤 세상의 다른 그림들보다 궁금하다고.
우리 함께 그리고 각자, 아무도 흉내 내지 않는 나만의 글을 쓰자. 내 책장 책꽂이에 버티고 자리를 차지하며, 무겁게 내 의식을 누르고 내 글을 의심하게 하던 그 모든 책을 다 바닥에 쏟아 놓고, 그것을 밟고 일어서자. 남의 글이 아닌 내 글을 쓰자. 남의 책을 열어야 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 속에 아직 세상이 보지 못한 새로운 것이 있다.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시도만이 세상을 움직이고 감동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다. 새로운 스타일, 새로운 글을 열어 가자. 새로운 나와 당신의 무늬로 세상이 들썩거리게 하자.
대문 사진 출처: Pixabay (by StockSnap)